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포항에 돌아오기까지
다시 포항에 돌아오기까지
  • 김종환 / 신소재 조교수
  • 승인 2022.06.20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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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포항에서 태어나 지곡에서 초·중·고 학창시절을 보냈다. 어렸을 때는 포항 밖의 세상에 대해 막연한 호기심이 있어 어디가 됐든 대학은 무조건 포항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 시절부터 우리대학은 나에게 특별했던 것 같다. 과학 잡지나 백과사전을 읽으면서 비행기가 하늘을 나는 원리나 전기로 사람의 목소리와 영상이 전달되는 원리 등 과학, 공학에 관심을 두게 됐고, ‘충분히 발달한 과학 기술은 마법과 구분할 수 없다’는 말을 특히 좋아했다. 학구적인 분위기가 가득한 우리대학 캠퍼스를 지나다니며 저 건물에서 지금 어떤 새로운 과학 기술을 만들고 있을까 상상했다. 학부 전공으로 물리학을 선택했는데 당시 우리대학 물리학과 학부생이었던 과외 선생님의 영향이 컸다. 사실 물리는 제일 자신이 없는 과목이었다. 완전히 뒤죽박죽이었던 물리 개념들과 사고의 흐름을 바로잡아 주셨고, 시간이 걸렸지만 점차 물리 공포증을 극복하게 됐다. 물리를 전공하면 나중에 뭐든지 잘할 수 있다고 하셨는데, 그 말씀을 믿어 물리학을 전공으로 선택했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닌 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우리대학 신소재공학과 교수로 다시 포항으로 돌아오게 됐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4년 만이었다. 2003년에서 2016년까지 많은 일이 있었다. 우선 음악을 CD 플레이어로 듣다가 MP3라고 불리는 소형기기로 듣기 시작했다. 전화와 문자만 가능한 휴대폰을 가지고 다녔는데 애플 아이폰이 개발돼 MP3와 휴대폰이 합쳐졌다. 또한, 자율 전기 자동차가 개발돼 급격하게 성장하며 화석 연료를 기반으로 하는 자동차와 경쟁하고, 드론으로 택배나 사람을 태우고 운송하는 아이디어가 나오고 있었다. 내가 초등학교 3학년일 때 열린 대전 엑스포에는 미래관이라는 전시관이 있었다. 가까운 미래에는 멀리 떨어져 있어도 사람의 얼굴을 보면서 대화를 나눌 수 있고, 집 밖에서 집 안에 있는 기기들을 원격으로 제어할 수 있으며, 자동차는 스스로 운전하기에 이동하는 동안 편안하게 독서를 하거나 영화를 보면 되고, 하늘을 나는 운송 수단이 개발될 것이라는 내용의 전시였다. 상상력이 풍부한 초등학생이었던 나도 터무니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2016년에 이들이 현실이 돼가고 있었다.

개인적으로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수능 문제를 겨우 풀던 수준의 영어 실력이 발전해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해졌다. 교환 학생과 대학원 유학 생활을 하면서 다른 나라 사람들과 어울리며 다양한 삶의 방식을 경험했다. 가본 적 없는 곳에서 새로운 체험을 하거나 음식을 먹는 것을 즐기게 됐다. 친한 친구 4명을 모아 미국 서부 로드트립을 하며 쏟아질 것같이 별이 빽빽하게 채워진 밤하늘을 봤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물리학을 박사학위까지 하고 난 뒤에야 ‘물리를 전공하면 나중에 뭐든지 잘할 수 있다’는 말의 의미가 물리학적인 엄밀함을 바탕으로 가장 근본이 되는 원리에서 시작해 현상을 분석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 아닐까 추측하게 됐다. 직업에 대한 가치관도 바뀌었다.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박사학위 연구를 하던 중에 레이저 개발로 노벨상을 수상하신 찰스 타운스(Charles Townes) 교수님을 종종 뵀다. 내가 졸업할 무렵 연세가 무려 99세이셨다. 지팡이에 달린 산소호흡기 도움을 받으며 거의 매일 오전 10시쯤에 출근하셨던 것 같다. 그 외에도 연세가 70세가 넘어도 왕성하게 연구하시는 교수님들이 많이 계셨다. 이전의 내게 직업이란 주로 경제적인 수입을 얻기 위한 수단이며, 적성에 맞으면서도 적게 일하고 많은 보상을 받는 일자리를 찾는 것이 목표였다. 하지만 경제적인, 학문적인 자유를 얻고도 치열하게 연구하시는 교수님들을 뵈면서 나도 평생토록 즐길 수 있는 일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됐다.

다시 포항에 돌아온 지 어느덧 5년이 지났다. 신소재공학과에서는 그동안 갈고닦은 물리학적 엄밀함을 바탕으로 새로운 광소자를 개발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말처럼, 포항이라는 작지만 특별한 도시에서의 내 연구가 많은 사람에게 도움 되기를 바라며 오늘도 설레는 마음으로 출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