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꿀벌에 ‘벌벌’ 떠는 양봉업계
사라지는 꿀벌에 ‘벌벌’ 떠는 양봉업계
  • 오유진, 정혜정 기자
  • 승인 2024.04.22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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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로 인해 꿀벌의 수가 감소하고 있다(출처: 게티이미지뱅크)
▲기후변화로 인해 꿀벌의 수가 감소하고 있다(출처: 게티이미지뱅크)

“꿀벌이 멸종하면 인류도 4년 안에 사라진다” 아인슈타인의 주장이라고 잘못 알려진 말이지만 꿀벌 실종 사태가 심화하면서 재조명되고 있다. 그동안 꿀벌은 여러 식물 사이를 비행하며 암술과 수술의 수분을 가능케 하는 ‘화분 매개자’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 꿀벌의 개체수가 계속 감소해 왔고, 지난 2022년에 사라진 꿀벌의 개체 수만 전체의 16%인 78억 마리에 다다른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매년 반복되는 꿀벌의 폐사·이탈 상황에서 아직 제대로 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한 채 골든타임이 지났고, 전국의 양봉 농가에 비상등이 켜졌다. 이에 양봉업계는 최근 정부에 꿀벌 피해를 자연재해 및 농업재해로 인정하고, 해결책이 마련될 때까지 양봉업자가 살아갈 수 있도록 적절한 보상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런 꿀벌 집단 실종의 가장 대표적인 원인으로는 지구 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가 꼽힌다. 평년보다 기온이 올라간 겨울 날씨가 지속되면서 원래라면 동면에 들어가야 할 꿀벌들이 먹이를 채집하러 나서게 되는데, 이때 대부분의 꿀벌이 외부의 큰 일교차를 버티지 못하고 죽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또한 기후변화에 따라 심해지는 가을 일교차가 어린 꿀벌의 발육과 성장을 방해하는 상황이다. 또 다른 원인으로는 방제제에 내성을 가진 기생충 ‘응애’가 있다. 응애는 꿀벌에 달라붙어 체액을 빨아먹는 진드기의 일종이다. 응애에 감염된 꿀벌의 경우 기형이 발생하게 되며, 이는 벌집이나 식물 등을 통해 전염되면서 피해 범위를 더욱 넓힌다. 농가는 전염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응애를 제거하고자 과도한 양의 살충제를 투여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본 목적과 달리 꿀벌의 수명을 단축할 뿐만 아니라 꿀벌의 군집 회귀 및 비행 능력을 저하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 외에도 대기오염은 꽃향기에 의존하는 꿀벌에게 치명적으로 작용하며 전자파 또한 꿀벌의 비행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꿀벌은 민감한 자기 수용 시스템으로 비행 방향을 정하기에 과도한 전자파는 자기 탐색, 학습 능력을 망가뜨릴 수 있다.

한국양봉학회 고문 국립안동대 정철의(식물의학과) 교수는 “꿀벌응애와 가시응애가 방제되지 않고 밀도가 높아지면서 꿀벌에 큰 피해를 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따뜻한 겨울은 겨울을 나야 하는 곤충들에게는 좋지 않다”라고 집단 실종의 원인을 밝히기도 했다. 즉, 꿀벌의 △기생체 관리의 문제 △꿀벌 포식자 문제 △기후 변동성의 증가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꿀벌 개체 수 급감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지난 3월 13일 한국양봉협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해당 시점까지 파악된 전국 월동 벌통 피해 규모는 52.8%로 조사됐다. △서울 △인천 △광주 △대전 △전북 △충남의 6개 지역 전체 벌통 약 38만 개 중 피해 벌통 수가 약 20만 개로 집계된 것이다. 꿀벌의 폐사 및 이탈 현상이 반복되기 시작한 2022년의 경우 벌통의 57.1%가, 지난 2023년에는 벌통의 61.4%가 피해를 본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2022년부터 2023년까지 2년 간 최소 273억 마리의 꿀벌이 실종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같은 꿀벌들의 집단 실종은 벌통의 가격 상승과 양봉업자들의 생활고로 이어진다. 강화군농업기술센터에 따르면, 2022년 기준 1통에 20만 원대였던 벌통의 가격은 2023년, 불과 1년 만에 약 35~40만 원으로 두 배가량 상승했다. 한국양봉협회 충남지회 사무국의 김용석 국장은 “양봉만 해서는 못 먹고 산다. 생활이 안 된다. 피해를 본 농민들이 보상받을 수 있게 해줘야 한다”라고 말하며 양봉업계가 겪고 있는 문제의 심각성을 강조했다.

꿀벌들의 집단 실종이 지속됨에 따라, 정부는 양봉업계의 피해 복구를 위해 다양한 해결 방안을 마련하는 중이다. 올해 농촌진흥청은 겨울철 벌통 내 온도를 12도 이상으로 유지하는 ‘화분 매개용 스마트 벌통’ 300개를 보급한다. 이에 더해, 올해 중으로 △전남 영광 △충남 보령 △경남 통영 등 5곳에 꿀벌 육종장을 설치하고 육종장마다 20억 원가량의 사업비를 지원할 예정이다. 다만 해당 사업을 통해 전국 농가에 양질의 여왕벌을 보급하기까지는 5년 정도가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지방자치단체 또한 각 지역의 차원에서 양봉업계 지원을 확대하고 있다. 경기도는 여왕벌 육성 농가 67곳을 선발해 각각 360만 원 상당의 양봉 물품을 지원하기로 했다. 인천광역시는 양봉 농가 지원 사업 예산을 지난해에 비해 약 1억 원 증액했으며, 강원도는 봄철 꿀벌의 집단 폐사에 대비해 △10억 원의 사업비 투입 △면역증강제 지원 사업 시행 △응애류 방제약품 지원 등의 해결책을 내놓았다. 

꿀벌은 대표적인 화분 매개 곤충으로서, 천연 벌꿀 생산뿐만 아니라 농업 생태계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하루빨리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을 통해 국내 양봉업계의 어려움이 해소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