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알고 가자 (4) - 이야기를 찾아서
이젠 알고 가자 (4) - 이야기를 찾아서
  • 최유림 기자
  • 승인 2009.05.20 13: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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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롭고 애틋한 사연이 전해지는 포항의 명소

일월지-연오랑 세오녀 설화로 유명

일월지(日月池)는 ‘연오랑 세오녀’ 설화로 유명한 곳이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신라 제8대 아달라왕 즉위 4년, 동해가에 연오랑(延烏郎)과 세오녀(細烏女)라는 금실 좋기로 소문난 부부가 살았다. 하루는 연오랑이 바다로 나가 해조를 캐고 있었는데 갑자기 바위 하나가 연오랑을 위에 태우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일본 사람들은 그를 보고 뛰어난 인물이라 생각해 곧 임금으로 삼았다. 세오녀는 사라진 지아비를 찾던 중 바위 위에 지아비가 벗어놓은 신발을 보고 그 위로 올라갔다. 그러자 바위가 세오녀를 일본으로 데려갔고, 부부는 다시 만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뒤 신라에서는 해와 달이 갑자기 빛을 잃고 천?側?어두워졌다. 이에 놀란 아달라왕이 예언자에게 그 까닭을 묻자 그는 “해와 달의 정기가 우리나라에 와 있다가 지금은 일본으로 갔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이 말을 들은 왕은 섬나라에 건너간 연오랑과 세오녀를 이 땅에 다시 불러오도록 명령했다. 하지만 연오랑과 세오녀는 “우리는 이미 하늘의 뜻을 좇아 이곳에 와서 왕과 왕비가 되었으니 다시 갈 수 없다”라고 하며, “왕비가 손수 짠 비단 한필이 있으니 가지고 가서 내가 살던 못가에 단을 쌓고 나뭇가지에 이 비단을 걸고 정성을 모아 하늘에 제사를 지내라”며 비단을 주었다. 사신이 돌아와 그대로 했더니 신기하게도 해와 달이 다시 빛을 찾았다.
위의 이야기에서 비단을 걸고 제사를 지냈던 못이 바로 일월지이다. 이 못은 동서로 약 250m, 남북으로 약 150m 뻗어있는 원형모양으로 총면적은 5,000여 평에 달한다. 매년 10월에 연오랑 세오녀 설화를 재현하여 지역주민의 안녕을 기원하는 제사를 일월사당에서 올린다.
일월지는 포항공항 근처 해병부대 안에 위치하고 있다. 버스를 이용해서 방문하려면 학교 앞 정류장에서 105번 버스를 타고 죽도시장에서 하차, 반대편에서 문덕차고지 방향으로 가는 102번 버스로 갈아타고 해병대 서문 정류장에서 하차하면 된다(환승할 때 102번 버스의 방향을 꼭 확인하도록 하자). 부대 안에 있기 때문에 방문 3일 전까지 해병대 제9118부대 민사참모실 (054-290-3181~3)에 예약을 해야 한다. 안타깝게도 공휴일과 토·일요일은 방문이 불가능하다.

 


 

운제산 오어사-원효·자장·혜공 등 고승들이 수도한 곳

‘해골에 괸 물’ 이야기로 매우 유명한 원효대사. 포항에도 원효대사와 관련된 이야기가 있는 장소가 있다. 바로 오천읍 항사리 운제산(雲梯山) 동남쪽 기슭에 신라 제26대 진평왕 때 창건한 오어사(吾魚寺)이다. 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운제산에 위치한 오어사의 원래 명칭은 항사사(恒沙寺)였다. 이곳에서 원효대사와 혜공선사가 수도했는데, 하루는 둘이 계곡의 고기를 잡아먹은 후 법력으로 그 고기를 다시 살려내는 내기를 했다. 물고기를 잡아먹은 뒤 맑은 물에 토해내니 두 마리의 고기 모두 고스란히 살아 움직였다. 이때 두 스님은 힘이 센 놈을 서로 자신의 고기라고 했다. 이때부터 항사사는 ‘나 오(吾)’, ‘고기 어(魚)’자를 써서 오어사라고 불리게 되었다.
운제산은 원효자장혜공 등 고승들이 수도한 곳이라고 전해진다. 오어사는 운제산 산자락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으며, 그 앞에는 진청색 빛깔의 오어지가 있다.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 같다는 말이 매우 잘 어울리는 사찰이다.

