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없는 세상을 다독이는 문장
죽음 없는 세상을 다독이는 문장
  • 손유민 기자
  • 승인 2022.05.02 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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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라2018.12.25 출간작가 : 김성중
이슬라
2018.12.25 출간
작가 : 김성중

“불완전한 신체 속에 담긴 내 영혼은 액체처럼 유동하고 있다.” 묘하게 지금의 자신을 가리키는 듯한 문장이 나를 이슬라에 빠져들게 만든다. 여느 나날들 사이, 한순간에 시간이 멈추고 죽음은 사라졌다. 세상을 굴러가게 하던 질서는 금세 흐트러져 거리에는 강한 감정만이 존중받아 살아남는다. 질서와 상식을 거스르는 혼돈과 마주하게 된 열다섯의 소년은 외로움이라는 단어를 알기 전부터 그 단어에 속해 있었다.

시간이 멈춘 이슬라의 세상은 흔한 판타지 소설이라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멈춘 세상이라는 클리셰 속에서 소년의 미성숙함은 백 년간 많은 모험과 도전, 실패와 헛된 시간을 거쳐 후회를 맛보게 한다. 작은 머릿속에서 수십 번 엎치락뒤치락하는 소년의 가치관을 지켜보다 보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죽음이 없어진 세상은 온갖 가시들로 가득하다. “네 몸에서 빼낸 가시들이 도로 자라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다 없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야. 네 마음이 슬픔에 삼켜지지 않도록 조심해라. 살 뿌리가 단단한 땅을 으스러뜨리는 것처럼 언제든 너를 파괴할 가시가 자라날 수 있으니까. 슬픔을 좋아하는 것은 나쁜 버릇이란다.” 자칫 굴레에 빠질 수 있는 부정적인 감정을 가시에 빗대어 독자들을 다독이는 작가의 화법이 와닿는다.

늘 바쁜 일상에서 누구나 한 번쯤은 하루만 더 시간이 주어지길, 잠시라도 시간이 멈추기를 바랐을 테다. 그런 우리에게 책 ‘이슬라’는 뻔하면서도 재밌게 유동적인 시간의 중요성을 알려준다. 한 소설의 스쳐 지나가는 표현들이 당신의 여유로운 마음에 보탬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