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통신 기술
광통신 기술
  • 권오대(전자전기공학과 교수)
  • 승인 2009.11.04 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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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쏘¤광 (노벨로 쏘아올린 작은 광) 2탄

노쏘광(노벨로 쏘아올린 작은 광) 1탄을 본지에 썼던 게 정확히 1년 전(2008년 11월 5일자). 그 때는 21세기 광자의 전성시대에 등장하는 디스플레이 및 신조명 기술의 총아인 청색 LED(Light Emitting Diode)를 개발한 무명의 ‘나까무라(Shuji Nakamura)’ 스토리를 요약했었다. 바로 지난 10월초 발표된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들 역시 빛과 관련된 소자를 개발한 일꾼들이었다. 그렇지만 광섬유(Optical Fiber)를 개발한 찰스 K. 카오, 그리고 광전류의 전하결합을 활용한 CCD(Charge-Coupled Device) 개발의 윌러드 S. 보일, 조지 E. 스미스 등은 구미 언론들이 수상 소식 전까지 떠들썩하게 예측하던 화려한 석학 명단에는 아예 없었다.

▲ <그림 1> 청색F(꽃잎)PQR 레이저(박사과정 김영천 제작).


그렇게 잊혀졌던 광통신의 무료고속도로와 다름없는 광섬유를 개발한 카오의 예를 들어보자. 사실 광통신은 더 오랫동안 잊혀진 것이었다. 벨(Bell)이 전화기 발명 후 곧 시연했던 것이 1880년이었으니, 햇빛을 변조하여 음성을 보낸 원시적 광통신이었다. 200m라는 통신거리가 너무 짧아 쓸모없다고 웃어버리면 원천기술 발명자가 될 수 없다. 여하튼 이후 80년간 광통신은 없었다. Hertz와 Marconi로 이어진 무선통신 개발로 전보와 라디오가 나오고, 오늘날 휴대폰에서 위력을 발휘하는 마이크로파 통신까지 이르렀다.


그렇게 까마득히 잊혀졌던 광통신 기술의 무덤을 열어젖힌 것이 레이저였다.

▲ <그림 2> 나노 FPQR 레이저(박사과정 신미향 설계).
휴즈 항공사의 메이맨이 1960년 5월 16일 루비 레이저를 최초로 만들어 시연하니 ‘살인광선’이 발명되었다고 온 세상이 떠들썩했다. 그 첫아기 레이저는 살인은커녕 살충도 못할 만큼 미약한 펄스였다. (메이맨은 2007년 80세로 별세했다. 노벨상 수상 기회는 사멸되었지만 그의 학문적 뿌리는 무겁다. 그의 스탠포드 박사과정 시절 지도교수는 60년대 레이저 이론을 대성시킨 W. Lamb. 드물게 이론과 실험을 통달한 특이한 노벨 수상자 Lamb의 지도교수는 원자탄 개발의 맨해튼 프로젝트 책임자인 비운의 천재학자 오펜하이머였다.)


당시 레이저 발명 경쟁을 촉발시킨 1958년 논문 저자 Townes와 Schawlow(둘 다 수상)가 이미 제안했던 대로 신기한 물건이 나오긴 나왔는데, 지금은 대기권 밖으로 숨었다 날아드는 미사일도 격파하지만, 당시엔 상상은 다양했어도 정작 무엇에 레이저를 바로 활용할 것인지는 막연했다. 첫 발명의 영광을 쫓던 IBM, GE 및 MIT에서는 곧 GaAs 반도체계 레이저(Laser Diode, LD)를 개발하는데, 이 소자들이 발진하려면 77K의 액체질소 냉탕에 잠겨야하므로 당장 쓸모 있는 광원이기엔 99% 부족했으나, S. Miller 등이 주도한 벨연구소 그룹은 광통신 연구를 심각히 추진하기 시작했다.


비록 당장 영양가는 없지만 소문은 무성한 카오스에 빠진 레이저 구하기에 카오가 해결사로 나섰다. 되기만 한다면 가느다란 광섬유 한 가닥에 기존 무선통신의 수만 배의 통신량을 당장 전달하는 광파대역 통신의 매력을 누구도 무시할 수 없었다. 전천후가 될 수 없고 근거리에 한정된 직선 공간 광통신의 한계를 아는 고로, 카오(및 Hockham, 그리고 Werts)는 유리섬유를 통한 광통신을 1966년 주창했다. 유리가게에 가서 겹겹 포개진 유리판 수십 장을 빛이 잘 통과하는지 유심히 살핀 사람이라면 그의 주장이 엉터리라고 판단해버릴 수도 있다.


