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생활에 사용할 수 있는 분광학 센서의 개발
실생활에 사용할 수 있는 분광학 센서의 개발
  • 장영태 / 화학과 교수
  • 승인 2022.09.14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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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분광학 센서

빛은 참으로 경이로운 존재다. 세상의 시작은 빛과 함께 시작됐다고 한다. 성경에는 “빛이 있으라”라는 말로 천지 창조가 시작되고, 빅뱅 이론에서도 태초에 엄청난 에너지와 물질이 빛과 함께 우주를 만들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빛은 친숙한 것 같으면서도, 머릿속에도 손에도 쉽게 잡히지 않는 존재이다.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파동성을 가지지만 입자처럼 행동하기도 하는데, 에너지와 운동량은 있지만 정지 질량은 없고, 어떤 계에서도 그 속도가 일정하다고 한다. 생물의 진화에서 가장 극적인 사건 중의 하나는 아마도 빛을 감지하는 능력의 등장이지 않을까 싶다. 시각 정보가 우리 감각의 90%를 차지한다는 걸 생각하면 빛에 대한 감지 능력이 얼마나 고급 정보를 제공하는지 쉽게 추정할 수 있다. 초음파를 써서 세상을 이미지로 본다는 박쥐의 영상은 추측건대 우리가 엄마 뱃속의 태아를 보는 초음파 영상 정도의 수준이지 않을까? 혹은 음파 탐지기에 잡히는 적 잠수함의 어렴풋한 영상 정도일 것이다. 그것도 흑백 영상으로 말이다.

 

색과 분광학

빛을 이용한 정보 전달은 소리보다 백만 배 이상 빠르고 해상도가 높으며, 무엇보다 명암이나 흑백이 아니라 컬러로 대상을 볼 수 있다. 색깔을 볼 수 있다는 것은 가시광선 속에 들어 있는 빛의 파장을 구분해서 인지할 수 있다는 뜻이다. 상당히 건조한 표현을 사용했지만, 색깔조차도 옛날에는 빛만큼이나 정의를 내리기가 쉽지 않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빛은 원래 순백색인데 물질의 성질과 어울려 색깔을 띤다고 주장했다. 뉴턴 시대에 와서야 프리즘으로 백색광을 분해해 보면 그 속에 모든 색깔이 들어있고 각 색깔을 모아보면 다시 백색광이 되는 것을 확인함으로써 백색의 성분임이 증명됐다. 프리즘으로 보는 색은 무지개의 색과도 같은데, 흔히 우리는 빨주노초파남보의 7가지 색깔을 이야기하지만 실제로는 훨씬 더 많은 색소가 연속적으로 이어져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색의 다발을 스펙트럼이라고 부른다. 분광학(Spectroscopy)은 스펙트럼(Spectrum)을 보는(Scopy) 연구라고 쪼개 볼 수 있다. 빛과 물질의 상호작용을 연구하는 학문을 광학이라고 한다면, 분광학은 파장 선택적인 방법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사람의 눈은 가시광선 중 파랑, 초록, 빨간색을 별도로 인지하는 수용체를 가지고 있다. 그럼 세 가지 수용체를 가졌으니, 우리는 세 가지 색깔만 볼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최소한 우리는 무지개의 7가지 혹은 그 이상의 색을 구분할 수 있지 않은가? 우리가 인지하는 색깔은 이 세 가지 수용체 자극의 비율에 따라서 결정된다. 그래서 초록과 파랑 수용체가 활성화되면 노랑으로 느끼는 것이다. 이렇게 세 가지 수용체를 이용해서 우리가 구분할 수 있는 색깔의 숫자는 1만 개가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능력은 모든 동물에게 주어지는 일반적인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우리와 유전적으로 아주 가까운 침팬지나 고릴라는 우리처럼 세 가지 수용체를 가지고 있지만, 조금 더 먼 원숭이들, 그리고 소나 개와 같은 포유류들은 두 가지 색 수용체 밖에 가지고 있지 않다. 큰 차이가 아닌 것 같지만 두 가지 색 수용체로 구분할 수 있는 색깔은 수백 가지 정도로 제한된다. 2차원과 3차원의 차이인 셈이다. 이렇게 색깔을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은 빠르게 천적을 발견해 도망가거나, 먹이를 쉽게 찾도록 도와 개체의 생존 가능성을 크게 높여준다. 이런 이유로 간편하게 맨눈으로 확인하는 많은 센서는 색깔의 변화를 통해 작동하도록 디자인한다. 따라서 우리 눈은 훌륭한 분광 검출기라고 할 수 있다.

