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의 전통과학] 한의와 양의의 공존 통한 발전 가능성 모색
[동아시아의 전통과학] 한의와 양의의 공존 통한 발전 가능성 모색
  • 이문규(인문사회학부 대우강사)
  • 승인 2000.05.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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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 재 순 서
1. 전통의학 어떻게 볼 것인가
2. 시간의 역사 : 음력과 양력
3. 전통수학과 근대과학
허준과 동의보감

허준 열풍이다. 이렇게 말해도 좋을 만큼 TV 드라마 ‘허준’이 세간의 커다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 드라마가 실제 역사적 사실에 충실하지 못하다는 지적이 이미 여러 차례 제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허준의 열풍은 수그러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일례로 의사로서 허준의 뿌리가 되고 있는 스승 유의태는 실존 인물이 아니다. 한국의학사를 아무리 뒤져보아도 유의태란 인물은 찾을 수 없다. 다만 발음이 비슷한 유이태란 의사가 허준보다 100년쯤 뒤에 나올 뿐이다.

따라서 허준이 스승의 시신을 해부했다는 감동적인 장면 역시 지어낸 이야기이다. 허준이나 당시 조선 의학이 추구한 것은 해부학적 지식에 기초하여 인체를 엄밀하게 탐구하려는 데 있지 않았다. 오히려 “동의보감”에 나타난 허준의 기본적인 태도는 해부학과는 거리가 먼 도교적인 양생(養生)사상을 중시하면서 전통적인 의학체계를 종합하려는 것이었다. 또한 허준은 드라마에서 그려지는 것처럼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져 힘없고 가난한 환자들을 돌보는 민중 의술의 실천자도 아니었다. 그는 어의(御醫)라는 주어진 역할에 충실하면서 의학 연구에 몰두하는 의학자의 삶을 살았을 뿐이다.

한편, 동의보감의 내용은 상당 부분 다른 책에서 인용한 것이다. 그것도 대부분 중국 의학서에서 따온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사실이 동의보감의 가치를 전혀 훼손시키지 않는다. 동의보감은 우리 나라 뿐만 아니라 중국 및 일본에서도 최근까지 수십 차례 간행되었을 만큼 동아시아 의학사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어찌 보면 이런 평가는 이미 동의보감을 통해 보여준 허준의 자신감에서 예고된 결과이기도 하다. 그는 이 책에서 대략 230여 가지의 의서를 인용하고 있는데, 다른 책들과는 달리 그 출전을 꼼꼼히 밝혀 놓았다. 그리고 자신은 수많은 의서와 학파들의 난립으로 혼미해진 상황에서 전통 의학의 핵심을 찾아내어 오류를 바로 잡으려 한다고 하였다. 이런 자신감은 동의(東醫)라는 단어를 선택한 것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허준은 중국의 의학 전통에서 북의(北醫)를 대표하는 이고(1180∼1251)와 남의(南醫)를 대표하는 주진형(朱震亨, 1282∼1358)을 언급하면서 우리 나라의 의학도 북의, 남의와 당당하게 견줄 수 있는 동의의 전통을 가지고 있다고 하였다.


중국의 의학자

허준이 언급한 이고와 주진형은 유완소(劉完素, 12세기), 장종정(張從正, 12∼13세기)과 더불어 이른바 ‘금원사대가’(金元四大家)로 꼽히는 중국 의학사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긴 인물이다. 이들은 당시 널리 성행했던 운기학설(한의학의 독특한 개념인 ‘오운(五運)’과 ‘육기(六氣)’로 질병의 원인과 진행상황을 설명하는 이론)을 중시하는 공통된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실제 임상에서는 서로 강조하는 내용이 달라 독립된 학파를 이루었다. 예를 들어 ‘한랭파(寒冷派)’로 불리는 유완소는 병을 일으키는 주된 원인을 화기(火氣)라고 지적하면서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한랭약물을 사용하여 심화(心火)를 내리고 신수(腎水)를 보강해야 한다고 하였다. ‘공하파(攻下派)’로 불리는 장종정은 질병이 주로 인체에 침입한 사기(邪氣) 때문에 생긴다고 파악하고 치료의 방법으로 사기를 몸밖으로 내보내는 땀흘리기(汗), 토하기(吐), 설사(下)의 세 가지 방법을 강조하였다.

