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 유전체 디자인 시대
식물 유전체 디자인 시대
  • 최규하 / 생명 부교수
  • 승인 2023.11.07 20:3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그림 1. 감수분열 시 교차와 교차 증가를 통한 육종. 감수분열과 교차 과정(A), 교차 수 증가 및 유도를 통한 식물 육종 연한 단축(B)
▲그림 1. 감수분열 시 교차와 교차 증가를 통한 육종. 감수분열과 교차 과정(A), 교차 수 증가 및 유도를 통한 식물 육종 연한 단축(B)

수학자와 물리학자들이 자연 현상의 ‘우아한 단순성(Simplicity)’에서 아름다움(Beauty)을 찾는 경향이 있다면 생물학자들은 생명의 ‘압도적인 다양성과 복잡성’에서 아름다움을 찾곤 한다. 물론 생물학자들도 물리학자 에르빈 슈뢰딩거가 자신의 책 ‘생명이란 무엇인가?(1944)’를 통해 궁금해했던 생물들이 갖는 놀라운 질서와 통일성(Unity)을 멋지게 찾아냈다. 당시 슈뢰딩거는 식물학자 멘델이 완두 연구(1865)를 통해 제시한 유전 원소(Element)인 유전자 자체를 찾고 세대 간 유전 원리를 밝히는 것이 생명에서 통일성의 아름다움을 이해하는 핵심이라 생각했다. 20세기 중반에서 후반은 수많은 위대한 과학자들이 생명과학에서 통일성의 아름다움을 찾은 황금시대라 할 수 있다. 1953년 DNA 구조가 밝혀진 후 △유전 부호(Genetic Code) △유전자 발현 조절 △DNA-RNA-단백질의 중심 원리(Central Dogma) △트랜스포존(Transposable Element) 등 생명의 통일성에 대한 비밀이 풀렸다. 우리는 이제 모든 생물이 스스로를 △유지 △조직 △성장 △분화 △번식한다는 것을 분자 수준에서 상당히 이해하고 있다.

 

생명 다양성의 원천은 돌연변이와 감수분열

생물들은 유전 부호와 같은 생명의 통일성을 공유하지만, △미생물 △동물 △식물 종 및 종 내의 개체들을 보면 온갖 ‘다양성과 복잡성’을 찾을 수 있다. 꽃을 사랑했던 린네가 직감적으로 생물을 형태만으로 멋지게 분류했고 다윈은 다양한 생물의 패턴과 연속성을 통해 진화를 확신했다. 21세기 시작과 함께 인간 유전체(2003)는 물론 동·식물들의 유전체 DNA 염기서열이 연이어 밝혀졌다. 최근 과학자들은 Short-read, Long-read DNA 염기서열 분석 기술의 혁신 덕분에 주요 생물 종들의 유전체를 구성하는 △염색체 수 △유전자 △트랜스포존 △중심절(Centromere) 등을 보다 상세히 밝히고 있다. 이제 우리는 생명의 다양성은 유전체의 돌연변이가 근간이라는 것을 잘 안다. 또한 인간 유전체 상의 변이들이 다른 생물 종과 비교해 우리를 어떻게 인간답게 하는지도 상당히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여기서 돌연변이는 단순히 유전자의 DNA 서열의 변화로 단백질의 기능을 잃게 하는 △점돌연변이(Point Mutation) △결손(Deletion) △삽입(Insertion)을 비롯해 단백질에 새로운 기능을 부여하는 △유전자 증폭(Gene Duplication) △염색체 재배열(Chromosome Rearrangement) 등 변이도 포함한다. 모든 세포는 DNA 복제 중 불가피한 오류의 수선(Repair)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때, 약 10억 개의 염기서열 당 하나 정도로 드물게 유전체에 돌연변이가 축적된다. 또한 유전체에는 트랜스포존에 의한 돌연변이 형태의 흔적이 존재한다. 생물이 체세포분열을 통해 성장하고 발달하고 늙어가는 과정에서 드물게 축적되는 무작위적인 돌연변이는 암과 퇴행성 질환을 불러오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한편 생식세포에 축적된 돌연변이는 유전병의 원인이 되기도 하며 다음 세대에서 개체 간 변이와 생물 다양성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생물의 유전적 다양성은 돌연변이 외에도 생식세포에서 일어나는 감수분열을 통해서 확보된다. 대부분의 진핵생물은 2배체로 체세포에 염색체들을 쌍으로 갖고 있으며 각각의 염색체 쌍은 부모로부터 하나씩 물려받는다. 사람의 경우, 22쌍의 상염색체(Autosome)와 2개의 성염색체(2n=46, 2n=44+XX 또는 44+XY)는 감수분열 후, 23개 염색체(n=22+X 또는 22+Y)를 갖는 반수체 정자와 난자를 만든다. 모델 식물 애기장대(2n=10)의 경우는 감수분열 후 반수체(n=5)인 꽃가루와 밑씨를 만든다. 감수분열에는 첫 번째 세포 분열 시 상동 염색체들이 짝을 이루고 유전 물질을 서로 교환하는 교차(Crossover)가 일어난다(그림 1A). 이와 같은 △교차 △세포분열 중기에서 무작위적 염색체 분리 △무작위적 수정은 유전체에 기존 돌연변이들을 재편성함으로써 자손들에 다양성을 부여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부모 형제자매와 닮은 구석을 가지면서도 조금씩 다르다.

