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기획] 대학서점 기능 없는 ‘무늬만 대학서점’
[학원기획] 대학서점 기능 없는 ‘무늬만 대학서점’
  • 조성훈 기자
  • 승인 2000.03.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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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서점으로서 차별화된 특성 결여
직영화 통해 ‘공대만의 전문성’ 가져야
“강의에 필요한 참고교재조차 구할 수 없는 대학서점이 어떻게 존재가치가 있는지 의문이다”

이근배(컴공) 교수는 “구내서점은 대학서점으로서의 기본이 되어있지 않다”면서 “구내서점은 외부인들에게는 데리고 오기 아주 부끄러운 곳의 하나가 되었다”고 말한다. 이 교수는 전공관련서적 부족, 작은 규모 등이 구내서점의 문제점이라고 지적하면서 복지회나 학술정보원이 서점을 운영토록 하는 것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이 교수가 말하는 대학서점은 단순히 대학 내에 있는 서점을 뜻하는게 아니다. 진정한 대학서점은 대학의 특성을 반영하고 학생들의 학업이나 문화생활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라야 한다. 강의교재나 참고자료를 기본적으로 구비해야 하며, 학생들의 정서함양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교양서적도 갖추어야 한다. 또한 휴식을 취하면서 전공에 관련된 최신소식이나 자료를 볼 수 있는 그런 곳이어야 한다. 나아가 대학의 위상이나 수준에 걸맞는 학술정보센터의 역할을 한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 학교 구내서점은 대학서점다운 특성을 찾을 수 없어 시내에 있는 일반서점과 다른 점이 없다는 지적이 많다. 대학서점이라면 재학생 중심으로 운영되어야 하지만 구내서점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과기원에서 학부를 마친 홍정희(컴공 석사과정) 학우는 “구내서점은 기본적인 대학서점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홍정희 학우는 “캠퍼스가 한산한 과기원과 달리 포항공대는 외부인이 많아 마치 공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면서 “이러한 대학 분위기를 가장 잘 반영하고 있는 곳이 바로 구내서점”이라고 지적했다. 과기원이 외부인을 통제하고 있어 서점이 학생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는 반면, 우리 학교의 경우 캠퍼스를 개방하고 외부인을 대상으로 하는 편의시설을 운영하고 있는데 구내서점은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대학서점이 가져야 할 차별화된 특성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는 것은 전공관련서적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구내서점은 타대학 서점에 비해 규모도 작을 뿐만 아니라 전공관련서적의 비율도 작아 전공관련서적을 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는 전체면적이 70평 이상인 과기원 서점에서 전체의 80%이상(컴퓨터 관련서적 포함)이 전공관련서적인 것에 비해 매우 부족하다고 볼 수 있다. 다음으로 지적되는 것은 구내서점의 초겵?고등학교 책들과 유아용 도서 등 대학서점에 어울리지 않는 책들이다. 이런 책들은 그 종류도 다양하고 양도 많아 학생들로 하여금 대학서점이 아닌 일반서점처럼 느끼게 한다.

이런 구내서점에 대해 학생들이 가지는 불만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위장환(화학 4) 학우는 “전공관련서적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아 책을 사러 갔다가 헛걸음 한 적이 많았다”고 불만을 털어놓았다. 박병준(생명 4) 학우는 “전공관련서적도 부족하지만 일반서적도 부족하기는 마찬가지”라면서 “시내의 서점에서 책을 구입하기 때문에 구내서점은 거의 가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이렇듯 학생들이 원하는 구내서점과 실제 서점은 차이가 커 학생들에게 구내서점의 의미는 점점 감소하고 있다. 우선 통신판매를 통해 책을 구입하는 것이 일반화되면서 구내서점에서 책을 구입하는 학생들이 줄어들고 있다. 통신판매로 구입하면 선택의 폭도 넓고, 가격도 저렴하다는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을 직접 보고 자신이 원하는 책인지 확인하고 구입하기 어려워 책을 받아보고 나서 후회하기도 한다. 특히 전공관련서적인 경우 책을 직접 볼수 없는 통신판매를 통해 자신에게 필요한 책을 구입하기는 쉽지 않다. 또한 학생들이 생각하는 서점은 대학서점으로서의 모습이 아니다. 집 근처에 있는 보통의 서점처럼 읽고 싶은 문학책이나 인문사회학 책을 고르고 잡지나 뒤적거리는 곳으로 생각하는 학생들이 많다. 이는 현재의 구내서점이 학생들이 원하고 기대하는 서점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무늬만 대학서점’이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들이다.

