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문화재 보존 실태] 개발과 보존 병행 불가능하지 않다
[진단-문화재 보존 실태] 개발과 보존 병행 불가능하지 않다
  • 김혜리 기자
  • 승인 2000.11.2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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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그 신라 천년의 고도에는 지금 옛 고도의 모습을 간직하기 위해 오래도록 보존되어 왔던 낮은 지붕 옆으로 고층 아파트와 현대식 고층빌딩이 들어서고, 유적지가 쓰레기 매립장으로 바뀌는 기형적 장면이 연출되고 있다. 또 도로확장과 건물 확충으로 지금껏 보존해온 자연환경이 망가지고 있어 경주를 찾는 관광객들이 놀라 발길을 돌리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관광 도시인 경주의 역사문화유산마저 개발의 등쌀을 견디지 못하고 보존에 힘겨워하는데 다른 지역 사정이야 오죽하랴.

지방자치단체 시대가 개막한 이래 각 지역에서 자기 고장의 문화 찾기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지만, 현재 지방 자체적인 개발과 문화재위원회 측의 보호를 구실로 많은 문화재들이 제자리를 잃어버리고 있다. 문화재에 대한 관심은 높아지고 있지만 사실 지역 문화재의 보존 실태는 참담하고 개발과 보존, 지역 주민의 재산권 주장과 맞물려 문화재 보존정책은 갈팡질팡하고 있는 실정이다.

요즈음 경주는 도시개발이냐 문화유적보존이냐를 두고 심각한 갈등하게 갈등하고 있다. 경주만이 아니라 경제성장을 제일목표로 삼은 대다수의 도시의 문제다. 개발을 위해 유적을 포기한다거나 유적 보존을 위해 개발을 막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지만, 중간에서 균형을 취하기란 쉬운 일도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도시개발의 근시안적 정책 속에서는 문화유적 보존정책이 지역 주민의 수입을 제한하는 장애물로 보인다. 그러나 문화유산은 새로운 창조의 무한한 경제적 자산이라는 점에서 근시적이고 행정의 편의만을 위한 개발은 자제해야 한다.

개발과 보존이라는 과제가 현실에서 상충하는 것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국민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여 풍요롭고 복된 생활을 보장하자는 개발의 목적을 생각해 보면, 개발사업은 문화유산을 보존해 후대에 물려주는 일과 동일한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다. 진해 자은 지구의 조선시대 유적 발견이나 암사동 유적지 발견 등 공사현장에서 값진 문화재를 발견하게 될 경우가 종종 있다는 것을 보면 문화재 발굴에 관심을 가져야 필요성은 충분하다.

지역 개발이라는 공공적인 문제에 앞서 문화재 보존에 걸림돌이 되는 것은 개인 혹은 단체의 재산권과의 충돌이다. 시 개발을 위한 재정확충이란 명목으로 유적지를 매각하는 무분별한 개발논리와 부딪히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러한 점에서 ‘경주 선도산 발굴불허처분 취소소송’의 판정에서 매장 문화재 보존을 위해서는 개발을 제한할 수 있다는 지난 6일 대법원의 판결은 타지방 곳곳의 비슷한 사례에 대한 중요한 판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마애삼존불 등 신라의 유적이 즐비한 선도산에 경주 동산병원을 건립하려는 계명대와 문화재관리국과의 싸움에서, ‘적법한 절차에 따른 신축’이라고 주장한 계명대가 ‘선도산에 건물을 짓는 자체가 문화유산 파괴’라고 맞선 문화재 관리국에 패소한 것이다. 발굴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매장문화재 보존을 위해 개발을 제한하기로 결정한 이 판결은 문화재의 잠정적인 가치를 개발 가치 위에 두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에 앞서 지난 5월에는 풍납토성 유적 훼손사태와 관련해 국민연대가 발족하는 등 대대적인 관심을 모았었다. 풍납토성 유적 훼손은 재산 손실을 덜기 위해 발굴을 빨리 끝내라는 주민쪽과 제대로 발굴해야 한다는 소신이 대립하다 불거진 돌발사태였다. 결국 백제초기 중요 유적지로서 가치가 인정된 풍납토성의 전지역이 보전지구로 지정되는 것으로 결말을 지었으나 아직도 주민들이 피해를 보는 부분에 대해 보상 관련 법규가 미비하다는 문제점은 이 사건 후에도 깨끗한 해결책을 가지지 못하고 있다. 유적지 보존정책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문화재의 보존과 주민들의 사적 재산권 보호간의 정책간 균형감이며, 주민들의 재산권 보장과 이에 따른 현실적인 정책이 필요하다.

문화관광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로마와 같이 문화유적 보존에 힘써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한지 십수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문화재 보존 정책은 미온적인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살아 숨쉬는 경주, 아름다운 제주도, 선비정신이 살아있는 안동을 되살리기 위해 재산권 보호와 개발을 병행할 수 있는 지역 문화재 보존의 거시적인 정책 수립이 필요할 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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