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포의 재구성: 합성생물학과 세포 프로그래밍
세포의 재구성: 합성생물학과 세포 프로그래밍
  • 김종민 / 생명 조교수, 강한솔 / 생명 통합
  • 승인 2022.11.13 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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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성생물학과 세포 프로그래밍

합성생물학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이 소설 ‘프랑켄슈타인’의 아담처럼 여러 조직이 흉측하게 결합한 창조물을 떠올리곤 한다. 인공적인 냄새가 물씬 나는 ‘합성’과 자연에 존재하는 ‘생물’, 두 단어의 조합이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탓이다. 그러나 우리가 말하는 합성이란 DNA, RNA, 단백질과 같이 생물을 구성하는 블록들을 합리적 설계에 기반해 재구성하는 기계공학적 접근을 의미한다. 불과 10여 년까지만 해도 합성생물학은 가능성을 타진하는 단계에 있었다. 복잡한 회로와 생화학 반응을 속속들이 이해하고 예측하는 일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유전 정보가 담긴 DNA와 RNA를 자유자재로 읽고, 쓰고, 자르고, 붙임으로써 다양한 생명 현상을 기능적 모듈로 △분해 △제어 △조합할 수 있게 됐다. 예를 들어, 이런 모듈과 블록을 조합해 암세포를 선택적으로 공격하는 명령 코드를 미생물의 유전 정보에 삽입하거나, 대마초의 주요 성분을 대량으로 생산하는 세포를 조립해 생산 공장으로 활용하는 경우 등이 대표적이다. 이처럼 생물을 공학적으로 설계해 인류의 문제를 해결하는 분야 중 하나가 세포 프로그래밍(Cell Programming)이다. 눈부신 발전에도 불구하고, 세포에 정교한 기능을 부여하는 연구는 해결해야 할 숙제가 여럿 남아있다. 첫째로, 화학적으로 신호가 전달되는 세포의 특성상 시시각각 변하는 △농도 △거리 △간섭 등에 의해 신호가 왜곡될 위험이 있다. 둘째로, 세포의 가용 에너지에 한계가 있어 한 번에 조합할 수 있는 모듈의 규모가 제한된다. 셋째로, 다층적인 신호 전달 과정에서 각각의 기능 모듈을 구현해 높은 신뢰도로 제어할 수 있는 활용도 높은 생체 부품들이 개발돼야 한다.

 

세포 프로그래밍을 위한 다양한 생체 부품의 개발

본 연구팀은 세포 프로그래밍을 통해 인류를 둘러싼 다양한 분야에 활용될 수 있는 생명체를 직접 개발할 뿐만 아니라, 프로그래밍을 더 쉽고 정교하게 구현하는데 필수적인 생체 부품을 고안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한 가지 사례로, 크리스퍼-카스 유전자가위(CRISPR-Cas System) 단백질의 물리적 작용을 두 개 이상의 RNA 나노 분자로 제어하는 데 성공했다. 널리 알려진 크리스퍼-카스 단백질은 유전자 교정을 통한 유전질환 치료에서부터 작물 개발, 코로나19 진단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이용되고 있지만 세포 독성이 있어 정밀 제어의 필요성이 강하게 제기돼 왔다. 정밀 제어에 강점을 갖는 RNA 분자 기반의 세포 프로그래밍은 독성이 낮고, 생체 부품들이 다수 개발돼 있어 세포 프로그래밍을 고도화시킬 수 있음에도 제한적인 활용도가 한계로 지적됐다. 또한, 크리스퍼-카스 단백질을 RNA 분자 제어 기술과 결합하는 것은 그 잠재력에 비해 충분한 시너지를 내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따라서, 본 연구팀은 세포 내 나노 분자 정보에 따라 특정 조건에서만 선택적으로 활성화해 세포 프로그래밍에 독성 우려 없이 활용할 수 있는 생체 부품을 개발했다. 이는 두 개 이상의 나노 분자 정보를 바탕으로 에너지 대사 과정을 비롯한 다양한 생명 현상을 정밀하게 제어할 수 있다. 해당 연구는 ‘양날의 검’으로 여겨지는 크리스퍼-카스 단백질이 차세대 세포 프로그래밍 기반 기술로서 더욱 광범위한 분야에 활용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미생물뿐만 아니라 식물 세포, 인간 세포 등 다양한 환경과 연구 분야에서 활용성이 높은 크리스퍼-카스 단백질을 RNA 분자로 자유롭게 제어할 수 있어 생명의 탄생과 성장, 노화에 관련된 여러 의문을 해결하는 데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다른 한편으로는 RNA 분자 기반의 세포 프로그래밍을 더욱 발전시킴으로써 활용도를 높이는 연구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유전자 발현의 핵심 단계를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는 RNA 분자 기반의 스위치를 조합하고 개선해, 기존의 세포 프로그래밍에서는 구현하기 어려웠던 신호 증폭기, 트랜지스터와 같은 전자공학 기반의 논리 회로나 다층 유전자 회로를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나아가 이런 장치들을 적용해 디자이너의 목적에 맞게 세포의 대사 활동을 정밀 제어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 기술이 발전하면, 몸에 들어가 실시간으로 병을 진단 및 치료한 후 배출돼 스스로 사멸하는 작은 생체 로봇을 제작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현재까지의 로봇 공학 기술로는 세포만 한 크기의 분자 로봇을 만들기 어렵지만, DNA·RNA 분자로 프로그래밍 된 미생물들은 암세포만을 선별적으로 제거하라는 명령을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스마트 로봇과 같이 질병 특이적 신호를 감지한 후 항암 물질을 생산해 타격하는 세포 개발을 활발하게 연구하고 있다
▲스마트 로봇과 같이 질병 특이적 신호를 감지한 후 항암 물질을 생산해 타격하는 세포 개발을 활발하게 연구하고 있다


