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사각지대가 무너지기 전에
세상의 사각지대가 무너지기 전에
  • 김성민 기자
  • 승인 2019.12.05 12:5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970년 11월, 미싱사 전태일은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노동자들을 혹사하지 말라!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를 외치며 청계천 앞에서 근로기준법 책과 함께 자신을 불태운다. 평화시장에서 옷을 만드는 여공들의 노동환경은 매우 열악했다. 하루의 절반을 넘게 일해도 입에 겨우 풀칠할 돈만 벌었으며, 다치거나 폐병에 걸리면 그대로 쫓겨나야 했다. 그는 이런 열악한 노동환경에 분노한 것이었다. 이 사건이 일어난 다음부터 지식인들이 노동자에게 관심을 뒀고, 노동자 또한 노동조합을 만들어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노력을 시작했다.
#1987년 1월, 학생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노동자의 더 나은 삶에 관심을 가졌던 서울대 학생 박종철이 고문으로 사망한다. 당시 수사관들은 그의 사망 원인에 대해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쓰러져 죽었다”라고 말하며 진실을 숨기고자 했다. 하지만 은폐될 뻔한 그의 죽음의 원인은 광주민주화운동 7주기 추도미사에서 김승훈 신부가 심문 과정에 고문이 있었음을 폭로하며 수면 위로 드러난다. 그리고 그의 죽음은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돼 대통령 직선제를 이끌어낸다.
#2011년 12월, 대구에서 한 중학생이 동급생의 학교폭력 때문에 삶을 포기한다. 가해자들은 피해자의 집 비밀번호까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피해자가 가해자를 피할 수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이전에도 학교폭력으로 생을 마감한 학생들의 이야기는 꾸준히 있었지만, 그냥 사건·사고로만 보도됐다. 그러나 이 사건은 크게 공론화돼 학교폭력의 심각성을 환기했으며, 국가 또한 학교마다 학교폭력전담경찰관을 배치하고 학교폭력 상담전화를 만드는 등 학교폭력을 중대한 범죄로 인식하게 된다.  
주변에서, 사회에서, 국가에서 누군가가 자신의 하나뿐인 생명을 잃기 전에 더 주의할 수는 없었을까. 죽음이 언론에 보도돼 많은 사람이 슬퍼하고 분노하면 그제야 대책이 세워진다. 문제가, 사회의 모순이 곪고 곪을 때까지 방치해 결국 누군가가 소중한 자신의 삶을 잃고, 포기하기 전에 바로잡을 수는 없는가. 
지금 세계 곳곳에서는 부당한 권력에 맞서 사람들이 피를 흘리고 있다. 이렇게 국민들이 거리로 나오고, 세상이 극단으로 내몰리기 전에 국민의 목소리를 조금만 더 잘 들어줄 수는 없을까. 꼭 누군가가 피를 흘려야 국민이 나라의 진정한 주인이 될 수 있는 걸까. 
큰불이 난 건물을 조사해보면 면적 기준에 약간 모자라서 스프링클러 같은 화재대비 시설이 덜 갖춰져 있었다는 말이 항상 나온다. 무너진 건물을 조사해보면 불법적으로 개조됐거나 증축됐다는 말이 빠지지 않는다. 의무가 아니라는 이유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언제 있을지 모르는 위험을 간과했다가 결국 큰 피해를 본다. 모순과 문제점을 알고 있으면서도 자신이 자리에 있을 때만은 아무 일도 안 일어날 것이라며 이를 방치하는, 일 만들기 싫어하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세상을 더 아프게 만든다. 누군가가 죽으면 슬픔 속에 살아가는 사람은 셀 수도 없다. 나 혼자 살기도 바쁜 세상이지만 주변을 조금만 더 둘러보자. 아픔 속에 사는 사람들이 아픔을 키우고 있을 세상의 사각지대를 조금이라도 더 작게 만들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