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포스텍의 기초연구 결과를 국가 자원화하자
사설-포스텍의 기초연구 결과를 국가 자원화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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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1970.01.0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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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텍 내 각 연구실에서는 지금 이 시간에도 훌륭한 연구 결과를 내기 위해 많은 연구원들이 연구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여러 연구실에서 다양한 연구 장비를 사용하여 넓은 분야의 연구를 수행하고 있지만 공통으로 보유하고 있는 연구 인프라 중 하나가 물질의 기초 특성 정보를 담은 각종 핸드북일 것이다. 소재 또는 물질을 다루는 연구원 중 Merck Index나 JANAF table 등 각종 핸드북들을 사용한 경험이 없는 연구원은 매우 드물 것이다. 그러나 일상적인 연구 활동에서 이러한 핸드북에 의존을 하면서도 이러한 핸드북들이 없었다면 연구 과정이 어떠하였을까 생각해 본 연구원도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그만큼 우리는 핸드북의 존재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최근에는 수치정보를 수록하고 있는 핸드북 이외에도 문헌정보를 수록한 Scopus, Web of Science 등 문헌정보 데이터베이스(DB)를 연구는 물론 연구원 평가에도 활용하려고 하는 추세이다. 이러한 각종 DB를 적절히 활용하여 연구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은 당연히 바람직한 일이다. 그런데 여기에 몇 가지 우리가 인식하고 넘어 갔으면 하는 점들이 있다.


연구에 없어서는 안 될 각종 수치, 문헌 정보에 대한 핸드북 또는 DB 들. 이들을 제작한 나라는 예외 없이 과학기술 선진국들이다. 과학기술 선진국들은 일찍이 그들의 경험을 통해서 위와 같은 DB의 필요성을 깨달았을 것이나, 자국의 연구 개발 활동 활성화를 위해 시작한 DB 제작 사업들이 본의 아니게 훗날 상업적 DB로도 가치가 있음을 발견하고는 지적소유권 등 상업화를 위한 장치를 강화하고 있다.
국내에서 (한국 고유의 정보가 아니라) 보편적인 가치를 가진 과학기술 관련 DB를 제작한 사례는 매우 드물다. 우리가 DB 구축에 대한 마인드 없이 연구 개발을 지속하는 동안, 그리고 그 결과들을 국제학술지에 발표하면서 논문 편수를 세고 있는 동안, 우리의 입지는 선진국 DB의 확실한 소비자로서 굳어지고 있으며, 더욱 무서운 것은 위와 같은 연구 정보의 종속관계가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욱 굳어지리라는 것이다. 현재 확보가 가능한 핸드북들의 내용은 어쩌면 이미 다 알려진, 다른 경로를 통해서도 얼마든지 확보할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최신 연구 정보들은 외부로 유출되기 보다는, 일찍부터 상업화 또는 국가 자원화 되는 경향마저 보이고 있다. 위와 같은 선진국의 과학기술 정보 인프라를 사용하기 위해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경비를 치르고 있는지,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대가를 치러야 할지에 대해서는 국내 과학기술계에서 논의조차 되고 있지 않은 실정이다.


우리가 과학기술 선진국들을 경외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이유는 그들이 보여주는 발전된 과학기술 상품, 또는 <네이처>?사이언스> 논문 때문이 아니다. 우리의 연구 수준도 위와 같은 요인들은 얼마든지 따라가거나 앞서갈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쌓여가고 격차가 벌어질 수밖에 없는 과학기술 정보 인프라를 생각하면, 어쩌면 현재의 과학기술 선진국을 영원한 선진국으로 받아들여야 할지 모른다. 반대로 과학기술에서 신흥 선진국으로 돋움을 하고 있는 우리는 선진국의 정보를 이용하여 부분적인 성공을 거두고 돈은 벌었을지언정, 새로운 기초 정보를 전 세계 과학기술계에 제공하지 못하는 영원한 다크호스로 각인될지 모른다.


포스텍의 연구는 전 세계에 어디에 내어 놓아도 손색이 없을 만큼 과학기술 정보와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러한 훌륭한 연구 결과를 단순히 국제학술지 논문 출판하는 데에만 소비하는 것은 아깝기 그지없는 일이다. 대학의 국제적인 명성을 한층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현 시점에서, 우리의 연구 결과를 수치 정보의 형태로 또는 문헌 정보의 형태로 재구성하여 DB화하는 작업을 시작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그것이 각 연구원으로 하여금 자신의 연구 결과가 논문 출판을 위한 것만이 아니라 훗날 국가 자원이 될 수 있다는 자부심을 줄 수 있으며, 선진국의 DB가 국가자원화 및 상업화의 극치에 도달했을 때에 대한 대비책이기도 하며, 무엇보다 이 대학이, 이 나라가 세계 과학기술계에 무언가 기초 연구 정보를 체계적으로 제공할 수 있고 시간이 갈수록 그 권위와 전통을 더해갈 수 있는 방안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