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전한 견제와 타협 통해 올바른 발전방향 찾아야
건전한 견제와 타협 통해 올바른 발전방향 찾아야
  • 황희성 기자
  • 승인 2004.03.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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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년 2월 돌리가 탄생한 이래 시민단체들은 이전부터 제기되어 오던 생명공학 발전의 위험성에 대해 본격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했다. 이는 다른 포유류의 복제가 가능하다면 인간의 복제도 가능해 질 것이라는 직관적 거부감에서 비롯된 것이었으나, 차차 그 논리를 갖추어 현재는 여러 시민단체들이 목소리를 높여 생명공학의 무분별한 발전을 우려하고 있다.

전통적인 윤리가 직관적인 거부감에서 연원하듯, 이들의 논리가 시작되는 토대는 인간 존엄성이 훼손되었다고 느끼는 ‘거부감’이다. 같은 맥락에서 여러 시민단체들은 ‘자연의 섭리에서 벗어난’ GMF나 인간 배아 복제를 거부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우려는 단순한 거부감 차원으로 치부할 수 없는 개연성 있는 우려로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할 부분이 많다.

그러나 합리적인 우려도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대화와 노력이 없이 비판하게 되면 맹목적인 반대로 돌변하게 된다.

대표적인 예로 ‘지금 막지 않으면 다음에 벌어질 엄청난 일을 막을 수 없게 된다’라는 우려에서 출발하는 ‘미끄러운 경사길 논변’이 있다. 이는 신중함과 경험에서 비롯된 논리로, 결과를 중시하는 입장에서 사건을 바라보는 것이다. 사실 ‘미끄러운 경사길 논변’은 그 자체로 오류인 논증이나, 그러한 한계를 내포함에도 불구하고 문제에 대한 균형감각을 키울 수 있는 실천적으로 유용한 이론적 도구로 사용될 수 있다. 그러나 일부 시민단체에서는 ‘미끄러운 경사길 논변’에 의해 도출된 어두운 미래를 참으로 상정하고 현장의 연구자들이 생각하고 있는 방향에 대해서는 들으려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는 대화의 단절을 불러오고 나아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게 되는 큰 원인이 된다.

시민단체의 우려가 방향을 제대로 설정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많은 곳에서 ‘기술 남용을 반대해야 할 이유’가 ‘기술 자체의 개발이나 사용에 반대하는 이유’로 바뀌고 있다. 그 예로 인간 배아 복제 기술은 여러 가지 윤리적 논란을 일으킬 여지가 많은 기술이므로 남용해서는 안 되지만 그것이 기술 자체의 개발이나 사용을 반대할 충분한 이유가 되지는 못한다. 그러나 많은 시민단체에서는 윤리적인 논란을 일으킬 소지가 크기 때문에 이의 남용을 경고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의 개발과 사용 자체를 반대하고 있다. 이는 명백한 방향설정 오류이고, 이를 바로잡는 데서부터 합리적인 견제와 발전이 이루어질 것이다.

한편에서는 이러한 시민단체들의 우려와 반대가 독자적인 고민을 거쳐 출발한 것이 아니라 ‘사대주의’적인 발상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도 일고 있다. 이미 선진국에서는 식량 정책의 방향이 ‘소출 증대’가 아닌 ‘품질 향상’으로 이미 변모 했기에 GMF등의 ‘의심되는’ 식품에 대해 거부감을 표할 수 있지만, 아직도 기아로 몇 만의 사람이 죽어가는 아프리카에서는 식량 사정을 구제하기 위해서는 GMF가 가장 효율적인 해결책이기에 이를 거부할 수 없다. 이렇게 각 나라의 사정이 각각 달라 GMF에 대한 대응도 달라야 함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으로 부는 생명공학 반대 바람은 배고파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의 논리에 의한 것 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생명공학의 가장 바람직한 발전 방향은 사회에서 생명공학계로 우려를 전해주고, 생명공학계 에서는 사회로 이에 관한 진실과 그 기술에서 나온 열매를 주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국내 시민단체와 생명공학계는 얼마 전 타협의 결과로 인간 배아 복제에 관한 법령에 대해 합의 했다. 서로 한걸음씩 물러서며 입장을 조정하는 데에는 5년 이라는 시간이 걸렸지만, 이러한 동반자적 관계가 계속되어 나갈 때 우리나라의 생명공학과 생명윤리에 관한 의식은 더욱 발전해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