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여덟 오름돌] 수능, 무엇을 위한 시험인가
[일흔여덟 오름돌] 수능, 무엇을 위한 시험인가
  • 이재훈 기자
  • 승인 2000.11.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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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200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하 수능)이 치러졌다. 8십만명이 넘는 학생들이 1년 중에 단 한번 있는 이 시험을 위하여 고교 3년을, 또는 고교를 졸업하고서도 몇 년을 열심히 준비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이 시험이 끝난 후 3년 또는 그 이상을 그토록 열심히 준비한 보람을 느낄 수 있느냐이다.

이번 수능의 특징은 98년 입시부터 시작된 ‘수능 쉬워지기’의 결정판이었다는 것이다. 이제 수능은 ‘공부를 열심히 해서 얼마나 많이 맞히는가’가 아닌 ‘공부를 대충해도 얼마나 실수를 덜 하는가’의 단지 형식상의 시험이 되어버렸다. 당초 15일 오전에 있었던 기자회견에서만 해도 수능시험 출제위원장 김임득 한양대 교수는 “수능성적 상위 50% 수험생들의 평균성적은 지난해 100점 만점기준으로77.5점에서 76.8점으로 떨어지고 이를 400점 만점으로 환산하면 3∼5점 정도 하락할 것”이라고 밝혔었다. 그러나 일선고교들의 재학생 점수 가채점 결과와 입시기관들의 예측을 취합한 결과, 99학년도와 2000학년도에 각각 1명씩에 불과했던 수능만점자가 전국적으로 수십 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는 등 ‘다소 어려울 것’이라는 발표와 달리 ‘너무 쉬웠다’는 분석이 속속 나오고 있다. 특히 수능모의고사 370점 이상을 받아 상위권대학에 실제로 진학할 수 있는 최상위권 학생의 경우 점수상승폭이 10점 이상, 300∼340점대인 중위권은 20점까지도 올랐다는 것이 일선고교와 입시기관들의 예상이어서 수능의 변별력 약화에 대한 문제제기와 함께 수능 무용론까지도 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수능을 쉽게 출제함으로써 사교육비의 경감과 성적 위주의 입시 완화라는 당초 목표를 이루어 냈을까. 그 답은 결코 긍정적인 것 같지는 않다. 수능의 변별력 상실로 무용지물이 됨에 따라 학생부 성적 비중이 크게 높아지고 상위권은 동점자가 많아져 그 어느 때보다 수능 이외의 면접, 논술, 학생부 등의 반영요소가 중요해졌다. 이에 따라 학원비가 100만원을 호가하는 논술학원으로 학생들이 몰리고 서울대 소위 인기학과의 경우 특차모집에서 인문계·자연계 모두 최소한 396점 이상 돼야 지원이 가능하고, 398점 이상 돼야 합격 안정권에 들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과연 이것이 사교육비의 경감이고 성적 위주의 입시를 완화시킨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오히려 혼란만 가중시키고 100점 만점에 99점짜리 학생도 떨어질 수 있다는 만화같은 상황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연출하고야 말았다.

우리학교 또한 이번 수능이 학생들을 선발함에 있어 큰 변수가 아닐 수 없다. 수능 점수를 통한 학생들의 자질 판단이 거의 무의미해져 소수의 학생만을 선발하는 우리학교로서는 총점 기준 1점 이하의 점수차이도 당락을 판단하는 곤혹스러운 상황이 생길 것이 불을 보듯 뻔해 결국 실력이 아닌 운으로 학생을 선발하게 되는 셈이다.

이제 내년부터는 수능성적을 9등급으로 나눠 반영하되, 대학 모집단위에 따라 영역별 성적을 중시한다고 한다. 하지만 수능의 비중 자체가 낮아지고, 수능성적 위주로 뽑는 특차시험도 없어진다. 반면 고교 수행평가, 시험 등을 포함한 학생부 성적의 비중이 대폭 커진다. 특히 우리학교의 경우 수시모집으로만 70%의 학생을 뽑는다. 그러나 일부 교사의 신뢰저하, 수행평가, 학교성적평가의 공정성에 대한 의구심이 일고 있는 가운데 과연 이것이 대학 진학에 대한 자료로 원활히 활용될 수 있을지 걱정이다.

이미 고등학교 2학년 교실에선 성적 부풀리기 시험 때문에 성적의 우열을 가늠할 수가 없다고 한다. 수능이 다시 대학입시의 주요변수로 떠오를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되었을 때, 이번과 같은 변별력없는 수능은 학생들에게 피해만 끼칠 것이다. 자녀들의 대학 합격을 위해 백일기도를 드린다는 수험생 어머니들, 집안의 어느 대소사보다도 더욱 심각히 인식되는 고3을 둔 집안 등 우리나라의 입시 열풍은 매우 뜨겁다. 그만큼 수능은 국가적으로 매우 중요한 사안임을 심각히 고려하여 이런 혼란을 되풀이하지 않는 방향으로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