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테키안의 입시 이야기
포스테키안의 입시 이야기
  • 김현민 기자
  • 승인 2009.11.04 23: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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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었지만 아름다웠던 추억

대한민국 10대의 대부분은 오직 ‘대학’에 초점을 맞춘 학창시절의 종착점에서 입시를 맞닥뜨리게 된다. 인생에서 처음으로 지나는 큰 관문이기에 입시는 우리에게 큰 기억을 남긴다. 누군가에는 행복한 승리의 기억으로, 다른 누군가에게는 씁쓸한 패배의 기억으로 남아있을 입시. 입시의 계절 가을을 맞아 그 기억을 함께 나누고 그때의 추억을 떠올려보자. 비록 당시에는 힘들었을지라도 기억은 항상 아름다우니까. 이 글은 PosB를 통해 포스테키안들의 다양한 경험을 수합하고 이를 엮어 구성했다.

현역수시

과학고에서는 여름이 지나기 전에 포스텍ㆍ카이스트ㆍ서울대ㆍ연세대ㆍ고려대ㆍ성균관대 등 공과대학 수시전형에 지원할 학생들의 윤곽이 그려진다. 나는 포스텍을 비롯한 몇 개의 대학 수시 2학기 전형에 지원하기로 했고, 방학 때부터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갔다.
전문성 심화 전형을 대비하여 방학 동안 화학 선생님과 화학 실험에 몰두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때 한 전문성 공부가 큰 도움이 된 것 같다.
우수성 증빙자료를 보내라는 말에 2학년 내내 한 실험을 기록한 실험노트와 잡다한 상장, 영어성적 복사본을 챙겨서 봉투에 넣었다. 우리가 보낸 많은 자료들이 입학처에서는 결정적인 우수성 증빙자료로 취급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최대한 많은 자료를 끌어넣어 본다.
우리학교에서도 포스텍 면접을 보러 가는 친구가 몇 있었지만 면접일이 달라서 모두 함께 가지는 못했다. 대신 같은 날 면접을 보는 친구와 짝을 지어 면접을 보러 갔다. 집결장소인 강당에 도착하니 이미 입학한 고등학교 선배들이 만들어 놓은 대자보에 내 이름이 적혀있다. 후배들을 응원해 주는 마음이 고맙게 느껴진다. 하지만 입학 후에 일반고 출신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면접일에 과학고생들끼리만 챙겨주는 문화에 소외감을 느꼈다고 했다. ‘아, 그럴 수도 있겠구나.’ 고개가 끄덕여졌다.
면접장에 도착했다. 책조차 가지고 오지 않은 여유로운 인성합격자가 보인다. 아! 세상에 태어나서 그렇게 누군가를 부러워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종래에는 나도 그처럼 합격했다. 그러나 마음껏 웃을 수가 없다. 올해 우리학교 입시 성적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불합격을 통보받은 친구들의 표정이 어둡다. 앞으로 남은 발표에서는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전하고 싶지만 마음속에서만 맴돈다.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든다.

 

재수 수시


정시를 준비하는 도중 2학기 수시전형에 먼저 지원하게 되었다. 지원서를 접수하고 1차 합격 통보를 받았고, 면접을 치르기 위해 포항으로 향했다. 작년에 여러 대학에서 수시를 치르면서 어머니를 고생시킨 기억 때문에 이번에는 부모님께 나 혼자 면접을 보러 가겠노라고 말씀드렸다. 그 때는 입시가 처음이었고, 혹시 위급한 상황이 생길까봐 부모님과 함께 면접 장소에 갔지만, 이제는 면접쯤이야…. 어머니와 손잡고 고사장에 도착한다고 해도 정작 가장 중요할 때는 어차피 나 혼자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굳이 같이 가시겠다는 부모님의 제안을 뿌리친 것은 나보다 불안해하시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는 것이 죄송스럽기 때문이었다.
포항에 도착하니 휑한 터미널이 나를 맞는다. 합격하게 된다면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이곳에서 최소 4년을 보내야한다는 생각에 답답하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일단 합격한 후에 해야지’ 하고 마음을 달래본다.
포스텍에 가기 위해서 택시를 탔다. “포항공대로 가주세요”라는 말에 기사님께서는 내가 입시를 치르러 온 학생임을 단박에 알아차린다. 그때는 몰랐다. 포항시민과 포스테키안은 모두 택시에 타자마자 “공대로 가주세요”라며 ‘포항’이란 두 글자를 똑 떼어버린다는 것을.
학교로 들어가는 입구부터 많은 승용차와 학부모님이 보인다. 수험생들은 부모님과 쉼 없이 재잘거린다. 괜스레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렸다. 하지만 지금 집에 전화를 걸면 눈물이 나올 것 같다.
돌아오는 길에 작년 수시전형에 지원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대부분 안 좋은 기억들이다. 합격자 발표일을 초조하게 기다리다가 주민등록번호와 수험번호를 입력한 후 기다리는 단 몇 초 동안 두근거리던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던 기억. 그 손끝의 떨림이 아직도 느껴지는 것 같아 몸서리가 쳐진다. 이번에는 ‘합격’이라는 푸른 글씨를 보고 싶다. 하지만 설사 합격하지 못한다고 해도 예전처럼 슬프지는 않을 것 같다. 짧은 1년이지만 내가 많이 무뎌졌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버스에 몸을 실었다.

