[학술] 메타물질
[학술] 메타물질
  • 민범기 / 카이스트 기계공학과 교수
  • 승인 2011.10.12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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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헤르츠 메타물질의 구현

음의 영역에서 극한 굴절률의 영역으로
변형광학의 적용범위를 넓혀 다양하게 적용 가능

▲ 고굴절률을 위한 메타물질의 단위원자 구조 및 입사 전자기파의 방향
 볼록 렌즈는 빛을 모아주고 오목 렌즈는 빛을 분산시킨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초등학교 시절부터 알게 되는 이 간단한 명제가 반드시 맞지는 않게 되었다. 최근 10여 년간 급속도로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메타물질’이라는 새로운 인공물질의 출현 때문이다. 기존의 광학 렌즈는 ‘양의 굴절률’을 가진 물질을 사용하여 제작되어 왔다. 하지만 음의 굴절률을 가진 메타물질이 개발되면서 그 명제의 진위는 깨어지게 되었다.

 메타물질의 메타(meta-)는 그리스어에 어원을 둔 말로 ‘기존의 관념의 틀을 벗어나는’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메타물질이란 기존에 있던 물질이 가지지 않은 특정한 성질을 가진 물질이라는 말로 요약될 수 있다. 일반적으로 파동방정식으로 기술이 가능한 거의 모든 시스템에서 메타물질의 개념이 적용될 수 있다. 특히 광학과 전자기학 분야는 메타물질의 개념이 음향학 분야와 더불어 매우 빨리 적용되는 학문분야이다. 이 중, 전자기 메타물질(electromagnetic metamaterial)은 입사 전자기파의 파장보다 매우 작은 단위 인공구조체(인공원자, 주로 금속과 유전체로 이루어짐)의 배열을 통하여 자연계에 존재하지 않는 전자기적/광학적 성질을 갖도록 만들어진 인공물질이다.

 역사적으로 메타물질과 음굴절률에 관한 이론은 1968년 러시아의 물리학자 베셀라고가 음굴절률을 가지는 가상의 물질에서의 전자기학적 현상에 관한 선구적인 연구결과를 발표하면서 정립되기 시작했다. 음굴절률을 실제적으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일반적으로 물질의 유전율과 투자율의 실수부를 동시에 음의 값을 갖도록 하는 방법이 사용된다. 자연계에 존재하는 물질의 경우, 유전율은 일반적으로 진공의 유전율과는 많은 차이를 보이며, 특히 금속의 경우 플라즈마 주파수 이하에서 음의 유전율 값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자연계에 존재하는 물질의 투자율은 진공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경우가 많다. 따라서 음굴절률을 만들기 위한 최대 관건은 음의 투자율을 가지는 인공물질의 실현이었다. 베셀라고의 연구 이후 30여년이 지난 1999년, 영국 임페리얼 칼리지의 펜드리 교수가 협대역(narrow-band)에서 음의 투자율을 실현할 수 있는 끊어진 고리형태의 공진기(SRR)형태의 인공원자 구조를 제시하였으며, 2000년 듀크 대학의 스미스 교수가 마이크로파 영역에서 음의 유전율을 가진 금속막대와 음의 투자율을 가진 SRR 공진기 구조를 결합하여 음굴절률을 가진 메타물질을 처음으로 구현함으로써 음굴절률 메타물질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되었다.

