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보다 빠르게 퍼지는 전염병 ‘인포데믹’과의 전쟁
코로나19보다 빠르게 퍼지는 전염병 ‘인포데믹’과의 전쟁
  • 김지원 기자
  • 승인 2020.09.03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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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5G를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출처: AP통신)

 

그는 오늘도 행복했던 순간을 친구들과 나누기 위해 SNS에 접속한다. 공유 버튼을 누른 지 5분 정도 지났을까. 친구들, 심지어 이름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좋아요’를 눌러준다. SNS상에서 정보가 전파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불과 몇 분. 출처 미상의 허위 정보들까지 마구 뒤섞여 쏟아지는 정보들은 불특정 다수에게 빠르게 전파된다. 이처럼 가짜뉴스가 마치 전염병처럼 전파되는 현상을 전염병(Epidemic)과 정보(Information)의 합성어인 ‘정보전염병(Infodemic)’이라 한다. 이 용어는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널리 알려졌으나 2000년대부터 일찍이 인류가 초연결사회로 진입함에 따라 맞이한 전염병이다. 정보전염병은 그 파괴력과 전염력이 커서 ‘21세기 흑사병’이라 불리기도 한다. 실제로 지난 3월 이탈리아 국립연구회 산하 복잡계연구소가 밝힌 바에 의하면 SNS상에서 퍼지는 가짜뉴스의 전파력은 코로나19의 전염력보다 크다. 
코로나19는 초연결사회에서 맞이한 대규모 전염병으로 과거의 흑사병, 사스 등과 구분되는 특징을 갖는다. 혐오와 공포를 조장해 사회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주는 정보전염병을 동반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역시 그것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른바 ‘소금물 방역’으로 78명의 확진자가 발생한 은혜의 강 교회 집단감염 사례가 대표적이다. 체내의 바이러스가 사멸하기 위해서는 체내 염도를 0.9% 이상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가짜뉴스를 접한 해당 교회 목사의 아내는 지난 3월 예배에 참석한 신자들에게 교체하지 않은 소금물을 입안에 뿌렸다. 코로나19를 예방하려다 되려 감염을 확산시킨 셈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호흡기를 통한 감염이 이뤄지는 코로나19 바이러스와 몸속 소금 농도와는 무관하다”라며 가짜뉴스라고 밝혔다. 
영국에서는 5G가 코로나19를 확산한다는 음모론이 제기된 적이 있다. 5G 기지국에서 나오는 전파가 면역체계를 약화해 코로나19가 빠르게 확산한다는 것이다. 이 음모론이 퍼질 당시 영국의 통신 관련 업무 종사자들은 5G 통신탑을 폭파할 것이라는 협박 전화에 시달렸으며 영국 버밍엄, 리버풀, 멜링 지역의 기지국에서는 방화사건이 잇달아 발생했다. 방화사건의 원인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으나 이 음모론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영국 언론 BBC는 분석했다. 이 외에도 “하루에 계란을 9개 섭취하면 코로나19를 이겨낼 수 있다”, “불꽃놀이는 대기 중의 바이러스를 없앤다” 등 막대한 양의 가짜뉴스들이 동서양을 막론하고 동시다발적으로 양산되고 있다.
정보전염병은 국가 간 혐오를 조장하기도 한다. 지난 2월 국내 코로나19 확진자 증가세에 중국에서 한국인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부추기는 게시물로 논란이 인 적이 있다. 중국 현지 언론매체 선양만보에 따르면, 한 중국인은 한국에서 돌아온 중국인 1명이 병원에서 사망했다는 글과 조선족이 많이 거주하는 동네가 봉쇄됐다는 게시물을 올려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구류 조치됐다. 또한, 중국의 대형 포털사이트 웨이보를 통해 한국인이 코로나19 감염을 숨겨 아파트가 봉쇄됐다는 가짜뉴스를 퍼뜨린 중국인이 구류처분을 받기도 했다.
가짜뉴스의 확산에 세계 각국은 이에 대한 별도의 법적 규제를 도입하려는 추세다. 가짜뉴스와 관련해 가장 강력한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나라는 코로나19 사태 이전부터 심각한 혐오 범죄에 시달렸던 독일이다. 독일은 2년 전부터 플랫폼 사업자가 혐오 발언을 삭제할 의무를 명문화했다. 플랫폼 사업자에게 인종 혐오 및 테러, 폭력을 부추기는 게시물을 삭제할 의무를 부여하고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최대 5천만 유로, 약 60억 원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내용이다. 실제로 이 법이 도입된 당해 6개월간 유튜브에서만 5만 7천여 건의 게시물이 삭제 또는 차단됐다. 국내에서는 현행 법률 중 △언론중재법 △공직선거법 △정보통신망법 등을 통해 가짜뉴스를 규제하고 있으나 가짜뉴스 생산자와 유포자가 곧바로 처벌을 받기보다는 명예훼손, 업무방해 등과 연관될 때만 처벌할 수 있다. 따라서 국내에서도 플랫폼 사업자들에게 가짜뉴스를 차단할 의무를 부과하거나 언론사의 정정보도 위치를 신문의 첫 지면에 게재하도록 하는 등의 가짜뉴스 대응 법안이 국회에서 다수 발의됐다. 한편, 가짜뉴스의 규제 대상이 불명확해 자유로운 의견 개진을 침해할 수 있다는 논란도 상당하다. UN 인권조사관 측에서도 국내 가짜뉴스 규제 법안이 언론 통제 등, 법의 오남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우려를 표명한 바 있는 만큼 법안 도입에 앞서 신중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한편, 정보전염병을 예방하기 위해 한국기초과학연구원은 의료계 종사자, 과학자와 의기투합해 코로나19 관련 정보를 여러 언어로 번역해 선제적으로 알리는 ‘루머를 앞선 팩트’ 캠페인을 시행 중이다. 가짜뉴스가 생성되기 전에 사실 검증이 완료된 정보를 널리 알리는 것이다. WHO 역시 트위터와 페이스북, 틱톡 등의 플랫폼 기업과 손잡고 가짜뉴스를 통제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이처럼 가짜뉴스를 통제하기 위해 곳곳에서 대대적인 노력을 펼치고 있지만 쏟아지는 엄청난 정보량은 감당하기 힘든 실정이다. 거짓 정보가 난무하는 인포데믹 상황에서 가짜뉴스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 우리 스스로가 나서서 ‘정보 방역’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