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 것만 채식주의가 아니다···‘비건 패션’ 유행
먹는 것만 채식주의가 아니다···‘비건 패션’ 유행
  • 김지원 기자
  • 승인 2019.11.08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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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류의 과다생산을 비판하는 베트멍의 전시품(출처: Harrods 홈페이지)
▲의류의 과다생산을 비판하는 베트멍의 전시품(출처: Harrods 홈페이지)

 

영국의 대표 명품 브랜드 버버리가 지난 2017년 한 해에만 소각한 재고품은 무려 423억 원. 이는 버버리뿐만 아니라, 구찌, 프라다, 아르마니 등 내로라하는 명품 브랜드들이 오랫동안 지켜온 관행이다. 제품의 희소성을 유지하고, 재고품을 할인하거나 기부할 경우 브랜드의 고급 이미지가 훼손될 것을 우려한 것이다. 버버리의 재고 소각 관행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환경단체와 소비자들은 명품업계의 관행을 맹비난했다. 여론이 악화하자 버버리는 작년 9월 재고 소각 관행을 즉각 중단하겠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와 함께 모피 제품 생산을 중단하고 향후 5년간 120톤의 자투리 가죽을 재활용해 신제품을 생산할 것을 약속했다. 이런 움직임은 빠르게 확산해 명품업계뿐만이 아닌 패션업계 전체에 친환경적인 패션을 추구하는 ‘비건 패션’ 바람을 일으켰다.
이후 구찌, 캘빈 클라인, 베르사체 등 내로라하는 명품 브랜드들이 앞다퉈 버버리의 ‘퍼 프리(Fur free)’ 정책에 동참했다. 이 정책을 선언한 브랜드들은 의류의 지속가능성과 환경보호에 중점을 둔 의류 소재 개발에 몰두할 계획이다. 특히 천연 가죽 제품을 대체하기 위해 식물성 천연섬유나 합성섬유로 만든 제품을 생산하겠다고 밝혔다. 명품 브랜드들의 모피 제품 생산 중단 선언에 힘입어, 이제 일부 패션쇼에서조차 천연 모피 제품을 볼 수 없게 됐다. 세계 4대 패션쇼로 손꼽히는 ‘런던 패션 위크’는 2018년 9월 패션쇼를 기점으로 모든 모피 옷들을 런웨이에서 퇴출했다.
저렴한 의류를 대량생산해 넘쳐나는 재고품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SPA 브랜드 역시 환경문제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에 스웨덴 SPA 브랜드 H&M은 2004년부터 친환경 소재로 만들어진 의류 라인인 ‘컨셔스 익스클루시브(Conscious Exclusive)’를 통해 환경 친화적인 의류 생산에 힘써왔다. 아울러 H&M은 2030년까지 브랜드 전체 라인의 소재를 재활용할 수 있거나 지속 가능한 소재로 100%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H&M은 패션의 선순환 구조에 기여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시상하고 지원하는 ‘글로벌 체인지 어워드(Global Change Award)’라는 행사도 매년 개최하며 순환 경제를 위한 해결책을 개발하도록 적극적으로 독려하고 있다. 올해는 쐐기풀로 만든 텍스타일 섬유, 아이와 함께 성장하는 아동복, 아웃도어 웨어를 위한 생분해성 무독성 막 등 총 5개의 아이디어가 우승의 영광을 가져갔다.
버려지는 옷에 새로운 디자인을 더 해 다른 제품으로 재탄생시키는 ‘업사이클링(Up-cycling)’을 통해 재고품으로 이윤 창출을 꾀하는 기업들도 있다. 업사이클링은 ‘업그레이드(Upgrade)’와 재활용을 뜻하는 ‘리사이클링(Re-cycling)’의 합성어로 원료로 재처리하는 과정에서 제품의 가치가 상실되는 재활용과는 달리, 업사이클링은 성능이 개선된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탈바꿈한다. 친환경 정책의 선두주자 H&M은 2020년까지 최소 연간 2만 5천 톤의 천을 수거해 자사 제품에 업사이클링하겠다고 밝혔다. 업사이클링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업사이클링 제품이 브랜드의 상징이 된 경우도 있다. 명품 브랜드 베트멍의 최고 히트 아이템인 ‘해체주의 데님’은 두 벌의 데님을 해체 후 다시 하나로 재조합한 혁신적인 디자인으로 인기를 끌었다. 이 제품은 심미성 또한 인정받아 해외 언론들로부터 “시대정신과 핏의 완벽한 결합”이라는 극찬을 받은 바 있다.
전 세계적으로 환경보호에 관한 관심이 뜨거워지자 이제는 국가 차원에서 재고품 폐기를 금지하기에 이르렀다. 프랑스 정부는 지난 6월, 명품 브랜드들과 전자상거래업체 아마존을 겨냥해 반품된 제품이나 재고품을 소각, 파쇄하는 등의 파괴 행위를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아울러 에두아르 필리프 프랑스 총리는 “4년 내로 의류, 전기용품, 위생용품, 화장품 등 비식품에 대한 파괴 금지 조치가 시행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비건 패션의 인기에 힘입어, 지난 2월에 최초로 열린 ‘비건 패션 위크’가 지난달 10일부터 15일까지 로스앤젤레스에서 개최됐다. 이를 계기로 비건 패션은 패션계의 큰 줄기로 자리매김했다. 착한 소비가 유행인 지금, 환경과 동물윤리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비건 패션 트렌드를 즐겨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