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칼럼] 일류대학은 일류교수가 만든다
[명사칼럼] 일류대학은 일류교수가 만든다
  • 최형섭 / 대한민국학술원 회원, 전 과학기술부 장관
  • 승인 2000.11.01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육개혁위원회가 탄생한다. 이러한 위원회에서는 거의 단편적인 과제나 지엽말단에 속하는 문제 등을 토의하다가 끝을 내버려 이제까지 뚜렷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마당에서 우리는 진지하게 우리의 교육이 어디로 가야 하는가를 생각해야 할 것이다. 우선 먼저 우리의 대학교육이 가야 할 방향부터 살펴보기로 하겠다.

현대사회에 있어서 대학의 위치와 역할은 그 사회가 대학에 대하여 가지는 기대와 요구에 따라 달라진다. 오늘날 사회 각 분야에서 급격히 일어나고 있는 변화는 대학에 대한 국가사회의 기대와 요구의 내용을 변화시키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우리나라에서는 대학교육의 양적 확대도 필요하겠지만, 그 무엇보다도 교육내용의 질적 변화가 절실하다.

향후 한국에서 대학이 질적인 발전을 추구하기 위하여 이루어져야 할 대학교육의 방향으로는 우선 학문적인 수월성(Excellence)의 추구, 대학체제의 다양성의 조장, 대학 관리·운영의 자율성과 효율성의 제고가 중요한 과제로 거론되며, 이러한 방향 아래 추진되어야 할 구체적인 실천방안으로는 대학의 기능과 유형 및 규모, 교육과정 편성과 실천, 교수의 충원, 대학운영에 필요한 재정 확보 등 많은 과제들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일반적인 방향 아래 대학의 질적 향상 방안을 좀더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첫째 각 대학은 대학마다 특징(Uniqueness)이 있어야 한다. 대학은 교육, 연구 그리고 봉사라는 본질적인 기능을 가지고 있는데, 이러한 기능의 비중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 대학의 특징이 나타나게 된다. 만일 세 가지 기능 중에서 연구에 치중하게 되면 연구중심대학이 되는데, 구미의 일류대학들은 거의가 연구중심대학이다. 미국의 통계자료에 의하면 미국 3,000여 대학 중 오직 400여 대학만이 연구를 수행하고 있으며, 최우수 10개 대학이 총연구비의 25%를, 36개 우수대학이 50%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자 한다. 대학의 특징에 관해서는 기능적 분류 외에 분야적인 분류도 있을 수 있다. 예컨대 스탠포드(Stanford)대학은 전자공학,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은 기계공학, 캘리포니아공과대학(Caltech)은 항공공학(Aeronautics) 등과 같이 그 대학의 수월성(秀越性)을 대표하는 분야를 그 대학의 특징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두번째는 탁월한 교수진을 가져야 하며, 마지막으로 우수한 학생들이 선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퍼듀대학(Purdue University)에서는 대학발전을 위하여 아주 유능한 젊은 총장을 영입했다. 그가 와서 제일 먼저 한 일은 대학에 팽배해 있던 무사안일주의의 제거였다.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고 있는 나이 많고 무능한 교수들을 없애야 하는데, 그는 이들을 파면하지 않고 그들이 받고 있던 봉급을 그대로 주고 더 좋은 방에 있도록 해놓고는 강의를 하지 않도록 한 것이다. 강의와 학생지도는 새로 채용된 젊은 교수들한테 맡겼다. 이렇게 하여 3년이 지나고 나니 늙은 교수들은 하나둘씩 다 사라져버렸다. 삼류대학이던 퍼듀는 얼마 안되어 일류대학이 된 것이다.

세계에서 으뜸가는 공과대학으로 많은 사람들이 캘리포니아공과대학(Calte ch)을 지적한다. 그러나 이 대학은 캘리포니아주의 조그마한 시골도시 파사데니아(Pasadenia)에 있는 일반기술직업훈련학교(A Local School of Arts and Crafts)를 공과대학으로 개편한 것이다. 이 대학이 명성을 떨치게 된 것은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밀리칸(Robert A. Milik an) 교수를 총장으로 영입하는 동시에 많은 석학들을 교수로 유치한 데에 기인하는 것이다. 이러한 탁월한 교수들이 자리잡게 되니 자연히 우수한 학생들이 모여들게 되었고, 소수정예(少數精銳)의 대학원 대학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된 것이다. 이 대학은 졸업생 및 교수 중에서 21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 세계적으로 가장 우수한 과학기술교육기관의 하나로 지목되고 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거론하고 싶은 일은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과의 상관관계가 아주 중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대학교육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아무리 사회가 변하고 기술이 발달된다고 해도 과학기술교육에서는 ‘인간 대 인간’의 교육이 가히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아주 훌륭한 선생이 교육을 하더라도 목적과 의욕이 없는 학생에게는 아무런 효과가 없다는 것을 감안할 때, 일류대학이 되려면 탁월한 교수와 더불어 우수한 학생이 뒤따라야 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