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시장 흔드는 IT기술, 리걸테크
법률시장 흔드는 IT기술, 리걸테크
  • 이재현, 오유진 기자
  • 승인 2024.01.01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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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 서비스와 정보통신 기술을 접목한 리걸테크
▲법률 서비스와 정보통신 기술을 접목한 리걸테크

최근 IT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우리 생활 전반은 그 영향을 받으며 변화하고 있다. 법률시장 또한 예외는 아니다. 2010년을 전후로, 법조인의 업무 부담 해결 및 법률서비스의 차별성 마련 등을 목적으로 ‘리걸테크’가 등장했고 점차 그 활용 범위를 넓혀 가고 있다. 리걸테크란 ‘법률적인(Legal)’과 ‘기술(Technology)’이 결합한 말로, 법률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기술이나 소프트웨어, 더 나아가 인공지능을 비롯한 IT기술을 바탕으로 하는 새로운 법률서비스를 제공하는 산업을 말한다. 

스탠퍼드대 로스쿨 연구 센터 코드엑스(CodeX)는 리걸테크를 데이터 활용 방식에 따라 △검색(Searching) △분석(Analysis) △작성(Writing)의 3가지로 분류했다. 이후 리걸테크의 서비스 분야가 더욱 다양화되면서, 코드엑스는 이를 다시 △법률 및 판례 검색 △개인·기업과 법조인 중개 서비스 △전자 증거 개시 제도를 위한 서비스 △법률·사건 분석 및 판결 예측 △법률 문서 작성 자동화 등의 9가지 세부 분야로 구분했다. 한국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에서는 이 구분을 따라 3개 대분류와 그 하위의 9개 중분류로 분야를 나눴다.

리걸테크의 세부 분야 중에서도 법률시장의 규모가 매우 큰 영미권을 중심으로 가장 많이 발전한 영역 중 하나는 전자 증거 개시(E-Discovery) 제도를 위한 서비스 분야이다. 전자 증거 개시란 전자 문서 및 자료를 법정 증거로 내보이는 것을 말한다. 2006년 12월 미국 연방민사소송규칙이 개정되면서 소송 당사자에게 전자 문서 및 자료를 보존할 의무가 부여됐다. 그에 따라 기업이나 개인 등 소송 당사자가 보유하는 각종 디지털 증거를 검색하고 정리하는 서비스가 리걸테크의 대표적인 분야로 성장 중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전자 증거 개시 제도가 아직 추진 중에 있지만 세계적으로 전자 증거 개시에 대한 필요성이 주목받고 있는 만큼, 우리나라에서도 관련 리걸테크 서비스가 발전할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또한 법률 문서 작성 자동화 서비스 분야의 경우, 인간의 수작업이 아닌 IT기술을 통해 △계약서 △소송 서류(소장, 판결문 등) △소송 외 서류(고소장, 유언장 등) △산업재산권 출원 관련 서류를 자동 작성한다. 이외에도 리걸테크는 다양한 분야로 계속 확장 및 구체화하고 있으며, 각 분야를 집중적으로 다루는 기업들이 국내외로 성장하는 중이다.

국내에서는 리걸테크를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먼저 법원의 재판 지원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서울고등법원 강민구 부장판사는 “국민이 법관에게 바라는 건 창의적인 판결문이 아니라 빠르게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며, AI는 최적의 도구”라며, AI를 활용해 지연되는 소송을 빠르게 처리할 수 있음을 강조했다. 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도 리걸테크팀을 신설해 자사 내부의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한 프로그램을 개발해 활용 중이다. 특히 △전문적인 분야 △국제 소송 및 중재 △방대한 재판 문서 등을 IT기술로 효과적인 대응을 할 수 있다는 점에 그 가능성이 돋보인다. 대형 로펌이나 기업을 그만두고 리걸테크 스타트업에 뛰어드는 변호사도 늘고 있다. 대표적 기업인 로앤굿은 자체적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다양한 분야의 쟁점 및 승소 사례, 맞춤형 솔루션을 제공한다. 최근에는 미국의 생성형 AI기술 전문 기업인 링크와 협업해 국내 리걸테크 최초로 AI 연구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법률 서비스의 대중화를 표방하는 로앤컴퍼니도 국내 리걸테크 시장을 선도 중이다. 로앤컴퍼니는 온라인 법률 상담 플랫폼인 로톡을 운영하며 장관급 이상 정부 시상 3관왕을 달성하기도 했다. AI를 활용한 리걸테크 기업인 인텔리콘은 아시아 최초로 법률 전문 생성형 AI를 출시해 화제가 됐다. 이처럼 법률과 IT기술의 융합은 일반인, 특히 법률 소외 계층에게 법률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강점이 있다.

리걸테크를 둘러싼 다른 주장도 존재한다. 먼저 국내에서는 아직 관련 규제와 이해관계가 얽힌 단체 간 갈등으로 인해 리걸테크 기업의 성장이 정체되고 있다. 일례로 대한변호사협회(이하 변협)는 법률 플랫폼 로톡에 가입한 변호사에게 징계를 내렸고, 법적 분쟁 끝에 법무부가 변협의 징계 처분을 취소하며 사건이 일단락됐다. 하지만 수년간 변협과 민간 법률 서비스의 대립으로 리걸테크의 움직임이 사실상 답보 상태에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생성형 AI의 환각 효과에 대한 우려도 존재한다. 환각 효과는 존재하지 않는 정보를 마치 사실인 것처럼 출력하는 현상을 말한다. 정확한 정보를 기반으로 하는 법률 분야에서 이는 치명적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환각 효과가 개선되고 업무 효율성이 증가하면 리걸테크는 막을 수 없는 흐름이라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해외에서는 이미 리걸테크 기업들이 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 기관인 Future Market Insights는 2032년에 리걸테크 시장의 규모가 약 90조 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급속도로 발전하는 시장에서 과도한 규제는 종국적으로 해외 기업의 국내 법률 시장 잠식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하루빨리 일선 현장에서 관련 논의가 촉발돼 모두가 만족할 만한 결과를 도출하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