▲사람과 개에게 보여지는 풍경의 차이
▲사람과 개에게 보여지는 풍경의 차이

빛과 물질의 상호작용

빛과 물질이 만나면 일어날 수 있는 현상은 여러 가지가 있다. △반사 △굴절 △회절 △흡수 △산란 △분산 △간섭 △형광 △인광 등 대단히 다양해 보이는 이 현상들을 공통되는 원리로 묶어보면 크게는 흡수, 산란 그리고 형광으로 나눌 수 있다. 여기서 질문 하나를 던져 보자. 푸른 하늘과 붉은 노을은 어떻게 색깔을 형성하는 걸까? 고등학교에서 배운 대로 답을 해보면, 두 현상 다 산란 때문이라고 한다. 둘 다 산란에 의한 것인데 왜 색깔이 다른 걸까? 저녁노을은 햇빛이 통과하는 공기층의 두께가 두꺼워져서라는 설명이 그럴듯한 것 같지만, 뭔가 이상하다. 파장이 짧은 빛일수록 산란이 잘 된다는 사실을 적용하면 산란의 순서는 파랑, 초록, 빨강으로 진행될 것이다. 그러면 어느 순간에는 파랑과 빨강의 중간 단계인 초록색 노을이 보였다가 붉은 노을로 진행돼야 말이 되는 것 아닌가? 야바위 같은 이 이야기에서 빠진 중요한 고리는 바로 태양과 우리 눈의 상대적인 위치다. 푸른 하늘을 볼 때, 우리 눈은 태양 쪽을 보고 있지 않다. 90도 혹은 태양을 등지고 바라보는 하늘의 색이 파란색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산란한 파란색이 우리 눈에 도달한다. 이에 반해 붉은 노을을 볼 때는 태양 쪽을 바라본다. 태양에서 출발한 빛 중에 파란색이 먼저 산란하고 나면, 빨간색과 초록색이 섞인 노란 하늘이 보이다가, 해가 더 기울어 초록색까지 산란해버리면 남은 빨간색이 우리 눈에 도달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산란하고 남은 빛을 보는 것이다. 서쪽 하늘에 붉은 노을이 진 날에도 고개를 돌려 동쪽 하늘을 바라보면 여전히 푸른 하늘이 보일 것이다. 이는 우리가 분광학 기계를 디자인할 때 광원과 검출기를 어떻게 배치해야 하는지에 대한 힌트를 던져 준다.

▲푸른 하늘과 붉은 노을
▲푸른 하늘과 붉은 노을

분광학 센서를 이용한 식용유 산패와 노화 검출

주위의 물리적 변화량을 감지해서 우리가 인지할 수 있게 해주는 장치를 센서라고 한다. 분광학 센서는 빛을 이용해서 파장이나 빛의 세기 변화를 검출해 작동한다. 흡수 파장이 달라지는 센서는 색깔의 변화를 일으키는데, 산염기 지시약이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이럴 때는 붉은 노을 모드로 측정하면 된다. 형광은 흡수한 빛을 약간의 파장 조정을 거쳐 사방으로 방출하는 형태이므로 푸른 하늘 모드로 측정하면 된다. 색의 변화나 형광을 이용한 센서는 우리 눈을 검출기로 사용할 수도 있어서 실생활에서의 응용이 대단히 용이하다. 특히 최근 들어서 형광 센서 분야는 붐을 일으킬 정도로 많은 연구 성과들이 발표되고 있다. 그런데 활발한 논문의 발표량에 비해 막상 현장에서 사용되는 센서의 수는 그렇게 많지 않다. 이는 실험실의 통제된 조건에서 고가의 정밀 기기를 이용한 측정치가 실제 현장의 돌발 상황을 반영하지 못했거나, 현장에서 사용하기에 불편한 부분을 해소하지 못한 결과로 생각된다. 최근 들어 생긴 많은 센서 중 본 연구실에서는 장기간 사용해 산패된 식용유를 손쉽게 검출할 수 있는 형광 센서(Bad Oil Sensor)를 개발하고, 이를 휴대하기 쉬운 형태의 기기 BOSS(Bad Oil Sensing System)로 만든 논문을 발표했다. 산패된 식용유는 생물의 노화에 비견할 만한 화학적 모델 시스템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그렇다면 노화의 어떤 측면을 감지하는 센서를 개발할 것인지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 식용유의 노화에는 △산도 △점도 △극성물질 △탁도의 증가 등이 관찰된다. 식용유 센서의 개발에는 각 산패 현상을 반영한 디자인 방법(가설 기반 접근법)과 항체처럼 다양성을 가진 센서 라이브러리를 이용한 검색 방법(발견 기반 접근법)이 가능하다. 디자인 방법은 가설이 분명하다면 정해진 표적에 대해서는 집중해서 센서를 개발하기가 쉽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표적이나 가설이 정립되기 전에는 라이브러리 방법이 현실적인 대안일 수 있다. 코로나19 사태에 대한 대응에 치료 약 개발보다는 백신의 개발이 먼저 이뤄진 것이 그 예라고 볼 수 있다. 본 연구실은 1만 개 이상의 다양한 형광체를 라이브러리로 구축해 빠른 검색을 통해 산패된 식용유를 검출할 수 있는 BOS를 개발했으며 그 작용 기작이 산도와 점도의 이중 감지에 의한 것임을 밝혀냈다. 

▲BOS와 BOSS의 개발
▲BOS와 BOSS의 개발

앞서 기술한 바와 같이 색깔의 변화를 이용한 분광 검출기는 실용적인 응용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코로나19 사태와 함께 널리 사용된 항원 검사 키트 역시 분광 검출기의 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어떤 대상이라도 감지할 수 있는 센서 개발과 적절한 시각화 플랫폼을 접목한다면 SoT (Sensor of Things)를 구현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