유완소와 장종정의 병인론의 주된 특징이 오운육기의 외적인 작용에 주목한 것이라면, 이고와 주진형은 오운육기의 작용에 따른 인체 내부의 정기(精氣)의 손상을 직접적인 질병의 원인으로 이해하였다. 이고는 원기(元氣)의 충족 정도가 인체의 건강과 질병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인이라고 설명하면서, 오장육부 가운데 특별히 비(脾)와 위의 작용을 강조하였다. 그가 ‘보토파(補土派)’로 불리는 것은 오행이론에서 비장과 위장을 토(土)에 속하는 장부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주진형에 따르면 사람들이 가진 색욕이나 식욕과 같은 지나친 욕심이 몸 안의 상화(相火, 몸 안에 있는 양기의 일종)를 격동시키게 되고, 그로 인해 인체에는 항상 음정(陰精)이 부족하다고 한다. 결국 인체의 원기가 손상되고 질병이 발생하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욕심을 줄이고 음식을 절제하는 등 마음을 다스려 건강을 지켜야 하고, 만약 병이 들면 음정을 보충하여 화기를 내려야 한다는 ‘자음(滋陰) 이론’을 전개하였다.

중국의학사를 보면 이들 금원사대가보다 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사람도 꽤 많다. 그 가운데 중국 의학의 독특한 모습을 가꾼 몇 사람만 예를 들어보자. 먼저 한의학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독특한 침술의 전통은 중국 의학에서 가장 오래된 경전인 “황제내경” ‘영추’에서 시작되는데, 황보밀(皇甫謐, 215-282)과 왕유일(王惟一, 11세기)은 이 분야의 체계를 확실히 잡았다. 다음으로 “신농본초경”에서 시작되는 본초학의 전통은 도홍경(陶弘景, 456-536), 이시진(李時珍, 1518-1593) 등으로 이어졌다. 특히 이시진의 “본초강목”은 식물, 동물, 광물 등 약재로 사용되는 1,892종의 약물을 16부 60류로 상세히 나누어 설명한 당시로서는 가장 뛰어난 약물학 책이다. 더구나 그 안에는 1,000여 폭의 그림 및 11,000여 가지의 처방도 함께 들어 있어 효용성을 높여주고 있다. 한편, 왕숙화(王叔和, 약180-260)는 맥진(脈診)의 전통을 분명히 하였고, 장중경(張仲景, 2-3세기 활동)과 손사막(孫思邈, 581-682), 장경악(張景岳, 1563-1640) 등은 임상의학의 내용을 더욱 풍부히 하였다.


한의학의 오늘과 내일

이와 같은 중국의 전통의학, 나아가 동아시아의 전통의학은 오늘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 중국에서는 중의학이라 하고, 북한에서는 동의학이라 부르는 것을 우리는 한의학이라 부른다. 그것도 전에는 漢의학이라 하다가 최근에는 韓의학이라고 한다. 이런 이름의 차이는 각 나라마다 전통의학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를 반영한 결과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서로 다른 이름이 붙어 있어 동아시아의 전통의학을 하나로 묶어내는 작업은 상대적으로 소홀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것은 또한 전통의학이 서양의학에 점점 밀려나게 된 현실과도 직접 관련되어 있을 것이다. 한의학과 양의학은 동일한 인체를 바라봄에도 아주 다른 틀을 가지고 있다. 한의학의 기반이 되는 기(氣)라는 개념을 서양의학, 나아가 현대과학에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점은 이런 차이를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에 불과하다.

물론 한의학과 양의학이 함께 갈 수 있는 가능성도 여러 곳에서 찾아진다. 예를 들어 중국에서는 두 개의 서로 다른 의학체계가 사이 좋게 공존하고 있다. 서양에서도 비록 침술에 국한되고 보조적인 수단에 머물고 있기는 하지만, 한의학이 현대의학의 일부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그에 미치지 못한다. 비록 최근에 한방과 양방의 협진 체계가 일부 시도되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도 끝나지 않은 한약분쟁에서도 잘 드러나듯이, 오늘 우리의 의학은 한의와 양의의 올바른 관계 설정을 위한 방향도 제대로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과연 자연세계의 일부로서의 인간의 신체를 바라보는 눈은 단일한 것일까. 현대의학이 한의와 양의의 대립을 넘어서는 제3의 의학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인가. 드라마 ‘허준’은 비록 역사적 사실에서는 벗어나 있지만, 성심껏 치료하고 모든 병을 고칠 수도 있는 우리가 희망하는 바람직한 의사의 모습을 대변하고 있다. 앞으로 한의사가 될 때 ‘허준선서’를 해야한다는 주장이 나올 법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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