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에서 추억으로 떠난 여행
포항에서 추억으로 떠난 여행
  • 이상원 / 무은재 19
  • 승인 2020.07.06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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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점심이 다 되어서야 일어난 나는, 어제 치킨을 먹었으니 운동을 좀 해야겠다는 생각에 오후 2시 반에 자전거를 끌고 무작정 철길 숲으로 향했다. 친한 선배에게서 철길 숲 쪽으로 쭉 가면 육거리가 나온다는 얼핏 들었던 이야기를 믿고 페달을 밟았다.
철길 숲은 놀라울 정도로 잘 꾸며져 있었고, 중간에 지나친 낡은 집들마저 색감이 참 예뻤다. 자전거도로가 끝나고 나온 비포장도로 옆에는 갈대밭이었던 것 같은 터가 있었고, 나는 자전거를 타며 날이 따뜻해졌을 때 그 밭을 가득 채울 갈대를 상상하며 페달을 밟았다. 어느새 육거리의 랜드마크인 CGV가 내 옆쪽으로 보였을 때 꽤 많이 왔다는 걸 직감했다. 하지만, 육거리에 혼자 자전거를 끌고 간다고 해서 재미있게 놀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고, 죽도시장에서 밥이나 먹을까 싶었지만 저녁밥을 먹고 다시 학교로 돌아가기에는 너무 어두워질 것 같아 계속 밟았다. 포항초등학교가 나왔을 때쯤, 죽도시장이 바다 바로 옆에 있으니 오른쪽으로 계속 가면 바다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기대에 골목 사이사이를 무작정 달려서 결국 포항 운하에 다다랐다.
자전거를 타며 1년이라는 기간 동안 알게 모르게 쌓아온, 공간에 대한 추억들이 하나둘씩 스쳐 지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포항 출신 친구가 여기가 포항 운하라고 설명하던 기억, 일반화학 퀴즈를 본 후 분반 친구들과 무작정 버스를 타고 죽도시장으로 떠났던 기억, 그때 포항 운하 앞에서 본 유독 색이 신기하게 섞여 있는 꽃들이 생각났다.
포스코로 추정되는 공장 굴뚝들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했고, 나는 영일대 해수욕장으로 갈 수 있다는 걸 확신했다. 해안가를 따라 쭉 가다 보니 예상대로 영일대 해수욕장에 도착했다. 코로나19가 유행하지만, 영일대에서는 아무 일 없다는 듯이 가족들, 연인들이 함께 사진을 찍고, 갈매기가 날아다니는 모습이 너무 평화로워 보였다.
영일대를 지나며, 입학식 뒤풀이로 일출을 보러 온 기억, Remedial Course 때 처음으로 와서 모랫바닥에 ‘2조 파이팅’이라 적고 같이 사진을 찍은 기억, 중간고사 후 분반 친구들과 함께 와서 폭죽을 터뜨린 기억들이 스쳐 지나갔다. 1년간 아무것도 안 하고 지내고 도서관에만 박혀 있었던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여기저기 추억이 많이 깃들어 있었다.
그 후에는 이제 포항에서 함께 만들어갈 추억들을 떠올렸다. GT LOVE에서 버스킹을 한다면 어디에서 할까? 올해에는 누구와 함께 영일대에 올까? 영일대 주변에 맛있는 식당도 많이 있던데 언제쯤 갈까? 아끼는 사람들과 같이 와서 먹어보고 싶다. 그런 생각들을 잠시 하다가 하늘이 어둑어둑해질 때쯤 서둘러 학교를 향해 페달을 밟았다.
왕복 약 세 시간 정도 페달을 밟아서 그런지 학교에 다시 도착할 때에는 다리에 힘도 잘 안 들어갔다. 상당히 즉흥적이고 무모했으며 아쉽게도 길게 가지는 못했던 나만의 자전거 여행이었지만 2019년부터 1년동안 내 고향처럼 살아온 포항에서의 추억을 다시 한 번 돌아볼 수 있었기 때문에 기분 좋게 침대에 쓰러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