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조금 더 겸손해져야 한다
인류는 조금 더 겸손해져야 한다
  • 김우재 / 생명 박사과정
  • 승인 2002.08.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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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티븐 제이굴드
인류는 조금 더 겸손해져야 한다

“테이프를 돌려라. 그리고 멸종으로 리피디스티안 (척색동물의 조상)을 지워보라. 그러면 우리의 육지는 곤충과 꽃들로 이루어진 무적의 왕국이 될 것이다.”

위의 말은 얼마 전 타계한 미국의 유명한 고생물학자이자, 수많은 과학저술로 더욱 유명한 스티븐 제이 굴드(Stephen Jay Gould)가 한 말이다. 또한 이는 진화를 박테리아로부터 무척추동물, 척추동물, 영장류 그리고 인간에 이르는 진보와 수렴의 과정으로 생각하는 사람들 (특히 진화란 원숭이가 인간이 되는 것이다라고 믿는 이들)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1941년 태어난 굴드는 어릴 적 박물관에서 본 공룡 화석에 매료되어 컬럼비아 대학에서 고생물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종의 기원’으로 진화론을 대중에게 널리 알린 찰스 다윈의 경우처럼 굴드도 Naturalist(박물학자)이자 탁월한 문필가로 알려져 있지만, 그가 과학계에 남긴 영향 또한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것이다. 사실 이 위대한 과학자이자 사상가의 저술과 생애를 단 몇 줄의 글로 표현한다는 것은 무리가 따르는 일이다. 그를 따라다녔던 수많은 과학적 논쟁들만 해도 몇 년 만에는 정리가 힘들 정도의 분량이기 때문이다. 그는 과학자이기도 했지만 유명한 독설가이자 논쟁가였다. 그가 가는 곳엔 항상 논쟁이 따라다녔고, 그러한 논쟁들 속에서 탄생한 수십 권의 저술이 그를 빛나게 했다. 이 글에서는 그가 그의 생애를 걸쳐 고군분투하며 펼친 몇 가지 주제와 이러한 그의 사상이 우리에게 던져 주는 교훈에 대해 살펴보겠다.

다윈은 틀렸다 - 단속평형론

굴드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72년 그의 동료 닐스 엘드리지와 함께 “Punctuated Equilibrium (단속 평형론)”이라는 종분화(Speciation)의 새로운 이론을 제안하고 난 후의 일이었을 것이다. (Pubmed 에서 논문을 검색하면 최근 엘드리지와 리뷰형식으로 다시 PANS에 발표한 논문을 볼 수 있다.) 찰스 다윈 이후 종의 분화에 대한 메커니즘이 지속적으로 연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짧게는 수만 년, 길게는 수백만 년이라는 시간 속에서 이루어지는 종 분화의 과정은 가설만이 난무할 뿐 검증할 방법을 찾을 수 없는 진화론의 치명적인 약점 중 하나였다. 동굴 속의 종유석이 어느 순간 둘로 나뉘어 자라는지 관찰할 수 없듯이 종분화라는 현상은 이루어진다는 확신만 있을 뿐 증명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많은 진화학자들은 단기간 내에 관찰되는 소진화 (Micro Evolution) - 이에 견주어 종분화를 포함하는 진화의 과정을 대진화(Macro Evolution) 라고 부른다 - 의 과정이 종분화에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생각했다. 즉 우리가 진화의 증거라고 배워왔던 나방의 색깔 변화와 같은 소진화의 메커니즘을 파충류에서 조류의 진화에 그대로 적용시켜 왔던 것이다. 이를 단순화시켜 생각하면 소진화의 축적이 대진화로 이어진다는 설명이 된다. 종분화에 대한 이와 같은 단순적용의 이면에는 찰스 다윈이라는 넘지 못할 산이 버티고 있었다. 다윈은 진화를 충분한 시간 속에서 점진적으로 일어나는 과정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현대의 진화학자들 또한 이를 당연히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굴드는 다윈의 영향력을 과감히 벗어 던졌다. 그는 다윈이 골머리를 썩이며 불완전한 화석상의 증거때문이라고 결론지은 현상들(단속되어 나타나는 화석들과 캄브리아기의 대폭발과 같은)을 새로운 관점으로 재해석 했던 것이다.

