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컬 열풍과 이공계 기피 현상,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메디컬 열풍과 이공계 기피 현상,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 오유진 기자
  • 승인 2023.11.07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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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의과대학 앞(출처: 연합뉴스)
▲서울의 한 의과대학 앞(출처: 연합뉴스)

최근 수험생들의 ‘의대 쏠림’으로 대표되는 메디컬 열풍이 심해지면서, 이공계 기피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일명 ‘의치한약수’로 불리는 의학계열 대학 진학을 꿈꾸는 수험생들이 증가하는 동시에 기존 이공계 대학 재학생들 또한 의학계열 대학 진학을 위해 휴학, 자퇴를 하는 경우가 늘어나는 추세다. 이공계 인재 양성 목적으로 설립된 ‘영재학교’ 및 ‘과학고등학교(이하 과학고)’에서도 이공계 대학이 아닌 의과대학 및 기타 의학계열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들이 증가하고 있다. 특히 정부가 최근 R&D 예산을 삭감하면서 이공계 기피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것으로 우려된다. 

 

메디컬 열풍, 원인은

경제적 안정을 추구하는 현대인들은 연봉이 높고 안정적인 의사, 변호사와 같은 전문직을 선호한다. 특히, 미국과 같이 IT 시장이 크고 교수, 연구원의 연봉이 높게 책정되는 국가들에 비해 우리나라는 과학자 혹은 공학자로서 고수입을 벌기란 상대적으로 어려운 편이다. 따라서 이공계 직종에 비해 전문직의 선호도가 더 높은 경향을 보인다. 또한 변호사는 학부 졸업 후 다시 로스쿨 입시를 준비해야 한다는 점에서 대학 입시 ‘한 번으로 결정할 수 있는’ 메디컬 직종에 비해 위험이 크다는 인식이 많다. 이에 더해 의사로 대표되는 메디컬 직종은 ‘생명을 살리는 직업’이라는 통념에 의해 사회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다. 많은 사람이 높은 사회적 지위를 얻고 고소득 계층이 되고자 하는 꿈을 가지고 의학계열 진학에 도전한다. 한편 입시 학원 및 인터넷 강의 사이트의 마케팅이 메디컬 열풍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사교육 메카인 대치동에서는 초등학생부터 ‘의대준비반’을 운영하기도 하며, 재수 종합학원들의 경우 ‘의대관’을 별도로 개설하는 등 의학계열 대학 진학에 대한 마케팅을 활발히 하는 중이다. 이렇듯 사교육 시장의 ‘메디컬 띄워주기’ 마케팅은 학부모 및 학생들의 메디컬 열풍을 부추기는 실정이다.

 

이공계 기피 현상, 얼마나 심각한가

대학교 재학 중 자퇴 등으로 학생들이 본인의 전공에 대한 학업을 중단하는 것을 ‘중도탈락’이라고 한다. 2022년 기준 이공계 특성화 대학들의 중도탈락 학생 수는 △우리대학 36명 △KAIST 125명 △DGIST 29명 △UNIST 66명 △GIST 48명 △KENTECH(한국에너지공과대) 7명으로 적지 않은 숫자이다. 특히 KAIST 등 4개 과학기술원에서 지난해 중도탈락자는 전년 대비 43.3% 증가했으며, 최근 몇 년간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를 보인다. 반면, 2022년 의학계열 대학의 중도탈락 학생 수는 2021년에 비해 12.3% 감소했다. 이공계 대학에서 중도탈락한 학생들이 이후 어떤 대학에 입학했는지 구체적으로 조사된 바는 없지만 전문가들은 그중 대부분이 의학계열 대학으로 진학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한편 영재학교·과학고에서도 의학계열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는 학생들이 늘어나고 있다. 2023년 대학 입시 결과, 영재학교·과학고에서 의학계열 대학에 진학한 학생 수는 83명으로, 2022년 71명에 비해 16.9% 증가했다. 이공계열 인재 양성이라는 설립 취지가 무색하게 의학계열로 진학하면서 이공계 분야를 이탈하는 학생들이 많아지는 상황이다. 과학 및 공학 분야 연구에 정진할 수 있는 우수한 인력이 줄어드는 것은 우리나라의 국가 과학기술 경쟁력 약화로도 이어질 수 있다.

 

메디컬 열풍과 이공계 기피 현상, 대책은

직업에 객관적인 가치를 매기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현 상황과 같이 한쪽 직업군으로만 선호도가 쏠리는 것은 분명 커다란 사회적 문제다. 정부는 △자연과학·공학 분야 연구원 처우 개선 및 연구비 지원 확대 △이공계 대학·대학원 장학 제도 개선 △이공계열 전문연구요원 제도 보완 △관련 스타트업에 대한 지원책 강화 등의 정책을 마련함으로써, 이공계열에 대한 선호도가 증가하고 의학계열로 쏠리는 관심이 분산되는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최근 발표된 R&D 예산 삭감안은 이공계 기피 현상을 가속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더해 현 정부가 추진 중인 의대 정원 확충안이 메디컬 열풍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한 귀추가 주목된다. 지난달 26일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역 및 필수 의료 혁신을 위한 추진계획’ 관련 브리핑을 진행하면서, 한 학년의 정원이 50명 이하인 일명 ‘미니 의대’들을 시작으로 2025년부터 의대 정원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의대 정원 증가는 장기적으로 볼 때 의사라는 직업의 희소성이 떨어지도록 해 메디컬 열풍을 가라앉힐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단기적으로 보면 수험생들에게 있어 의대에 진학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므로, 당분간 의대 쏠림 현상은 지속될 것이라는 주장도 존재한다. 

 

메디컬 열풍과 이공계 기피 현상은 분명 쉽게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심각성을 인지하고 사회적으로 가능한 대책에 대한 논의를 지속할 필요가 있다. 결과적으로 더 많은 학생이 경제적 안정이나 사회적 지위보다도, 자신의 적성이나 인생의 행복과 같은 다양한 요인을 고려해 대학에 진학하고 직업을 선택하게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