사실 그런 일반유리로 만든 광섬유라면 km당 1,000dB(데시벨)의 감쇄가 일어난다. 이는 동축케이블의 전기신호 감쇄가 km당 10dB미만인 것에 비하여 턱없이 열등생이다. 그렇지만 그의 제안이 헛되지 않아 1970년대까지의 끈질긴 개발로 코닝(Corning)사가 20dB까지 줄이는 고순도 광섬유를 제작하고, 후에 1dB까지, 그리고 1.55마이크론의 장파장대에서 약 0.2dB/km까지 완성되면서 카오의 비전이 80년대부터 비로소 현실화되었다. 90년대 후반 1.55와 1.3마이크론 파장 사이의 물 분자[OH-] 관련 흡수장벽을 해소, 평탄화한 기술로 다시 엄청난 광대역 전송의 새로운 지평을 보게 되었다.


서울과 대전 사이 약 150km 거리에 깔린 광섬유에 광신호 비트(Bit)를 서울에서 보내면 약 30 dB, 즉 약 1/1,000정도로 감쇄한 신호가 대전에서 충분히 감지된다. 여기서 어븀[Er] 광증폭기로 얼빠진 포톤을 다시 강화 부활한 광신호가 대구로, 다시 2차 강화된 신호가 이제 부산까지…. 이렇게 우리의 유선통화 내용은 디지털 광 비트로 서울과 부산을 단숨에 달려버린다. 태평양을 횡단하는 해저 광케이블도 이런 방식이다. 단 상어가 물어뜯어 끊어지지 않게 더 단단하게 둘러싼다. 이젠 수만 km의 광섬유 통신케이블이 태평양겢堉??횡단은 물론 전 아시아 해변을 돌고 돌아 유럽까지 줄줄이 사탕, 즉 전 지구촌이 광섬유의 통신망으로 엮이었다.


카오의 광섬유 고속도로를 달리는 자동차는? 그건 포톤 비트이다. 그 광원은 앞에 말한 레이저다이오드(LD) 광원에서 태어난다. 광섬유 개발의 70년대는 LD개발의 시대이기도 했다. 77K 냉탕에서 해방되어 상온에서 연속 발진하는 LD 소자가 되고, 1.55마이크론의 장파장으로 확장되고, 양자우물(Quantum Well) LD도 개발하는 등 광원 문제도 동시에 해결되면서 본격적 광통신의 90년대, 수십 기가(Giga)비트의 통신, 다채널의 테라(Tera)비트 시대가, 나아가 페타(Peta)비트 시대가 열린다.


광통신은 21세기 정보화 시대를 열어준 뒤 2000년대 벽두를 덮친 경제 쓰나미에 휩쓸려 무대 뒤로 물러섰다. 한편, 90년대 초중반 InGaN 반도체 청색LED 개발, 백색 LED 개발로 에디슨조명 갈아치우기 등의 조명혁신을 이뤄내며 세계의 신데렐라가 된 나까무라가, 고국에서는 왕따가 되어 정든 회사를 버리고 산타바바라의 캘리포니아 대학으로 갔다. 박사도 아니었던 LED 제왕이 언제 노벨상을 탈 것인가? 그건 금년을 비껴갔지만, 그가 과거 회사를 상대로 유명한 특허보상 소송을 내고 이겼을 때는 일본의 공공의 적이 된 듯하나, 정작 일본의 젊은 이공인들에겐 값진 꿈을 선사한 기술영웅이 되었다.


이러한 LED 전성기에 우리 LD연구실은 10여 년 전 발명한 광양자테(PQR) LD 기술에 우리 힘을 올인해왔다. 이 특수한 PQR 기술은 IMF 환난의 배고픔 속에 NRL(국가지정연구실) 지원이 헛되지 않아 적외선ㆍ적색ㆍ청색 아들딸들로 성장하여 LED를 넘보며, 이제 삼성전자ㆍ서울반도체 등과 꽃잎 PQR 공동개발로 발돋움하고 있다. NCNT의 나노팀과 공동개발하는 나노형 다엽화(Multi-petal Flower) PQR 레이저가 태어나는 날 우리는 새로운 K2 고지에 오를 것이며, 언젠가는 유기물 OPQR 레이저로 에베레스트! 탈바꿈할 것이다. 작기로는 몸속에도 들어갈 것이며, 지혜로는 골리앗을 넘어뜨릴 다윗이요, 시스템으로는 평판이 없는 차세대 레이저 TV가 되고, 미지의 광컴도 꿈꾸는 자의 기쁨일 것이다. 방향도 감지하는 유별난 특성의 칩은 21세기 자동화도로기술(ITS)의 견인차가 되고, 마이크로 Laguerre-Gaussian 빔의 PQR은 거대분자, 바이오분자들을 다윗의 지혜를 써서 하늘로 공중 부양시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