그는 새로운 종은 그의 부모 종으로부터 이미 완전히 분화되어 화석기록 속에 나타난다는 점에 주목했다. 또한 하나의 새로운 종이 출현하면 그 종은 일반적으로 멸종할 때까지 더 이상의 진화적 변화를 겪지 않거나 딸종들로 갈라지기 전까지 더 이상의 진화적 변화를 겪지 않는다는 점을 의식했다. 즉 평균적으로 500만년 정도 되는 종의 수명에 비추어 볼 때 평균적으로 5만년 정도에 걸쳐 이루어지는 종분화의 과정은 지질학적 척도로 볼 때 ‘순간’이라는 것이다. 종은 점진적으로 진화해서 새로운 종이 되지는 않으며 새로운 종은 전형적으로 국소 개체군들 중 하나 혹은 둘의 빠른 종분화에 의해서 부모 종으로부터 갈라지면서 생겨난다는 것이 단속평형설의 핵심이었다. 진화학자들의 영웅인 찰스 다윈의 가설을 정면에서 반박하는 듯한 이 도전적인 가설은 발표 직후부터 수 십년 동안 엄청난 비난의 화살을 받았다. 어떤 진화학자는 단속평형설을 조롱하기 위해 ‘Punk Eek’ 혹은 ‘Evolution by Jerks’ 라는 말을 만들었다. 단속평형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일단의 창조과학자들은 이를 ‘신이 생물을 창조했다는 결정적인 증거’라며 기뻐하는 코메디를 연출하기도 했다. 하지만 계속되는 연구와 증거들은 종분화의 속도가 생각보다 빠르며 굴드의 말처럼 누적적이고 점진적으로 일어나는 소진화에 비해 종분화는 ‘순식간’에 일어난다는 사실을 증명해 냈다. 그리고 그 수십 년간의 논쟁 끝에 이제 단속평형이론은 진화학계에서도 당당히 인정 받는 하나의 이론으로 자리잡고 있다.

인류를 ‘An Accident’라고 규정하는 사상가

그는 유명한 논쟁가였다. 그리고 그의 논쟁속엔 항상 “인간” 이라는 대명제가 따라 다녔다. 대멸종과 인류에 의해 자행되고 있는 제6의멸종을 통해 그는 우리 인류가 진화의 정점에 서 있다는 헛된 망상을 타파하기 위해 평생을 싸웠다. 그런 의미에서 굴드는 순교자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그는 인류를 “An Accident” 라고 본 사상가였다. 생명의 출현에서 지금까지 지구는 변함없이 박테리아의 것이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인류는 신의 축복을 받아 지구 위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우연히 출현한 존재일 뿐이라는 것이다. 지각의 변동으로 인해 우연히 생겨난 아프리카의 Great Rift Valley는 아프리카의 동쪽과 서쪽의 풍토를 완전히 뒤바꾸어 놓았다. 갑자기 동아프리카의 초원에 적응해야 했던 인류는 풍족한 삼림 속의 안락을 잃은 영장류의 후손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인류를 지구의 역사에 우연히 출현한 먼지와 같은 존재로 보는 그의 사상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분명하다. ‘인류는 조금 더 겸손해져야 한다.’

