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 온상 된 대한민국
범죄 온상 된 대한민국
  • 김윤철, 이재현 기자
  • 승인 2023.09.06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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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현역 칼부림 사건 현장을 통제하고 있는 경찰(출처: 연합뉴스)
▲서현역 칼부림 사건 현장을 통제하고 있는 경찰(출처: 연합뉴스)

연일 계속되는 흉악범죄에 더 이상 대한민국도 안전하지 않다는 시민들의 우려가 증폭되고 있다. 지지난달부터 △신림역 칼부림 사건 △서현역 칼부림 사건 △신림동 공원 강간살인 사건 등 불특정 대상을 향한 ‘묻지마 범죄’가 연쇄적으로 발생했다. 이와 함께 범죄 예고성 게시물은 지난달 21일 기준 경찰이 본격적으로 단속을 시작하며 약 400건 이상을 확인해 총 192명을 검거했고 이 중 20명을 구속했다. 검찰청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살인율은 2021년 기준 10만 명당 0.5명으로, OECD 회원국 평균 살인율인 2.6명보다 매우 낮은 수치다. 하지만 최근 발생한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시민들은 불안감에 떨고 있다. 

이번 사태에서 눈여겨볼 특징은 대다수 범죄가 ‘묻지마 범죄’라는 것이다. 묻지마 범죄는 이상 동기 범죄 혹은 동기 없는 범죄라고도 불리며, 동기와 대상이 명확히 정해지지 않은 채 일어나는 범죄를 의미한다. 신림역 칼부림 사건 이후 벌어진 대다수 사건이 이에 포함된다. 묻지마 범죄는 근본적 해결이 어렵고, 범죄자들은 대부분 사회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특징이 있다. 이런 탓에 묻지마 범죄는 범죄 중에서도 대응하기 까다로운 범죄로 꼽힌다. 한편 일각에서는 묻지마 범죄로 규정하는 것을 금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묻지마 범죄로 규정해 원인을 들여다보지 않고 범죄자들의 처벌에만 관심이 있다”라며, 심각한 정신 질환으로 판단력이 없는 극단적 경우를 제외하면 범죄의 동기를 찾을 수 있고 이를 바탕으로 실효적인 대책을 내놔야 한다고 밝혔다.

묻지마 범죄 이외에도 주목할 부분은 범죄 예고성 게시물이다. 신림역 칼부림 사건 이후 인터넷에는 범죄 예고성 게시물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 중 대다수는 허위 예고로 밝혀졌지만, 동시에 전국적으로 흉기를 소지하거나 범죄 미수에 그친 사건들이 보도돼 사회에 혼란을 가중했다. 최근 일어난 연쇄적인 범죄 사건과 범죄 예고성 게시물을 범죄 전염 모델로 분석하기도 한다. 이 모델은 사회적으로 파장이 큰 범죄가 미디어를 타고 전파돼 연쇄적인 모방범죄를 일으킬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이런 게시물이 내재한 범죄 동기를 행동화하는 외부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범죄 예고성 게시물에도 즉각적인 대응을 촉구했다.

지난달 2일 서울 강남에서는 20대 남성이 마약류를 투약한 채 외제 차를 몰고 인도를 돌진해 20대 여성을 뇌사에 빠트린 사건이 발생했다. 사고 이후 피의자는 피해자에 대한 구호 조치를 전혀 하지 않았고, 사고 당시에도 약물을 여러 차례 투약했다고 밝혀져 많은 이들의 공분을 샀다. 이외에도 지난달 24일에는 마약과 술에 취한 남성이 서울 강남구 한 도로에서 대(大)자로 뻗어 누워있는 채로 발견돼 경찰에 검거되기도 했다. 해당 사건들을 계기로 마약 오남용에 대한 경각심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점차 커지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는 ‘마약류 통합관리시스템’의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병원의 마약 오남용 처방을 모니터링하고 있으나, 여전히 마약류에 대한 진입 장벽은 낮다. 대검찰청 마약·조직범죄부에 따르면 검찰이 올 상반기 단속한 마약류 사범은 1만 252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9.6% 증가한 수치다. 이는 상반기 단속된 마약사범 규모 중 역대 가장 많은 적발 건수다. 최근에는 온라인 검색만으로도 쉽게 프로포폴을 구할 수 있을 만큼 마약 시중 유통 문제도 심각한 상황이다. 이에 대해 이웅형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마약 사건 수사와 연동해 총체적인 예방책을 마련해야 한다”라며 정책 마련이 시급함을 강조했다. 

지지난달과 지난달 연이어 △묻지마 범죄 △살인 예고 △마약 범죄가 여러 차례 발생하자, 정부와 국회는 범죄 예방 및 처벌을 위한 강력 대응 방침을 밝혔다. 지난달 4일, 경찰은 묻지마 범죄와 살인 예고 등 흉악범죄 대응을 위한 ‘특별치안 활동’을 선포했다. 총기 등 물리력 사용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공공장소에 대한 순찰 강화와 불심검문을 통해 범죄 확산을 신속히 제압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다. 경찰청 관계자에 따르면 특별치안 활동을 벌인 지난달 4일부터 18일까지 흉기 관련 범죄 227건이 검거됐고, 불심검문으로 흉기를 소지한 93명이 적발됐다. 경찰의 특별치안 활동에 발맞춰 검찰은 온라인상 살인 예고 글 작성자에게 살인예비 혐의 등을 적용해 적극적으로 구속하고, 법정 최고형의 처벌로 이끌겠다고 경고했다. 정부와 국회는 근본적인 묻지마 범죄 예방과 대응을 위해 제도적 대책 마련을 서둘렀다. 당정은 △가석방 없는 무기형 △공공장소 흉기 소지죄 △공중 협박죄 등의 입법을 추진하며 범죄 처벌 강화에 대한 입법 의지를 드러냈다.

‘치안 강국’도 이제는 옛말에 불과하다. 최근 일어난 일련의 △묻지마 범죄 △살인 예고 △마약 범죄에 시민들은 두려움에 떨고 있으며, 더 이상 일상 속 안전을 보장할 수 없는 현실이다. 느슨해진 경찰 행정력을 회복하고, 법적 제도적 허점을 정비해 범죄 예방과 처벌에 만반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다. 범죄에 대한 두려움 없이 길거리와 공공장소를 거니는 일상이 다시 찾아오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