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과학, 세계의 매듭을 풀기 위한 학제적 연구
인지과학, 세계의 매듭을 풀기 위한 학제적 연구
  • 여명숙 / 인문 강사
  • 승인 2003.06.1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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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스챔피온 딥블루는 지능을 가졌는가?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에 나오는 수퍼 컴퓨터 할(HAL)처럼 인간에 대해 반란을 일으키는 컴퓨터가 가능할까? 왜 매트릭스는 음향시설이 좋은 영화관에서만 봐야하는가? 아바타의 행위에 대해서도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가? 영화가 끝난 후 카페에 둘러앉아 논할법한 일시적인 감상의 주제에 불과하던 이러한 질문에 답하는 일이 이제 일상인의 호기심을 벗어나 학적 연구의 주제로 여겨지게 된 이유는 바야흐로 마음의 본성에 대한 과학적 접근이 가능한 시대라는 직관 때문이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며 생각하는 존재라는 속성 때문에 자연계 내에서 누리는 독특한 지위를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컴퓨터의 능력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해 가는 상황을 보면서 인간존재의 위치에 대해 낙관하기는 어렵게 되었다. 인간과 그의 창조물인 인공지능이 공진화하는 새로운 세계에 걸맞는 가치관이 필요한 시점이며, 이를 위해서는 인간의 본성, 즉 마음의 비밀에 대한 탐구가 요구된다. 쇼펜하우어가 말하였듯 마음은 세계의 매듭이며, 그 매듭을 푸는 열쇠를 제공하려는 야심에서 태어난 학문이 바로 인지과학이다.

인지과학이란 무엇인가?

인지과학은 1950년대를 기점으로 태동하여 1970년대 중반에 비교적 뚜렷한 모습을 갖추어 부상한 학제적 과학으로, 심적현상을 마음의 내적 구조, 정보의 수용, 저장, 검색, 변형, 전달 및 지식의 활용 등을 중심으로 해명해보려는 학문분야이다. 인지과학을 형성하는 분과학문중 대표적인 것으로 컴퓨터 과학, 신경과학, 인류학, 심리학, 언어학, 철학을 들 수 있으며, 각 분야의 중심 연구 주제는 다음과 같다.

컴퓨터과학: 기계적 시각 및 청각 대상의 지각, 기계적 언어처리, 상식이나 전문가의 지식표상, 문제해결, 기계학습, 기계적 행동, 기계추론, 웹 마이닝 등의 정보처리와 관련해 계산적 모형을 전통적 컴퓨터 혹은 신경망 프로그램으로 구현하는 일.

언어학: 언어의 문법적 구조, 언어와 인지의 관계, 의미론, 화용론, 자연언어 처리등 인지과정의 핵심도구인 언어정보처리의 문제를 논리적 분석, 실험, 시뮬레이션등의 방법으로 연구하여 인지심리학과 인공지능학 그리고 철학의 교량적 역할을 수행.

철학: 마음과 물질의 관계, 지향성, 표상의 존재론적 위치에 대한 연구로 인지과학의 기초 개념들에 대한 분석과 비판.
인류학: 거시적인 측면에서 종과 사회와 문화가 인간과 동물의 인지양식과 표상구조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

심리학: 인간의 형태지각, 주의, 학습, 기억, 언어이해 및 산출, 개념적 사고, 문제해결적 사고, 추리, 판단과 결정, 창의성과 지능, 운동을 비롯한 각종 행위와 기술의 과정을 실험, 시뮬레이션, 프로토콜 분석등의 방법으로 정보처리관점에서 연구.(이정모, 2001, 인지심리학, 아카넷 참고)

인지과학은 “심적과정이란 정보의 유한한 계산적 처리과정이다”라고 정의내리는 계산주의 패러다임에 기초하여 마음을 설명한다. 사고는 마음 속의 표상적 구조와 그러한 구조 위에서 작동하는 계산적 절차들의 측면에서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논리적 명제들, 규칙들, 개념들, 이미지들과 같은 심적 표상들을 컴퓨터 데이터에 유비시키고, 연역, 탐색, 짝짓기, 재인과 같은 심적 절차들을 계산 알고리즘에 유비시켜 잘 작동하는 컴퓨터 모형을 만들면 그것으로 문제가 되는 심적 기능에 대한 설명이 완결된다고 보는 입장이다. 물론 표상의 종류와 계산의 복잡성 정도에 따라 폰-노이만형이냐 뇌신경망이냐 혹은 혼합형 아키텍쳐를 택할 것이냐를 두고 학자들마다 견해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어느 것을 택하든 간에 계산주의 패러다임 안에서 작동한다는 점에서 마음에 대한 경험적 탐구는 열려있다고 볼 수 있다.

