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이라는 기준 앞에서
상식이라는 기준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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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9.03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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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 조회 시간이 되면 선생님께서 한 학생을 기준으로 세우고 우리는 그에 맞춰 좌우 정렬을 했다. 학교에서는 우리의 이름보다는 학급 번호로 자주 나열됐다. 학창 시절부터 우리는 기준이란 말에 익숙한 삶을 살아왔다.
나는 상식을 일반적인 학문적 상식과 가치 판단이 작용하는 상식의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한다. 명확히 구분할 수는 없지만, 우리나라 광복절이 언제인지나 6·25전쟁이 언제 일어났는지 알아야 한다는 상식은 학문적 상식에 해당하고 웃어른을 공경해야 한다는 상식은 가치 판단의 상식에 속한다고 본다. 상식이란 사람들이 보통 알고 있거나 알아야 하는 지식을 뜻한다. 여기에는 일반적인 견문, 이해력, 판단력, 사리 분별 등이 포함된다. 결국은 상식도 ‘보통 알고 있거나 알아야 한다’라는 대중적인 기준을 바탕으로 판단이 된다.
코로나19 사태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미국, 영국 등 일부 국가에서는 독특한 시위가 진행됐다. 바로, 마스크 착용을 반대하는 ‘안티(Anti) 마스크’ 시위다. 하지만, 아직 이런 시위는 우리나라에서 열리지 않았다. 대다수의 국민은 마스크 착용에 대한 당위성과 중요성을 이해하고 있으며 이를 상식으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기준과 상식이란 말을 예전부터 꾸준히 들어왔지만, 기준과 상식을 나누는 잣대가 항상 자명하지는 않다. ‘어디까지가 상식인가’, ‘무엇을 기준으로 두냐’의 문제는 항상 토론의 대상이 되고 논쟁거리가 돼 왔다. 오랜 시간이 흐르고 전 세계 인구수도 증가하는 시점에서 ‘보통’의 기준은 각자마다 다르며 시대에 따라 변화하고 있다. 오래전에는 장애인의 인권이 보장되지 못한 시절도 있었으며 노예 제도가 일반적이고 관습적인 제도일 때도 있었지만, 현재는 이들의 권리 보장을 위한 여러 노력이 이뤄지고 있다. 넓은 시각에서 바라보면 보통이라는 단어는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라 지속해서 바뀌는 가변적이고 상대적인 기준이다.
때로는 기준이 엄격히 적용돼야 하는 분야도 있다. 대한민국 헌법 제27조에 ‘모든 국민은 헌법과 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하여 법률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라고 나와 있듯, 우리는 헌법과 법률의 기준에 의해 재판 받을 권리가 있다. 법의 기준은 헌법과 법률이 되고 이에 어긋나는 행위는 누구든 엄중히 처벌을 받아야 한다.
기준은 가변적이기에 저절로 상식의 범위도 달라질 수 있다. 기준이라는 것이 절대적이지 않으니 마음대로 살아도 된다는 뜻이 아니다. 또한, 상식에 어긋나는 행동이라고 해서 무조건 비판의 대상이 되거나 용서와 이해의 대상이 돼야 한다는 뜻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각자의 상식의 범주를 넓히는 긍정적인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가치 판단이 작용하는 상식의 경우 여러 의견이 상충하는 경우가 많다. 이때 발생하는 갈등을 극복하기 위해 우리에게는 이해와 겸손, 배려, 공감의 미덕이 요구된다. 본인이 생각하기에 지극히 상식인 것도 남에게는 상식이 아닐 수도 있다. 간단한 원리다. 물리학과 학생이 불어불문학과 학생의 이론을 물리학 내용처럼 바로 알아 듣기는 어렵다. 서로의 상식과 기준의 차이를 비판하고 비난하기보다는 서로 배려하고 각자의 상식을 잘 설명해주는 과정이 바람직할 것이다. 이를 통해 서로의 기준을 이해하고 자신의 기준과 상식을 넓힐 수도 있다. 모두의 상식의 범위가 넓어진다면 시간이 흐르고 보통의 기준이 달라진다고 해도 여전히 많은 부분이 보통의 접점에 남아 있을 수 있다. 협의와 배려, 토론을 통해 넓혀진 서로의 상식으로 보통의 기준이 변해도 접점이 많아지고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꿈꿀 수 있지 않을까? 상식이라는 기준 앞에서 모두가 동의하고 공감할 수 있는 세상이 오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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