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의 중심에 선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논란의 중심에 선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 손주현 기자
  • 승인 2021.06.27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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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 대심판정의 모습(출처: 헌법재판소)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의 모습(출처: 헌법재판소)

 

사례 1
A 씨는 최근 이용자들의 후기가 좋은 산후조리원에 등록해 산후조리를 했다. 하지만 이용 과정에서 온수 보일러 고장, 소음 등의 불편 사항을 겪었고 이 내용을 자극적인 제목과 함께 유명 인터넷 카페에 게시했다. 하지만 이 사건 이후로 A 씨는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됐고 법적 다툼을 이어가야 했다.

사례 2
B 씨는 학창 시절 유명인 C 씨에 의해 학교 폭력을 당했다는 것을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렸다. 유명인 C 씨는 이것이 자신의 명예를 훼손한다고 판단해 법적 대응을 진행했다.

최근 학교 폭력 폭로, 음식점 고발 사건 등의 다양한 사례들과 함께 사실적시 명예훼손죄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특히 인터넷과 정보 기술의 발전은 이런 폭로와 고발들이 좀 더 쉽게 등장할 수 있는 배경을 제공하기도 해, 때로는 사실이 아닌 것을 허위로 유포하는 사례도 종종 발견되곤 한다. 사실이 아닌 부분을 진실인 것처럼 꾸며 상대방의 명예를 훼손하는 일은 분명히 잘못됐지만, 진실을 말해도 처벌 받을 수 있다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는 지속해서 논란이 되고 있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란?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는 우리나라 형법 제33장 ‘명예에 관한 죄’와 깊은 연관이 있다. 우리나라 형법 제307조 1항에서는 ‘공연히 사실을 적시해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으며 2항에서는 ‘공연히 허위의 사실을 적시해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2항의 경우 ‘허위의 사실’이라는 용어가 서두에 적혀있지만 1항에는 ‘사실’이라는 단어가 사용된 점에서 알 수 있듯, 사실을 적시했더라도 우리나라에서는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 다만, 형법 제310조에 따르면 그 행위가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처벌하지 않도록 예외를 두고 있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찬성과 반대 입장은?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는 크게 ‘개인의 명예 및 인격권 보호’와 ‘표현의 자유’ 두 가지 측면에서 부딪히고 있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죄가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측에서는 다음과 같은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개인의 명예는 일단 훼손되면 회복이 어려워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례도 발생하기에 사회적 피해가 심각함. △공공의 이익에 관한 사실은 형법 제310조를 통해 처벌되지 않음. △표현의 자유는 중요하지만, 진실이라는 이유만으로 명예를 훼손하는 행위가 무분별하게 허용되면 개인의 명예가 제대로 보호받기 어려움. △개인의 약점과 비밀을 적시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라는 목적에 부합하지 않음. 결과적으로 개인의 명예를 구제하기 위한 대책이 아직 잘 마련돼 있지 않고, 표현의 자유가 지닌 무게를 충분히 인식하지 못한 상황에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폐지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한편, 사실적시 명예훼손죄가 위헌이라는 측에서는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사실적시로 손상된 것은 개인의 ‘과장된 명예’이기에 일부 위헌의 소지가 있음. △적시한 사실이 개인의 사적 비밀 영역인 경우가 아니라면 표현의 자유가 우선돼야 함. △일반 국민이 공공의 이익을 예측하고 판단하기 어렵기에 정당한 표현 행위도 위축될 수 있음. △표현의 자유는 국가와 공직자들에 대한 감시와 비판을 중요한 가치로 가지는데, 형사처벌의 주체가 감시 대상자가 되면 감시와 비판이 위축될 수 있음. 이를 정리하면,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주요한 요소이며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로 인해 국가 권력에 대한 견제가 오히려 위축될 수 있다는 것이다.
법조계 내부에서도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에 대한 찬반양론이 팽팽히 맞서 있다. 지난 2016년, 서울지방변호사회 소속 변호사 1만 3,034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 조사 결과에서는 우리나라 형법 제307조 제1항에 대해 응답자의 49.9%(970명)가 “해당 형법 조항을 폐지하고 민사상 손해배상으로 전환해야 한다”라고 답했다. 반대로 현행법을 유지하자는 의견은 33.23%(646명), 형사처벌을 유지하되 벌금형만 남겨야 한다는 의견은 16.46%(320명)로 나타났다.

한편, 지난 2월 25일 헌법재판소에서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와 관련된 헌법소원에 대해 5(합헌) 대 4(일부 위헌)의 의견으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가 합헌이라고 결정했다. 이는 지난 2016년 2월 정보통신망법에 의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판결과 동일한 결과지만, 재판관들의 의견에서 발생한 변화는 주목할 만하다. 지난 2016년의 경우에는 7 대 2의 의견 차이를 보였지만, 지난 2월에는 5 대 4의 비율로 변화한 것이다. 물론 헌법재판소의 재판관들 구성이 변화해 의견 차이가 있을 수도 있지만, 국민들의 증가한 사회적 관심과 요구들이 반영됐다는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와 관련된 사회적 사건들은 과거뿐만 아니라 현재에도 꾸준히 일어나고 있는 만큼, 찬성과 반대를 둘러싼 사회 구성원들의 긍정적인 토의 과정과 심사숙고가 앞으로도 요구되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