 

현역 정시


신문 1면에 절에서 불공을 드리는 어머니들의 모습이 실렸다. 자녀의 합격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산사를 찾은 학부모라는 각주가 달려있다. 그 사진을 보며 내 어머니를 떠올린다.
어머니께서는 시험 당일 아침까지 100일 기도를 하셨다. 수험생인 나보다 먼저 일어나셔서 새벽기도를 다녀오신 후 아침을 준비하던 어머니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그때는 그것이 부담스럽게 느껴졌지만, 그것은 어머니의 사랑이었다. 대한민국에는 전세계에서 찾아볼 수 없는 ‘수험생 엄마’라는 직업이 있다던데, 내 어머니도 ‘수험생 엄마’로 꼬박 1년을 근무하셨다.
칠판에 적힌 D-Day의 수가 줄어드는 만큼 짜증과 불안감이 커져갔다. D-365에서 D-300으로, D-200으로 점차 꼬리에 붙은 숫자가 작아지더니 드디어 D-100일이 오고 말았다. 친구들이 교실에서 모 온라인 입시학원에서 만든 100일 기념 동영상을 틀었다. 유치하지만 왠지 비장한 기분이 든다. 이제 곧 수능을 치르게 된다. 모든 노력이 하루의 시험으로 결정된다는 사실에 마음이 떨린다.
수능 아침! 어머니께서 준비해 주신 따뜻한 도시락을 들고 시험장으로 향한다. 추운 날씨를 대비해 얇은 옷을 여럿 겹쳐 입고, 목도리ㆍ장갑으로 중무장을 했다. 우리를 응원하러 온 후배들이 커피를 건네준다. ‘아, 이것이 TV에서만 보던 수능 날의 풍경이구나.’ 평이한 1, 2교시를 치렀다. 같은 학교에서 온 친구와 함께 점심을 먹으며 시험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대로라면 평소와 같은 성적이 나올 것이라는 희망이 든다. 3, 4교시가 끝나고 어둑어둑해진다. 나는 제2외국어를 신청하지 않았으므로 4교시 후에 수험장을 나섰다. 손을 맹렬히 흔드는 부모님의 모습이 보인다. ‘나 시험 잘 봤어!’라고 소리치고 싶은 마음을 참고 부모님의 손을 꼭 잡는다.

 

재수 정시


재수는 내가 선택하는 것이고 삼수부터는 하늘이 점지해주는 것이라고 하는데, 이제 나의 선택에서 입시를 마감하고 싶다. 제발 올해는 수능이 끝나고 가는 발걸음이 가벼웠으면 좋겠다. 입시철이 되면 TV에서는 “올해 모의고사에서도 역시 재수생이 강세”라며 재수생의 위력에 대해 떠들어댄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모의고사와 수능은 독립시행이다. ‘모의고사가 커피라면 수능은 T.O.P야’라는 말이 귓가에서 맴돈다.
고3 때부터 성적이 오르기 시작하여 수능 근처에 와서는 지속적으로 높은 성적을 유지했다. 그러나 수능 때 컨디션 난조로 인해 성적이 급락했고, 어쩔 수 없이 재수를 선택하게 되었다. 수능을 망치고 학교로 돌아온 그날은 담임선생님도 내게 별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나는 조용히 예상점수를 내밀고 다른 친구들이 웃고 떠들며 무슨 대학에 지원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모습을 말없이 지켜봤다. 내 인생에서 최고로 우울했던 기억이다. 내가 저 자리에 있을 수 없다는 상실감이 마음속 깊이 자리 잡았다.
재수를 결심했지만 처음에 나는 실패했다는 자괴감과 부모님을 실망시켰다는 죄책감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하지만 다시 실패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 시험에 다시금 매달렸고, 수능에서 좋은 결과를 얻었다.
그때는 정말 힘들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재수시절에 느꼈던 실패나 좌절이 지금의 나를  있게 했다고 생각한다. 또한 그 기간을 통해 내가 가장 중요시하는 가치인 ‘겸손’을 배웠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누구나 실수할 수 있고, 실패할 수 있다. 그 시간이 없었다면 나는 여전히 과도하게 자신만만했을 것이며, 실패한 이들을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내 자신이 나태해진다고 생각이 들면 치열했던 재수시절을 떠올린다. 하나에 끈질기게 매달렸던 그때가 그리워서 수능을 한 번 더 보고 싶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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