서점주인 손이종씨(57)는 “현재 서점 규모에서 전공관련 책들을 많이 보유하는 것은 어렵다”고 말한다. 또 초*중*고등학교 책들과 유아용 도서 등에 대해서는 “교수아파트와 대학원아파트에 사는 구성원들의 자녀들을 배려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리고 “현재 제기되는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서점의 책들을 검색*주문할 수 있는 홈페이지를 만들어 운영하고, 책들을 재배치하여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해 전공관련서적을 더 보완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방법으로 공대만의 전문성을 가진 서점을 만든다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이윤을 많이 얻는 것을 목표로 하는 사업체 입장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구내서점에 대한 불만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는 것이 구내서점의 직영화이다. 현재 독자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구내서점을 복지회가 운영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렇게 될 경우 이윤에 대한 부담을 어느 정도 덜어버리고, 학생들의 학업에 도움을 주는 또 ‘아시아 최고의 공대’라는 학교 위상에 맞는 전문화된 ‘공대서점’을 추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복지회의 기본적인 입장은 “구내서점의 직영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대기도서 보유에 필요한 투자비와 인건비 등에 소요되는 예산이 부족하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이는 대학본부의 복지정책에 적용되어온 ‘합리성에 근거하여 복지와 생산성을 같이 고려한다’는 원칙에 의한 것이다. 복지정책에 있어서도 시장경제원칙을 적용하겠다는 것인데 학생들의 학업환경에 관련된 서점문제에 대한 문제인 만큼 이러한 대학의 태도는 문제가 있다. 과기원 서점의 경우 전공관련서적도 잘 갖추고 있고 대학서점으로서의 역할을 잘 하고 있지만, 운영하는데 있어 재정상의 문제는 거의 없다고 한다. 학생이나 교수, 연구원 등 구성원들이 서점을 잘 이용하기 때문일게다.

현재 대학본부에서는 오는 2003년 개관을 목표로 학술정보관 건립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박현수 복지과장은 “학술정보관에 외국 명문대 수준의 서점을 만들 것을 구상하고 있다는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하지만 학술정보관이 개관하려면 아직 3년이나 남아 있고, 그 때까지 구내서점은 우리 학교의 치부로 남아있게 될 것이다. 또한 이미 대학서점의 의미를 잃어버린 학생들이 학술정보관의 서점이 개관하더라도 그것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성신여대 앞에는 ‘성신글방’이라는 인문사회과학 서점이 자리하고 있다. 3년째 이 서점을 운영하고 있는 김성주씨(38)는 서점운동이 “시대의 아픔과 고민을 함께 한다는 인문사회과학 서점 특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일”이라며 “단순한 서점이 아닌 또다른 문화자치공간으로 숨쉴수 있는 곳을 만들 것”이라고 말한다. 실제로도 ‘성신글방’은 성신여대생들에게 그런 의미있는 공간으로 인식되어지고 있다. 구내서점이 책을 읽고 사는 장소라기보다 약속시간에 늦는 사람을 기다리는 동안 잡지나 뒤적이며 시간을 때우는 공간이라는 생각을 많이 가지고 있는 재학생 입장에서는 이런 전문서점을 가진 성신여대생이 매우 부러울 뿐이다.

대학 내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대학서점이 되는 것은 아니다. 대학서점으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할 때 비로소 진정한 ‘대학서점’이 되는 것이다. 이제 구내서점은 바뀌어야 한다. 그 변화의 방향은 ‘공대만의 정체성’을 가진 서점이어야 하며, 구내서점의 직영화는 그런 서점을 만드는데 있어 가장 확실한 방법일 것이다. 학생들의 학업환경과 학교의 위상과 직결되는 구내서점의 문제인 만큼 시급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