굴드는 미국사회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던 인물이다. 그의 모습이 ‘심슨 가족’의 캐릭터로 등장할 정도로 그는 대중적인 인물이었다 (게다가 연예인도 아닌 과학자였다!). 그러나 그는 매스컴을 타기 위해 책을 쓰고, 교수라는 자격으로 얕은 식견을 자랑하는 허울 좋은 지식인이 아니다. 오히려 그에게는 실천적인 과학자라는 말이 잘 어울린다. 그는 ‘진화’라는 생명 과학의 대명제를 타고난 글 솜씨로 대중에게 널리 알리는 한편, 연구에도 부단한 노력을 경주한 실천적 지식인이었다. 매스컴에 나와 얄팍한 지식을 파는 과학자들이나 보아온 우리들에게 그는 과학자의 ‘Role Model’ 을 보여주고 있다. 과학은 사회와 동떨어져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과학은 사회의 영향을 받으며 발전한다. 과학이 사회에 의해 영향을 받는 것처럼 과학은 사회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치는 학문이다. 인문학의 성과와는 달리 과학적 성과는 우리에게 피부로 다가오는 가까운 현실이기 때문이다. 줄기세포에 관한 연구가 사회적 이슈가 되고, 인간복제 문제로 언론이 연일 뜨거운데도 불구하고 이에 관해 제대로 답해 줄 과학자가 없는 우리의 현실은 위대한 과학사상가였던 굴드를 대할 때 더욱 안타깝기만 하다. 이젠 우리에게도 과학적 성과와 더불어 사회의 실천적 지식인으로서 존경받는 과학자가 필요하다.

과학자는 예술가에 더 가까운 사람

자신의 분야에 대한 깊은 이해와 더불어 타 학문에 대한 폭넓은 관심, 그러면서도 가벼움을 잃지 않았던 과학자. 과학이 사회에 던지는 문제들에 대해 잘 인식하면서 많은 저술들로 이를 실천한 사상가. ‘복부중피종’ 이라는 암으로 수년간을 투병하면서도 중간값 생존율 8개월이라는 자신의 현실을 통계학적으로 분석해 스스로 위안을 찾고, 그러면서도 과학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았던 그의 60여년의 삶은 이 시대 과학자가 되기 원하는 젊은이들에게 많은 것을 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굴드의 말로 처음을 시작했듯이 그의 말로 끝을 맺도록 하자.

“과학은 아무런 감정없이 객관적 정보만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과학은 창조적인 인간 활동이며 과학의 천재는 정보 처리자가 아니라 오히려 예술가에 더 가까운 사람이다.“

과학은 예술의 과정이며, 과학자는 매일 도를 닦는 사람들이다. 나는 화이트헤드가 교육의 목적이라고 이야기 했던 ‘As deep as philosophy and as high as art’ 라는 말을 다시 굴드에게서 듣게 된다. 과학은 철학과 예술의 가운데에 서서 세상을 바라보는 학문이다. 오늘, 당신은 실험실에서 예술가와 같은 열정을 느끼고 있는가?

덧붙여서...

굴드의 저서 중 몇 권이 국내에 번역되어 있다. 그에게 관심이 있는 사람은 그가 기고했던 칼럼을 모아 하나의 주제로 엮은 베스트 셀러 ‘다윈 이후 (Ever Since Darwin)’와 진화에 관한 좋은 입문서인 ‘판다의 엄지 (The Panda’s Thumb)’, 최근 출판된 ‘풀하우스 (Full House)’ 를 일독하기를 권한다. 그리고 굴드와 여러 사상가들이 공저한 미래서 ‘새로운 천년에 대한 질문’ 과 인간복제 문제에 대한 도킨스와 굴드의 글을 접할 수 있는 ‘클론 앤 클론’ 이 번역되어 있다. 위에서 언급한 킴 스티렐니 교수의 책 ‘유전자와 생명의 역사 (Dawkins VS. Gould)’ 는 그 후에 시간이 날 때 읽는다면 도움이 될 2차서적이다. 조금 더 관심 있는 사람은 야후닷컴에서 Stephen Jay Gould로 검색을 해보면 된다. 검색 후 놀라지 마시길… (웹사이트만 14개에 웹 문서가 82,300장이다. 네이버닷컴에서 이나영으로 검색을 해도 불과 4345장의 웹 문서뿐이다). 인터넷으로 스포츠 신문이나 뒤적이며 남는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는 그 시간에 과학분야의 사상가들이 남긴 글의 발자취를 한번 따라가 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