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으로 상식을 깨다
상식으로 상식을 깨다
  • 박민아 / 서울대 협동과정 과학사 및 과학철학 박사과
  • 승인 2005.04.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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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을 넘어 당대 세계와 인식에 영향 미쳐
올해 2005년은 유엔이 정한 “세계 물리의 해”이다. 아니, “아인슈타인 기념의 해”라고 하는 것이 어쩌면 더 정확한 지도 모르겠다. 1905년 아인슈타인이 유명한 세 편의 논문-특수상대성 이론, 브라운 운동, 광전효과-을 발표한 지 100주년, 1955년 프린스턴에서 세상을 뜬 지 50주년이 되는 해이니 말이다. 오는 4월 18일(한국시간 4월 19일), 아인슈타인이 50년 전 눈을 감았던 바로 그 날에는 아인슈타인 사후 50주년을 기념하여, 그가 그 의미를 새롭게 한 “빛”으로 전세계를 잇는 “지구촌 빛의 축제”(Physics Enlightens the World)가 펼쳐진다고 한다. 가히 아인슈타인이 시공간을 통틀어 물리학의 대표주자가 된 셈이다. 100년이나 된 그의 논문에 여전히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도록 하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아인슈타인의 무엇이 아인슈타인을 여전히 물리학의 아이콘으로 우뚝서게 하는 것일까?

1. 시간의 재발견: 시간은 시계로 재는 것!
아인슈타인의 그 유명한 특수상대성 이론에 나오는 수학적인 내용들은 사실 아인슈타인 이전에 이미 몇몇 유명한 물리학자들에 의해 알려져 있었다. 예를 들면, 운동하는 물체는 운동방향으로 길이가 줄어들고 질량은 증가한다는 로렌츠-피츠제랄드 방정식은, 그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아일랜드 출신 물리학자 죠지 피츠제랄드와 네덜란드 출신의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헨드릭 로렌츠에 의해 19세기 말에 이미 발표된 바 있다. 1905년 아인슈타인이 해냈던 일은 이미 있던 이론을 확장하여 새로운 시각으로 해석한 것이다. 새로운 것을 발견한 것이 아니라서 실망스러운가? 실망할 필요 없다. 그것만으로도 그는 세상을 바꿨으니까.

1905년 아인슈타인의 논문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시간의 재발견”이었다. 아인슈타인이 보여주었던 것은 로렌츠-피츠제랄드 방정식의 당연한 결과로 움직이는 물체에서는 시간마저도 느려진다는 것이었다.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흘러간다고 생각했던, 그래서 절대적이라고 생각했던 시간이 사실은 절대적이지 않은 것이다! 후에 로렌츠가 “내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은 (정지한 관찰자의 시간) t만을 진정한 시간으로 간주하고, (움직이는 물체에서의 시간) t`는 부수적인 수학적인 양, 그 이상은 아니라는 생각에 집착했던 데 있다”고 밝혔던 것처럼, 관찰자마다 시간이 다를 수 있다는 아인슈타인의 발상은 기존의 물리학뿐만 아니라 세계관을 뒤엎는 혁명적인 것이었다. 이런 점에서 로렌츠의 “집착”은 구시대적인 물리학자의 꽉 막힌 답답함이라기보다는 “상식적인 대응”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합당할 것이다. 오히려 그 생각을 손쉽게 뒤엎어 버린 아인슈타인이야말로 모든 사람들의 상식을 뒤엎은 놀라운 인물이 아닐 수 없다.

상식을 깬 아인슈타인의 생각은 아이러니하게도 상식에서 출발하는 것이었다. 밤마다 특수상대성 이론에 대한 생각들로 고민하던 20대의 젊은 청년은 스위스 특허청에서 시간을 맞추는 기술 특허들을 심사하는 데 낮 동안을 소비했다. 기차가 도입된 지 얼마 안 되는 스위스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기차역들의 시간을 동일하게 맞추는 방법은 당시 발명가들의 관심을 끌었는데, 이 때문에 특허청 직원 아인슈타인은 시계 도면을 보며 많은 시간을 보냈다. 이 젊은이에게 시간이란 철학적인 심오한 것도, 당연하게 절대적인 것도 아니었다. 특허청 책상에 있는 도면들이 말해주는 것처럼, 시간은 시계로 측정하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것이다. 로렌츠가 붙잡혀 있던 절대적인 시간이라는 집착을 극복하고 “시간의 상대성” 개념에까지 이르게 된 것은 바로 시간은 시계로 측정하는 것이라는 너무나도 상식적인 생각에 기반한 것이었다.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 이론의 힘은 이처럼 상식에 기반을 둔, 단순하면서도 거부하기 힘들만큼 자명한 점에서 나왔던 것이고 그렇기에 반박하기 힘들었던 것이다.