▲ 단위 금속원자간 거리에 따른 굴절률 및 공진주파수의 계산 및 측정 결과

 본 연구팀은 기존의 연구가 집중적으로 이루어지던 음굴절률 연구에서 벗어나, 그 반대의 극한인 양의 고굴절률에 대하여 이론/실험적으로 연구하였으며, 이를 통하여 매우 높은 고굴절률을 테라헤르츠 주파수 대역(~1THz)에서 실험적으로 증명할 수 있었다. 본 연구팀은 분극율이 매우 크며 동시에 반자성이 매우 약한 금속/유전체 메타물질을 설계하고 제작하여 높은 굴절률을 실현하였으며, 이러한 연구결과는 음굴절률 메타물질의 영역을 넘어서 자연계에 존재하지 않는 매우 높은 굴절률을 메타물질의 새로운 영역으로 포함시켰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 제작된 고굴절률 메타물질의 광학 현미경 사진 및 유연성 테스트 사진
 물질의 굴절률은 유전율과 투자율이 모두 양수인 경우, 유전율과 투자율의 곱의 양의 제곱근으로 표현된다. 이때 유전율은 물질내부에서의 편광 밀도(전기 쌍극자 모멘트의 부피 평균)와 관련이 있으며, 투자율은 자화 밀도(자기 쌍극자 모멘트의 부피 평균)에 관련되어 있다. 굴절률을 정의하는 식을 가지고만 생각하면, 고굴절률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유전율과 투자율 모두를 극대화, 즉 메타물질 단위 인공원자의 전기 쌍극자 모멘트와 자기 쌍극자 모멘트를 동시에 극대화 시키는 방법이 가장 적절하다. 하지만 굴절률의 광대역 특성을 유지하고, 현실적인 마이크로 공정의 적용을 위해서는 투자율을 1로 유지함과 동시에 유전율을 극대화 시키는 방법이 더 적합하다. 이에 맞는 일련의 인공원자를 구현하기 위하여 유전체 내부에 금/크롬의 얇은 막으로 구성된 마이크로 패턴을 제작하는 방법을 사용하였다. 일반적으로 금속의 경우, 그 표면에 생기는 유도전류는 패러데이의 법칙에 따라 외부 자기장을 상쇄시키는 방향으로 흐르게 되며, 따라서 매우 큰 반자성, 즉 매우 작은 투자율을 가지게 된다. 따라서 본 연구팀은 서로 가까이 놓여진 I자 형태의 금속구조로 유전율을 극대화하며 동시에 얇은 금속구조와 빈 공간이 많은 구조를 이용해 반자성을 최소화함으로서 높은 굴절률을 가지는 인공원자의 집합체, 즉 메타물질을 구현하였다.

 제작된 메타물질의 굴절률은 테라헤르츠파 시간분광법 (Terahertz Time Domain Spectroscopy)을 통하여 메타물질을 투과하는 전자파의 크기와 위상을 측정함으로써 얻을 수 있다. 메타원자의 전기적 공진 주파수 근처에서는 인공원자의 분극화가 매우 강해지며, 전기 쌍극자 모멘트 역시 공진 특성을 보이게 되고, 결과적으로 유효 유전율 또한 공진 특성을 보인다. 반대로 투자율은 얇은 금속구조에 의하여 공기 중의 투자율에 비해 거의 감소되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매우 높은 굴절률을 얻기 위해서는 전기 쌍극자 모멘트를 극도로 높여야 하며, 이는 단위 원자의 축전용량을 극한으로 증가시켜야 함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단위 원자의 축전용량은 메타물질 단위 인공원자 간의 간격에 민감한 함수이다. 이를 실험적으로 증명하기 위해 단위 금속 구조간의 간격을 80 nm로부터 30 μm까지 변화시키며 메타물질의 굴절률을 측정했다. 80 nm 간격일 경우, 근사정지한계에서 굴절률의 예측 값은 26.6이었으며, 공진주파수인 0.315 THz에서는 54.87까지 증가하였다. 실험값은 근사정지한계에서 20이상이었으며, 최댓값은 38.64였음을 검증하였다. 이 값은 인공적으로 제작된 물질에서 얻어진 가장 높은 굴절률이다. 준 해석적으로 얻어진 굴절률에 대한 식으로부터, 간격 또는 메타물질을 이루는 층간 거리를 더 줄임으로써 굴절률을 더 크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간격 조절 외에도, 유효 굴절률은 기판의 굴절률에도 비례하기 때문에, 기판을 굴절률이 더 높은 물질로 만든다면, 굴절률을 더 크게 증폭시키고, 훨씬 더 높은 유효 굴절률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고굴절률 메타물질은 이전에는 실현할 수 없었던 높은 굴절률을 메타물질의 새로운 영역으로 포함시켰을 뿐 아니라, 광학 클로킹 등의 기본원리인 변형광학의 적용범위를 현저히 넓히는데 공헌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고굴절률 메타물질은 높은 개구수의 고광각 메타물질 렌즈, 초소형 광소자 등에 대한 연구의 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고굴절률 메타물질의 작동원리는 일반적으로 모든 주파수 대역에서 적용이 가능하며 제작의 문제만 해결이 가능하면, 마이크로파, 라디오파, 근적외선 및 가시광선 등 저주파수 대역으로 확대가 가능할 것으로 예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