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공인입니까?
당신은 공인입니까?
  • 이태훈 기자
  • 승인 2021.10.12 05:5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내가 모르는 사람이 나를 안다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다. 어렸을 때, 아버지가 출연한 뉴스 인터뷰를 보며 ‘나도 TV에 나오는 멋진 사람이 되고 싶다’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당시에 비해 대중에게 알려지기가 훨씬 쉬워진 것 같다. TV 속에는 연예인의 부모, 자식을 비롯한 온 가족과 매니저, 친구들이 나오고, 수많은 유튜버와 SNS 인플루언서들은 어쩌면 길 가다가 한 번씩 마주쳤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대중에게 얼굴이 알려진 사람들이 많아지며 드는 한 가지 의문점이 있다. 이런 사람들을 공인이라고 부르던데, 과연 공인이 무엇인가?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공인(公人)은 ‘공적인 일에 종사하는 사람’이다. 즉 공무원, 정치인과 같이 공적 업무를 하는 사람이 원래 의미의 공인이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연예인, 스포츠 선수와 같은 얼굴이 알려진 사람들 역시 공인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들이 대중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은 이제 익숙한 일이다. 야구선수 강백호는 도쿄올림픽 야구 3, 4위전에서 우리나라가 지고 있는 와중에 껌을 질겅질겅 씹었다가 여론의 몰매를 맞았고, 유명 유튜버들은 불미스러운 일로 뉴스에 나온 뒤 정해진 패턴으로 사과를 하곤 한다. 코로나19 사태 초기에 n번 확진자의 동선은 전 국민의 관심사이자 가십거리였다.
이제 우리 사회에서 공인은 더는 공적인 일에 종사하는 사람만을 뜻하지 않는다. 사람들의 관심을 받거나, SNS의 팔로워가 많거나, 남들이 누리지 못하는 특혜를 누리거나 하는 사람 모두가 공인이다. 모두의 행동이 뉴스가 되고, 인터넷에서 서로를 추적하고 저격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공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은 곧 모두가 불안에 떨어야 한다는 뜻이다. 오늘은 익명성 뒤에 숨어서 공인들을 비난하다가도, 내일은 내가 대중에게 손가락질받는 공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비난받는다면, 그 장소는 아마 가장 개인적인 공간이라고 생각했을 소셜미디어일 것이다.
미국 공영라디오(National Public Radio, 이하 NPR)는 지난 2011년 소셜미디어의 폭발적인 성장에 대해 다루며 “우리는 이제 모두 연예인이다(We Are All Celebrities Now)”라는 제목의 특집 기사를 냈다. 기사에서 NPR은 ‘프라이버시 2.0’이라는 개념을 제시하며 SNS를 통해 수많은 사람의 정보가 공유되고 일반인도 쉽게 유명해져 공인과 사인의 경계가 무너질 것으로 전망했다. 사적 영역이 줄어들고 누구나 공인이 되는 사회가 온다는 예측이었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지금, 이 예측은 현실이 됐다. 검색 몇 번이면 지구 반대편 모르는 사람이 지난주에 여행 다녀온 사진을 볼 수 있고, SNS에 남긴 글이나 댓글을 보고 사람들을 판단할 수 있게 됐다.
NPR은 10년 전 기사에서 “평범한 사람들이 연예인의 장점은 누리지 못하면서 단점만 누리는 경험을 하기 시작했다”라고 말했다. 연예인이 누리는 부와 명예는 없지만, 연예인과 비슷한 공격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제는 나를 포함한 모두가 인터넷에 많은 정보를 뿌려놓은, 그리고 뿌려갈 사회다. 모두가 연예인인 시대, 누구나 공인이 될 수 있는 시대. 우린 그런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당신에게 묻는다. 당신은 공인입니까? 아니, 공인이 될 준비가 돼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