▲그림 2. 감수분열 시 유전체 엔지니어링. 체세포분열, 감수분열과 MiMe(Mitosis instead of Meiosis)(A), 식물 중복 수정과 합성무수정생식(B)
▲그림 2. 감수분열 시 유전체 엔지니어링. 체세포분열, 감수분열과 MiMe(Mitosis instead of Meiosis)(A), 식물 중복 수정과 합성무수정생식(B)

식물 교차 조절과 유전체 디자인

인류는 멘델의 유전 법칙과 DNA를 이해하기보다 훨씬 이전부터 육종과 인위적 선택(Artificial Selection)을 통해 농작물과 가축들을 개량해 왔다. 그러나 교배 육종의 근간인 교차는 상동 염색체 당 1~2개만 일어나며, 염색체 내에서 유전자 집중 지역에 주로 발생한다. 교차 수의 제한과 분포의 불균등으로 인해 식물의 유용 형질인 병 저항성·생산성 등의 변이를 다른 식물로 옮기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최근 △독일 막스플랑크 연구소의 라파엘(Raphael) 그룹 △영국 케임브리지대의 이언 헨더슨(Ian Henderson) 그룹 △우리대학 식물유전체재조합 연구실의 식물학자들은 교차를 조절하는 유전자를 발굴하고, 이들의 돌연변이를 통해 교차 수를 늘리거나 교차가 드문 중십립 주위(Peri-Centromere)에서도 교차를 유도할 수 있게 됐다. 교차 횟수 증가는 육종 시간을 단축하고 새로운 식물 품종을 개발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그림 1B). 또한 최근에는 식물학자들이 감수분열을 체세포분열처럼 교차 없이 2배체 그대로 생식세포를 만드는 MiMe(Mitosis instead of Meiosis) 기술을 완성했고(그림 2A), 식물의 처녀생식을 유도하는 기술과 결합해 최종적으로 합성 무성생식(Synthetic Apomixis) 기술을 개발했다(그림 2B). 합성 무성생식 기술은 농작물의 생산성을 높이는 잡종(Hybrid) 종자를 쉽게 생산할 수 있도록 해, 미래의 식량 확보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 식물에서 △교차 증가 △MiMe △반수체 유도 △합성무성생식 기술 개발은 최근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CRISPR-Cas9)의 유전체 편집 기술 덕분에 다양한 농작물에 적용할 수 있다. 이처럼 지금은 원하는 특정 유전자의 돌연변이를 유도할 수 있는 식물 유전체 디자인 시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