2. 양자역학, 상대론을 본받다
특수상대성 이론의 “시간의 상대성” 개념만큼이나 영향력 있었던 것은 이와 같이 상식적으로, 단순명료하게 생각하는 아인슈타인의 사고방식으로, 이것은 20세기 물리학의 혁명을 이끌었던 또 하나의 주역, 양자역학의 등장 과정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볼프강 파울리,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처럼 양자역학의 성립을 주도했던 젊은 세대 물리학자들은 아인슈타인이 특수상대성 이론을 전개하면서 보여주었던 상식적인 사고방식을 자신들의 연구에도 그대로 적용했다. 특히 그들은 “시간은 시계로 측정하는 것”이라는 생각에 매료되어서 무엇이든 측정 가능한 물리량만이 물리적으로 의미가 있다는 생각을 새로운 양자역학의 지침으로 삼았다. 흔히 우리는 태양계처럼 생긴 원자모형을 사용해서 전자가 원자핵 주위를 공전한다고 이야기하지만, 실제로 전자의 궤도를 측정할 수 있는가? 없다. 다만 전자가 어디에 위치해 있을지, 그 확률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전자의 궤도와 같은 개념은 태양계 원자모형에서 등장하는 파생적인 개념이지만, 측정 불가능하므로 물리적으로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 21살에 수리백과사전에 상대성 이론에 관한 탁월한 해설을 써서 아인슈타인마저 감탄시켰던 파울리와 그의 절친한 친구 하이젠베르크는 아인슈타인의 사고방식을 적용하여 측정 가능한 물리량만으로 원자에 관한 새로운 역학, 즉 양자역학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이처럼 20세기 물리학의 혁명은 물리량들은 우리가 자로, 저울로, 온도계로, 시계로 측정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의미가 있다는 생각으로 두 세기 이상 지속되어 오던 뉴턴의 고전역학을 대체해 나갔다.


3. 과학, 세상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역사에 흔적을 남긴 위대한 과학은 항상 과학을 넘어 당대 세계 전반에 영향을 미쳐왔다. 뉴턴이 1687년 『프린키피아』를 출판하고 고전역학의 한 단계를 완성시키자 그의 업적은 동료과학자뿐만 아니라 당대의 철학자들에게까지 영감을 던져 주었다. 예를 들어, 프랑스의 대표적인 계몽철학자 볼테르는 젊은 시절 귀족과의 결투가 말썽을 일으켜 영국에 망명했을 당시 성대하게 치러진 뉴턴의 장례식을 목도하고 강한 인상을 받게 된다. 그는 뉴턴 과학이 인간의 이성의 위대한 힘을 증명한 동시에, 우리가 이성의 빛을 적절히 사용했을 때 얼마나 새로운 사회를 만들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모범사례라고 생각했다. 프랑스로 돌아온 볼테르는 자신의 애인이었던 샤틀레 부인과 함께 뉴턴의 과학을 프랑스어로 번역하고 소개하는 일에 착수했다. 뉴턴 과학은 볼테르에게 사람들의 이성을 적절히 훈련시킨다면 프랑스 사회를 억누르고 있는 종교적 억압, 귀족들의 권위주의도 청산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심어주었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프랑스 대혁명까지 연결되는 계몽주의는 뉴턴 과학이 보여준 이성의 힘을 사회 전반으로 확산시켜 사회를 개혁하고자 했던 일종의 과학주의 운동이었다고 볼 수 있다.

20세기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도 뉴턴 과학만큼 사회 전반에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 특히 상식으로 상식을 깬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 그러나 그것이 제시하는 세계는 전혀 상식적이지 않다는 점이 다양한 호기심과 상상력을 자극했던 것으로 보인다. 상대성 이론은 정지해 있는 나의 시간과 움직이고 있는 당신의 시간이 같지 않다고 이야기했고, 양자역학은 어떤 물리학으로도 100% 완전하게 자연을 그려낼 수 없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나는 친구와 시간 약속을 해서 제 시간에 만날 수 있고, 불완전한 물리학으로도 우주선을 달에까지 보내지 않았던가! 두 이론이 의미를 갖는 세계가 우리가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세계가 아니라, 빛의 속도에 몇 분의 일에 해당할 만큼 빠른 속도, 원자나 전자를 다루는 미시세계라는 것에 대한 충분한 인식이 없는 상태에서 그것들의 낯설음은 오히려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했던 것으로 보인다.

20세기 전반 새로운 물리학에서 영감을 얻은 사람들은 그것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들을 끄집어내고 다양한 논의들로 발전시켰다. 일부 철학자들은 상대성 이론의 시공간의 상대성을 인식의 상대성과 연결시켜 논의하기도 했다. 양자역학의 새로운 세계관은 그보다 더 강력하게 사람들을 지적으로 자극했는데, 특히 양자역학이 제시한 비결정론적인 세계관은 다양한 철학적 논의를 가능하게 했다. 입자의 속도와 위치 모두를 동시에, 100% 정확하게 관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를 접한 사람들은 그렇다면 결정되지 않은 부분은 어떻게 되는가에 대해 철학적인 질문을 던졌다. 혹자는 그 곳에서 개인의 자유의지가 발현될 수 있는 공간을 찾아냈고, 다른 이는 신의 섭리가 개입되는 지점을 찾아냈다. 심지어 1930년대 독일 물리학자들 중에는 양자역학의 비결정론을 인식의 영역에까지 적용하여, 인간의 인식 중에서 결정되지 않은 부분이 있는데 여기에 히틀러의 정신적 통제가 필요하다는 주장까지도 내놓았다.

계몽주의 철학, 인식의 상대성에 대한 철학적 논의들, 비결정론적 세계관에 대한 해석들이 뉴턴 과학을, 상대성 이론을, 양자역학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있었는가의 문제와는 별도로, 이런 과학들이 과학의 영역을 넘어 사회 전반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고 다양한 논의들을 이끌어 내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과학의 영역을 뛰어넘어 세상을 자극하고 변화를 추동하는 힘들을 가진 과학이 진정 성공적인 과학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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