인간의 마음이 표상과 계산에 의해서 작동한다는 주장은 경험적 추측이며 틀릴 수도 있는 주장이다. 바로 그 점에서 계산주의는 실험과 반박을 잘 견디어 내는 한 마음에 대한 가장 설명력 있는 이론일 수 있다. 현재 인지과학이 계산-표상적 접근법에 기반하여 인간의 문제풀이, 학습, 언어 사용과 같은 여러 측면들에 대하여 성공적인 설명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심적 능력의 본성에 비추어볼 때 이러한 접근법은 근원적으로 잘못되었다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다. 20여년간 일관되게 원리적 비판을 해 온 사람으로 써얼(J. Searle)과 드레이퍼스(H. Dreyfus)를 들 수 있는데, 그들이 인지과학을 비판하는 논점은 다음과 같다.

인간의 삶은 각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다양하므로 인간 지식의 무한한 해석학적 맥락을 유한한 절차로 프로그램할 수 없다.(드레이퍼스) 설령 자연언어를 처리하는데 있어서 인간과 구분할 수 없는 컴퓨터를 만들었다 하더라도 컴퓨터는 형식적 구문만 처리할 뿐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므로 언어를 이해할 수 없다.(써얼)
드레이퍼스의 비판은 프로그램과정에서 지식의 무한소급을 벗어날 수 있는지에 대한 경험적 물음으로 학습 알고리즘에 의한 지식처리가 가능함을 보임으로써 쉽게 물리칠 수 있는 반면, 써얼의 논박은 두뇌의 지향성에 기초한 선험적 논박이므로 이를 재반박 하는 일이 쉽지 않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계산주의가 표방하는 계산 개념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서 비롯된 것임을 감안하면 인지과학에 대한 원리적인 장애물이란 없다고 말할 수 있다.

계산주의의 정의에서 ‘계산(computation)’이 의미하는 바는 산술(‘더하기’, ‘빼기’, ‘곱하기’, ‘나누기’) 뿐만 아니라 논리학에서 사용되는 계산(‘AND’, ‘OR’, ‘NOT’, ‘XOR’)과 비교(‘IF THEN ELSE’)와 분기(branch)도 포함된다. 또한 실제 기계 속에서 일어나는 물리적 과정(컴퓨터 칩 속의 게이트나 플립플롭)의 작동도 계산 개념에 포함된다. 컴퓨터의 소자들은 전압의 어떤 영역을 ‘1’ 또는 ‘0’이라는 추상적 상태로 식별하고 이 상태의 조합으로 새로운 상태를 산출한다는 점에서 논리적이고 계산적이다. 이렇게 컴퓨터 내에서 일어나는 계산이 구체적이고 물리적인 과정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계산을 산술체계나 기하학 체계에서 진행되는 것과 같은 추상적인 것으로 해석한 써얼의 반박은 무너지게 된다.

감정과 의지의 기능 해명은 아직 초보 수준

마음의 능력을 지능, 감정, 의지로 3분해 볼 때 지능에 대한 컴퓨터 모의는 원리적으로 가능하지만, 아직도 추리에 있어서의 창조성, 자의식과 같은 메타인지적 기능을 남김없이 모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며, 감정과 의지의 기능에 대한 해명은 이제 겨우 문제제기 단계에 머물러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계산주의 패러다임에 근거한 모델은 논리적 일관성과 경험적 대응성을 고루 갖춘 건전한 모델로서, 부분적인 심적현상을 다루는 어느 경쟁모델보다 포괄적인 설명력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향후 전개될 뇌과학과 컴퓨터 과학의 발전은 이 패러다임의 타당성을 지지하는 강력한 증거를 계속 제공할 것이다. (공용현, 1999, 인지과학의 철학, 서강대 철학과 참고)

다시 진한 커피 향이 나는 카페로 돌아가 인공지능과 인간의 미래에 대한 논의가 어떻게 결론지어졌는지 들여다보자. 딥블루는 체스게임이라는 문제영역에서는 누구보다도 뛰어난 지능을 가졌다. 딥블루가 할과 같은 범용 시스템이 되기 위해서는 방대하고 효과적인 지식축척의 방법이 고안되고, 인간의 명령을 거스를 정도의 자기보존 능력을 갖기 위해서는 자의식 기능이 확보되어야 하지만 현재로서는 열린 문제이므로 긍정적이라고 볼 수 있다.

매트릭스는 요란하고 입체적인 배경음악 자체가 메시지의 일부이고, 미디어가 곧 메시지임을 실감케 하는 영화이므로 가상현실이 현실의 일부임을 느끼기 위해서는 꼭 영화관에서 보아야 한다. I.D.만으로 타자와 나를 구분지을 수 있는 사이버스페이스는 이미 우리의 생활공간이 되었고 그 안에서 일어난 행위가 현실세계에 영향을 미치므로 지능을 가진 프로그램 역시 행위의 주체가 될 수 있다. 문제는 현실세계의 법을 재정비하는 일이며, 사이버문화를 지배문화나 반문화로 만들지 않는 방도를 강구하는데에 인지과학적 탐구 결과의 개입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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