곪을 대로 곪은 의료 문제, 이번엔 해결될 수 있을까
곪을 대로 곪은 의료 문제, 이번엔 해결될 수 있을까
  • 조원준 기자
  • 승인 2024.02.29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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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필수의료 패키지를 설명하고 있다(출처: 쿠키뉴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필수의료 패키지를 설명하고 있다(출처: 쿠키뉴스)

 

 

지난 1일, 정부는 민생토론회를 열고 필수 의료 정책 패키지를 공식 발표했다. 오래전부터 지속해서 제기됐던 지역의료와 필수 의료 붕괴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서 발표된 정책 패키지다. 패키지는 △의료인력 확충 △지역의료 강화 △의료사고 안전망 △보상 체계 공정성 제고 4대 개혁 과제로 구성된다. 그러나 뒤이어 정부가 지난 6일 의료인력 확충 과제를 위해 의대 정원을 오는 2025년부터 연간 2,000명 확대해 5년간 1만 명을 배출하겠다는 정책을 발표하자 의료계의 강력한 반발을 사며 정책 진행에 차질을 빚게 됐다.

지난 2022년 서울아산병원 간호사가 개두술이 필요한 응급 상황이 발생했으나 수술이 가능한 병원을 찾다가 사망에 이르게 됐다. 국내 최고 병원이라 불리는 곳에서 근무하던 간호사조차도 필수 의료인력이 부족해 사망에 이르게 된 이 사건은 대한민국에 충격을 줬다. 전국 각지에서 이와 비슷한 사례가 보고되며 이를 일컫는 ‘응급실 뺑뺑이’라는 용어도 등장했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2021년을 기준으로 △흉부외과 △산부인과 △외과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평균 연령은 50.2세로 꾸준히 상승하고 있지만, 10개 진료과 전공의 정원은 모두 미달했다. 특히 지난 2022년 흉부외과는 38%였으며, 소아청소년과는 26%로 나타났다. 심지어 미달한 필수진료과의 전공의조차 상당수가 진료과목을 바꾼 것으로 밝혀졌다. 즉, 현직 전문의들은 고령화되고 있으나 젊은 의사들이 수급되지 않는 상황이다. 지역의료 붕괴 문제도 심각하다. 통계청의 2022년 ‘인구 1,000명당 의료기관 종사 의사 수’에 따르면 △서울 4.82명 △대구 3.73명 △경북 2.16명으로 서울과 지방이 큰 격차를 보인다. 나아가 국토교통부의 ‘2019 국토모니터링 보고서’에서는 시속 30km를 기준으로 환자가 응급의료시설까지 가는 데에 걸리는 시간은 △서울 6분 △대구 20분 △경북 41분의 시간이 소요됐다.

이에 정부가 내건 정책 패키지의 첫 번째 정책은 ‘의료인력 확충’이다. 이는 △한국개발연구원(KDI)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서울대학교에서 오는 2035년에 1만 5,000명의 의사 인력이 부족하다고 발표한 연구 결과를 근거로 의사 수를 늘림과 동시에, 의사들의 장시간 근로로 인한 번아웃 현상을 해결해 필수 의료 기피 현상을 줄이기 위한 제도다. 두 번째 정책의 핵심은 ‘지역의료 강화’다. 지역 내 국립대 병원을 권역 필수 의료 중추로 육성하고 지역 완결적 의료전달체계를 확립해 수도권까지 가지 않아도 지역 내에서 필요한 의료를 모두 제공받을 수 있도록 한다. 세 번째는 ‘의료사고 안전망 구축’이다. 필수 의료 진료과 기피율이 지금처럼 극단적으로 높아진 이유 중 하나로 의료사고에 대한 과도한 법적 처벌과 소송이 꼽힌다. 필수 의료는 환자의 생명을 좌우하는 특성을 가진 직업으로 고의성 없이 의료사고가 발생할 수 있지만, 이에 대한 처벌이 너무 과한 탓에 필수 의료를 기피하는데 이를 정책으로 보호하겠다는 것이다. 정책 패키지의 마지막 정책은 ‘보상 체계 공정성 제고’다. 가속화하고 있는 비급여 시장과 무너지는 필수 의료 사이의 불공정한 보상을 메꾸려는 취지다. 이를 위해 필수의료 분야에 대한 보상체계를 재점검하고 비급여 분야에 대한 관리 체계는 강화한다.

사실 필수 의료인력이 부족하다는 문제 인식, 특히 지방에서의 심각성은 오래전부터 지적됐다. 이에 2014년 박근혜 정부는 비대면 진료 확대를 통해 지방 의료 문제 해결을 꾀하고자 원격의료 도입을 추진했으나 의사들의 반대와 함께 동반된 전국 의사 총파업과 같은 의사 집단행동에 정책을 철회했다. 2020년 문재인 정부도 같은 문제의식 속에서 의대 정원 확대를 추진했으나, 이번에도 △전공의 파업 △의대생 동맹 휴학 △의사고시 불참과 같은 반대 의사를 표현하는 의사들의 집단행동에 물러섰다. 그리고 지난 6일, 윤석열 정부가 필수 의료 정책 패키지 발표에 뒤이어 의대 정원 확대 정책을 발표하자 의사들은 반대 의견과 함께 단체 집단행동을 강행했다. 의대생들의 동맹휴학 결의, 전공의들의 빗발치는 사직서 등 의료계에서는 강도 높은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의료계는 현재 의료 문제의 핵심이 ‘절대적인 의사 수’가 아닌 ‘의료 구조’에 있으며, 정부가 추진하는 일방적 의대 증원은 본질적 해결책이 아니라는 주장을 밝히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내놓은 필수 의료 패키지는 구체적 내용이 확정되지 않았으며, 패키지에 대한 심도있는 논의 없이 의대 증원 정책만을 우선적으로 추진하는 것은 수용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즉, 구체적인 구조 개혁 없이 매년 단순히 2천 명, 5년간 1만 명이라는 엄청난 양의 의사 수만 늘리는 것은 오히려 ‘의료 붕괴’로 이어진다는 입장이다.

사회는 다시 한번, 무너진 지역 의료와 필수 의료를 일으켜 세우기를 요구했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듯, ‘체계 재정립’이 우선이라는 의료계와 ‘정원 늘리기’를 고수하는 정부 사이의 의견 차이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의료 문제는 그동안 곪을 대로 곪아왔기에 이제는 해결이 시급해졌다. 서로의 의견을 존중함으로써 절충안을 찾아 누군가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하는 등의 안타까운 일이 더 이상 벌어지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