분자 프로그래밍과 정밀 진단

세포 프로그래밍 기반의 기술 개발 및 응용이 활발해짐에 따라, 세포를 이루는 생체 분자인 DNA·RNA를 이용해 생명 현상을 프로그래밍하는 분자 프로그래밍(Molecule Programming)이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분자 프로그래밍은 분자의 특성을 이용해 실리콘 기반 기술로는 구현할 수 없는 새로운 방식의 연산을 수행하는 방법이다. DNA와 RNA의 생화학적 반응을 이론적으로 모델화·함수화하고, 컴퓨터를 통해 예측함으로써 나노 입자의 화학 반응을 디자인하거나, 분자 진단에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본 연구팀에서는 암 환자의 체액에서 얻은 극미량의 DNA를 표적으로 기계학습 기반의 분자 컴퓨팅을 구현해 암의 재발을 조기에 진단하는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기존의 정밀 진단 기술은 차세대 염기서열 분석법을 기반으로 해 비경제적인 데다, 기술적 특이성으로 인해 빈도가 낮은 돌연변이에 대한 민감도가 떨어지는 한계가 있었다. 이에 본 연구팀은 핵산 분자 간 상호 작용을 통해 PCR 과정에서 암세포 특이적 유전자 돌연변이들을 선택적, 동시다발적으로 증폭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 중이다. 환자 샘플 내에 매우 낮은 비율로 존재하는 유전자 변이의 검출 민감도를 크게 높일 수 있음과 동시에, 소요 비용을 낮춰 합리적 수준에서 각종 질환의 조기 진단 및 잔존 질환의 예후 분석에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세포 프로그래밍과 분자 프로그래밍에도 해결해야 할 과제는 남아 있다. 우선, 실험의 ‘양’이 관건이다. 세포 설계가 효과적인지 검증하려면 시제품이 되는 세포들을 더욱 많이 실험해야 하고, 보다 다양한 후보를 확보해서 테스트해야 한다. 빠르게 발전하는 기술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고민도 이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재미있는 가능성을 넘어 중요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할 열쇠로의 확장이 점점 요구되고 있다. 최근 MIT 연구진은 공기로부터 질소화합물을 합성해 옥수수에 제공하는 새로운 공생 박테리아를 시제품으로 구현하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본 연구팀은 다양한 고성능 생체 부품의 개발과 △의료 △헬스케어 △환경 △세포 공정 등 광범위한 분야로의 응용 연구를 이어가고 있어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 차세대 합성생물학 분야를 이끌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새롭게 고안된 RNA 나노 스위치-분자신호 상호작용을 통해 생명 현상을 효과적으로 제어할 수 있다(출처: Alex A. Green)
▲새롭게 고안된 RNA 나노 스위치-분자신호 상호작용을 통해 생명 현상을 효과적으로 제어할 수 있다(출처: Alex A. Gre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