오어사에 가기 위해서는 죽도시장에서 102번 버스를 타고 오천읍사무소 정류장에서 하차해서, 이곳에서 하루 11번 운행되는 오어사행 버스를 타면 된다. 보통 40분~1시간 10분 간격으로 운행되는데, 그 간격이 일정하지 않으니 가기 전 인터넷에서 운행시간을 검색해보거나 292-2083으로 문의하면 된다.
 오어사에 가면 보물 제1280호인 오어사 범종과 경북 문화재 자료 제88호인 대웅전 등 문화재도 감상할 수 있다. 또한 운제산은 경사가 완만하고 정상까지 1시간 30분이면 오를 수 있으니, 오랜만에 일상에서 벗어나 멋진 오어사와 문화재를 감상하고 가벼운 산행도 즐겨보는 것은 어떨까?

 


 

학도의용군 전승기념관-6.25 때 희생된 학도들의 고귀한 넋

이제 설화나 먼 옛날이야기가 아닌, 좀 더 가까운 과거의 이야기를 해보자. 현재 포항에서 영화 ‘71’을 촬영 중에 있다. 유승호김범승리 등 꽃미남 배우들이 출연한다 해서 화제가 되고 있는 이 영화는 6.25 전쟁 당시 포항여자중학교에서 있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한 ‘학도의용군’에 관한 것이다.
학도의용군은 6.25전쟁 당시 국가가 위기에 처하자 학업을 중단하고 참전했던 학생 의병들이다. 이들은 학생만으로 구성된 독립부대를 편성하거나, 육해공군과 유엔군에 예속되어 각종 전투에 참가했다. 학도의용군의 활약이 돋보였던 것은 마지막 보루였던 낙동강 방어선의 최대 요충지이던 포항 공방전에서였다. 1950년 8월 10일, 제3사단에 소속된 학도병 71명은 M1소총과 실탄 250여 발씩을 지급받고 포항여자중학교에서 적을 저지하라는 긴급 임무를 부여받았다. 이미 북한군이 전방뿐만 아니라 후방인 학교 건물 뒷산에서도 내려오기 시작한 상태였지만, 불과 71명의 학도병들은 11시간에 걸쳐 네 번이나 적의 파상공격을 처절하게 막아내었고 끝까지 이 지역을 지켜냈다. 48명의 못다 핀 젊은이들이 목숨과 맞바꾼 결과였다.

이 이야기와 관련하여 소개할 곳은 포항시 북구 용흥동에 있는 ‘학도의용군 전승기념관’이다. 이곳은 6.25전쟁당시 희생된 이름 없는 학도들의 애국심과 고귀한 넋을 기리기 위해 건립되었다. 현재 무기·유품·인물모형 등 95점이 전시되어 있으며, 근처에 ‘전몰학도의용군 충혼탑’과 ‘포항지구 전적비’도 건립되어 있다.
아래는 기념관의 전시물 중 포항여자중학교의 전투에서 전사한 이우근 학도병이 어머니께 쓴 편지의 일부이다. 이것은 그의 주머니 속에서 발견되었다.
“저는 무서운 생각이 듭니다. 지금 내 옆에서는 수많은 학우들이 죽음을 기다리는 듯 적이 덤벼들 것을 기다리며 뜨거운 햇빛 아래 엎드려 있습니다. 적은 침묵을 지키고 있습니다. 언제 다시 덤벼들지 모릅니다. 적병은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는 겨우 71명입니다. 이제 어떻게 될 것인가를 생각하면 무섭습니다.”
가슴이 짠해오지 않는가? 포항과 인연을 맺고 있다면, 한번쯤 이 기념관을 방문해서 포항에서 있었던 슬픈 역사를 함께 느껴보자.
학도의용군 전승기념관은 죽도시장에서 160번 버스를 타고 포항의료원에서 하차하면 찾아갈 수 있다. 좀 더 자세한 위치와 개관 시간 정보는 포항문화관광 홈페이지(phtour.ipohang.org)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