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가 겪을 수 있는 기후 우울증
우리 모두가 겪을 수 있는 기후 우울증
  • 이주형, 유영주 기자
  • 승인 2024.04.22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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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우울증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출처: Freepick)
▲기후 우울증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출처: Freepick)

일반적으로 4월 초는 돼야 개화하는 유채꽃이 올해는 따뜻한 날씨로 인해 지난달 중순에 폈다. 그에 따라 낙동강 유채꽃 축제는 지난 4일로 열흘 가까이 앞당겨졌다. 마찬가지로 역대 가장 빠른 개최일을 가졌던 진해군항제는 갑작스러운 꽃샘추위와 부족한 일조량으로 인해 벚꽃 없는 벚꽃축제가 돼버렸다. 우리대학 역시 점점 희미해지는 사계절과 따뜻한 날과 추운 날의 반복으로 학우들이 불편을 호소하고 있다. 최근 이런 이상기후로 인해 육체적인 피해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여러 가지 장애를 겪는, 이른바 ‘기후 우울증’이 사람들 사이에서 확산되고 있다.

기후 우울증이란 2017년 미국 심리학회(APA)가 정의한 우울장애의 일종으로 기후 위기 상황으로 인해 느끼는 두려움, 불안함 등의 부정적인 감정을 말한다. 이는 단순히 자연재해에 대한 공포 이외에도 자신이 노력해도 상황은 바뀌지 않는다는 무력감, 환경을 망가뜨린 인간에 대한 분노 등의 다양한 감정을 포괄한다. 이런 증상이 심화할 경우 심혈관질환, 불면증 등의 질병을 유발할 수도 있다. 2022년 세계보건기구(WHO) 역시 정책브리핑에서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정신건강 지원체계 구축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기후 우울증의 위험성을 언급한 바 있다. 

기후 우울증은 환경의 변화에 직접적으로 연관돼 있던 농부나 과학자들 사이에서 쉽게 일어나는 현상이었다. 기후변화가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기 전까지 ‘기후 불안’이라는 말은 대중에게 생소한 단어였으나 최근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증상이 만연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2022년 영국 배스대(Univ. of Bath) 연구팀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성인 1,338명 중 43.3%가 기후 위기에 대한 높은 불안감을 가지고 있다고 나타났다. 가벼운 불안감이라도 느낀다고 응답한 사람은 95.4%에 달했다. 조사 결과와는 달리 참가자 중에서 실제로 기후 재난에 노출된 인원은 불과 3%로, 대부분 뉴스 등에서 간접적으로 재난을 접한 것만으로도 두려움을 호소했다. 특히 어린 시절부터 이상기후에 노출된 젊은 층을 중심으로 우울감을 드러내는 사람들이 증가하는 추세다. 긴 여생이 남았음에도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되돌리기엔 너무 늦은 것 아니냐는 말이 사람들을 절망에 빠뜨린 것이다.

절망감은 사회적 분위기로도 확산됐다. 2019년 미국 경제매체인 Business Insider에서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18~29세 미국인의 38%가 출산을 계획할 때 기후변화를 고려해야 한다고 답변했다. 그보다 최근인 2022년 세계적인 여론조사 기관 GlobeScan에서는 △미국 △영국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 31개국을 대상으로 기후변화에 관한 인식을 조사했다. 그 중 ‘나는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자녀를 갖지 않는다’라는 질문에 조사 대상의 40%가 그렇다고 답변했다. 이런 조사 결과들은 기후변화의 영향이 출산율에 직접적인 위협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GlobeScan은 해당 현상에 대해 개인이 느끼는 기후변화의 영향이 커짐에 따라 전 세계의 불안감이 증폭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기후변화가 사회적 분위기에 영향을 줌에 따라 기후 우울증의 증상을 설명하기 위한 용어들도 생겨났다. 자연환경 파괴에 대한 만성적 두려움을 느끼는 상태인 ‘환경 불안’부터 환경변화가 초래한 고통을 뜻하는 단어로 안락(Solace)과 고통(Algia)의 합성어인 ‘솔라스탤지어(Solastalgia)’, 기후변화에 의해 무력감을 느끼는 ‘외상 전 스트레스 장애’까지 모두 기후 위기와 기후 우울증으로 인해 새롭게 나타난 용어들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기후 우울증을 극복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사람들과의 소통과 연대를 해결 방안으로 제시했다. 혼자 기후 위기에 대해 걱정하고 우려하기보다는 다른 사람들과 집단을 이뤄 소통하며 고통을 나누는 것이 좋다는 의견이다. 실제로 미국과 영국에서는 좋은 슬픔 네트워크(Good Grief Network)와 기후 카페(Climate Cafe) 모임을 통해 기후 위기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공유하고 상담가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서로간의 지지적인 관계를 구축하며 긴 기후 고통으로부터 회복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이다. 그 밖에도 공원·숲에서 자연환경과의 접촉을 늘리고 신체 활동으로 정신 건강을 증진할 수 있도록 돕는 자연 처방 방법 또한 사용되고 있다. 국내에서는 산림의 환경 요소를 느끼고 치유 프로그램을 체험할 수 있도록 조성된 치유의 숲 공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볼 수 있다.

기후 우울증은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의 문제, 나아가 전 세계의 문제로 취급돼야 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기후 위기에 관여한 우리 모두가 책임감을 가지고 행동해야 할 것이다. 기후변화를 늦추고 기후 위기를 타개하는 것이야말로 기후 우울증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전 세계 △정부 △기업 △단체 △시민들의 노력으로 훗날 기후 우울증이라는 단어가 역사 속에만 존재하는 단어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