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에서 탈출하다
플라스틱에서 탈출하다
  • 박승아, 소예린 기자
  • 승인 2021.11.14 0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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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벨 생수 제품이 인기를 끌고있다(출처: 연합뉴스)
▲무라벨 생수 제품이 인기를 끌고있다(출처: 연합뉴스)

 

당신은 오늘 플라스틱을 얼마나 썼는가? 그리 많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개개인의 사용량을 모두 합하면 가벼이 여겨선 안 되는 결과가 나온다. 올해 호주 자선단체 ‘민데루 재단(Minderoo Foundation)’의 통계에 의하면 세계 플라스틱 폐기물 배출량은 1억 3,000만 톤이며, 1인당 플라스틱 폐기물 배출량은 한국이 미국과 중국의 뒤를 이어 3위로 나타났다. 플라스틱 폐기물을 소각하면 다량의 유독 기체가 배출되기 때문에 대부분은 땅에 매립하는 값싼 방식을 택한다. 하지만 1억 3,000만 톤에 달하는 플라스틱 폐기물을 모두 매립하기엔 물리적 공간이 부족해 많은 양이 바다에 버려진다. 바다를 떠도는 플라스틱 폐기물은 해양 생태계를 파괴할뿐더러, 아주 작은 크기인 미세 플라스틱으로 쪼개진다. 많은 어류가 이를 먹이로 오인하고 섭취하는데, 우리가 이 어류를 먹으면 몸속으로 미세 플라스틱이 들어온다. 미세 플라스틱은 비스페놀A와 같은 유독한 유기물질과 결합해 체내에서 환경호르몬을 생성하고, 오랫동안 분해되지 않아 몸 밖으로 쉽게 배출되지 않는다.
이에 경각심을 느낀 환경단체와 세계 정부에 의해 플라스틱 소비를 줄이는 ‘플라스틱 프리(Plastic Free)’ 문화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됐다. 플라스틱 프리란 일상의 일회용품을 다회용품으로 대체하고, 나아가 플라스틱 소비를 자제해 폐기량을 줄이기 위한 탈(脫) 플라스틱 운동이다. 한국에서도 △매장 내 일회용 컵 금지 △생활폐기물 탈 플라스틱 대책 △환경부의 ‘고고 챌린지’  △SBS 비디오머그의 ‘NO플라스틱 챌린지’ 등 여러 정책과 챌린지가 진행됐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개인위생의 중요성이 강조되며 일회용품 사용이 다시 급증했다. 또한 매장 내 일회용 컵 금지 정책도 무기한 유예되면서, 플라스틱 폐기물 줄이기에 대한 국민적 인식이 옅어졌다.
플라스틱은 △의류 △식품 △운송 △의료 △IT △중공업 △건설 등 거의 모든 산업에서 필수 불가결한 소재이기 때문에,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플라스틱 폐기물을 유의미하게 감축할 수 없다는 지적도 있다. 이전까지의 탈 플라스틱 운동은 SNS를 통한 캠페인 형식으로 진행돼 순간적인 유행에 그치고, 범국민적 인식으로까지 확산되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었다. 이어서 플라스틱 폐기물 감축을 위해서는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적인 협력이 중요하다는 점이 강조됐고, 그동안 값싼 플라스틱 소재를 사용하던 기업들도 탈 플라스틱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커피 프랜차이즈 ‘투썸 플레이스’는 지난 6월 ‘두썸굿(Do Some Good)’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며 △환경 △사회 △건강을 위한 활동을 전개하겠다는 계획을 알렸다. 투썸 플레이스는 지난 2019년부터 빨대 없이 사용 가능한 아이스 컵 리드인 에스프리 리드(Straw Free Lid)를 사용해 빨대 사용량을 절감했다. 탈 플라스틱을 위한 이종 기업 간 협력 사례도 늘고 있다. △락앤락 △CJ대한통운 △투썸 플레이스는 플라스틱 자원 선순환을 위해 지난 7월 ‘탄소 ZERO 협의체’를 구성했다. 3사는 폐플라스틱 재사용 및 재활용과 친환경 소재를 이용한 상품 개발을 위해 협업할 예정이다. 롯데월드는 업사이클링 기업 ‘터치포굿’과 함께 테마파크에서 폐페트병을 수거해 재활용 상품으로 제작하는 ‘그린월드’ 캠페인을 진행했다.
소비자들 사이에서도 플라스틱 소비를 줄이는 가치 소비가 늘어나고 있다. 라벨이 부착되지 않아 페트병의 재활용률을 높일 수 있는 ‘무라벨 생수’를 지난해 1월 롯데칠성음료에서 도입한 바 있다. CU에서는 무라벨 생수 제품인 ‘HEYROO 미네랄워터’의 매출이 전년 대비 78.2%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동안 생수 전체 매출이 20.4% 증가했다는 점에서 무라벨 생수에 대한 소비자의 선호도가 증가했음을 알 수 있다. 이외에도 플라스틱 용기를 사용하지 않는 고체 비누의 소비가 증가했으며, 천연 수세미나 옥수수 칫솔과 같은 탈 플라스틱 제품의 인기가 높다.
친환경 제품 사용 외에도 일상생활에서 플라스틱 소비를 줄일 수 방법은 다양하다. 과대 포장된 제품을 구매하지 않는 것, 장바구니나 텀블러를 사용하는 것 등 널리 알려진 방법이 많다. 하지만 플라스틱 프리를 실천할 때, 우리가 몇 가지 경계해야 할 점들이 있다. 우선 스스로가 과시적 소비를 하고 있진 않은지 질문해야 한다. ‘나는 환경을 사랑한다’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사용하던 제품을 모두 버리고 새로운 친환경 제품을 구매하거나 필요 이상의 제품을 구매하는 등의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또한, 기업이 ‘그린 워싱(Greenwashing)’을 하는 것은 아닌지 판단해야 한다. 그린 워싱은 기업이 경제적 이윤을 위해 실제로는 친환경을 실천하고 있지 않음에도 환경을 생각하는 것처럼 홍보하는 위장 환경주의다. 제품을 선택할 때 그린 워싱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고, 자신의 소비에 대한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탈 플라스틱은 이제 개인의 수준에서 머무는 것이 아닌, 기업과 정부, 더 나아가 전 세계적으로 주목해야 할 과제가 됐다. 환경을 위해서 모두가 조금씩 양보하고 물러설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