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장회익 교수
[인터뷰] 장회익 교수
  • 황정은 기자
  • 승인 2004.03.03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무한경쟁에 앞서 온생명을 고려하는 자세 가져야’

올 초, 한 일간지에 함께 신년 대담을 했던 황우석 교수가 최근에 배아 줄기세포를 유도하는 업적을 이뤘습니다. 이번 업적을 어떻게 보십니까?

이번 업적은 인간을 복제할 수 있는 길을 열었기 때문에 주목받는 것 같습니다. 인간 배아를 사용하는 문제는 배아를 어느 순간부터 인간으로 볼 것인가 하는 질문에 대답할 것을 요구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배아가 어느 순간 까지는 인간이 아니고, 어떤 시점부터는 갑자기 완전한 인간인 것처럼 생각합니다. 즉, 배아가 인간이 되어가는 과정을 state function으로 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 생각으로는, 발생 과정은 획기적인 변화를 맞이하는 순간은 몇 번 있지만 연속적인 ‘완만한 계단’이라고 생각합니다. 영아나 어린이, 미성년자도 성인으로 취급받지는 않지요. 이처럼 배아는 인간이 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지만 얼마나 인간에 가까운가에 따라서 차별적으로 생각되어야 할 것입니다. 성인을 살해하는 것과 낙태가 서로 다르듯이 인간 배아를 사용했다고 해서 인간을 살해한 것과 같게 볼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배아 연구를 사회적 합의 하에 규제·통제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완전히 금지해야 한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 유전자조작 농산물 개발이나 수입을 반대하시는 이유가 생태계 변화 속도를 너무 빠르게 하기 때문이라고 들었습니다.

나는 온생명을 건강하게 유지하고 보전하는 것이 낱생명 하나하나의 탐욕을 만족시키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온생명도 생리의 고유한 속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유전자조작 농산물 기술은 온생명이 가지고 있는 생리의 속도보다 훨씬 빠르게 온생명의 생리를 바꾸려고 합니다. 이렇게 하면 온생명의 건강을 해칠 우려가 있습니다. 온생명이 건강하지 못하게 되면 낱생명인 우리도 위기에 직면할 것입니다.

- 온생명의 건강을 해치는 주요한 요소가 환경오염일 것입니다. 그런데 유전자조작 기술을 통해서 환경오염을 완화시킬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기술에도 반대하십니까?

구체적인 행위 하나하나가 옳고 그른가를 따질 것이 아니라 기본 원칙을 세우고 그 원칙과의 연관성 맥락에서 구체적 행위들을 고찰해야 합니다. 이러한 연관성을 따지는 것은 전문가인 과학자들의 영역입니다. 온생명 보전의 원칙을 체화한 과학자들이 시민사회의 믿음을 얻은 상태에서 구체적인 행위들에 대한 판단을 내려야 합니다. 이러한 판단 내리기에는 생명과학 뿐만 아니라 사회, 경제, 정치 전반에 대한 이해뿐 아니라 시민들의 감성에 대한 이해도 요구되므로 폭넓게 사고할 수 있는 과학 지식인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유전자조작 농산물이기 때문에 반대’라는 것은 아니고, 또 모든 유전자조작 농산물 기술을 금지해야 한다는 생각도 물론 아닙니다. 다만 자제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유전자조작 농산물 기술은 매우 조심스럽게 사용되어야 하고 불가피한 경우 ‘최후의 수단’이 되어야 합니다. 환경을 정화하는 식물을 개발하는 것보다 환경 오염을 방지하는 것이 우선이고, 소출이 많은 곡식을 개발하는 것보다 분배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얘깁니다. 과학자들이 자본 논리만을 앞세운 다국적 종묘회사에 쉽게 포섭당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 그러면 이러한 종묘 회사들의 헤게모니로부터 우리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유전자조작 농산물 기술을 더욱 열심히 연구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결국 경쟁이 될 게 아닙니까. 군비 경쟁처럼 결국 자본 논리에 종속되는 결과밖에 낳지 못할 것입니다.

- 분배 문제를 해결한다든지 하는 것은 국제관계와 경제의 매우 복잡한 요소들을 모두 건드려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유전자
조작 농산물을 개발하는 것보다 훨씬 힘들고 어렵지 않을까요

손쉽다는 이유로 온생명의 건강을 해칠 소지가 있는 위험한 기술을 남용해서는 안 됩니다. 분배 문제 해결이 더 바람직하고 근본적인 방향이 아닙니까. 우리 나라에서는 유기농을 장려한다든지 하는 방법으로 농업 문제에 접근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지금도 연구실에서 배아나 유전자조작 농산물을 연구하고 있을 현장 생명과학자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말씀해주십시오.

과도하게 국가경쟁력을 내세우며 ‘세계 최초’라는 타이틀을 따기 위해 달리지 말고 ‘이것이 정말 온생명을 위하는 길인가’를 잘 생각해줬으면 합니다. 황우석 교수는 배아 줄기세포 추출 발표 후 난자를 이용하는 연구를 중단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처럼 과학자 스스로 한계를 설정할 줄 아는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