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학생이 이렇게 귀여울 리가 없어
복학생이 이렇게 귀여울 리가 없어
  • 노진우 / 화공 14
  • 승인 2019.03.29 16:5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랜만에 돌아온 학교는 낯설었다. 개교 당시의 인테리어 트렌드를 엿볼 수 있던 학생식당은 아늑하고 세련된 푸드코트로 다시 태어났고, 묘하게 2000년대의 기운이 서려 있던 스낵바 또한 팔각형 테이블과 은은한 조명으로 멋이 났다. 스낵바 한 쪽을 차지하고 있던 84인치 UHD TV는 사라졌고, 이제는 스낵바 한 벽면이 가득 TV가 됐다. 시대가 달라졌음을 실감했다.
2년 만에 돌아온 학교의 달라진 점을 꼽으라면, 시설도 시설이지만 무엇보다 등굣길에 마주치는 사람의 대부분을 모른다는 것이다. 동아리 하나만 들어가 있어도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되는 것이 당연한 학교였는데, 이제는 곁을 지나쳐가는 야구점퍼가 어떤 단체를 대표하는 것인지도 알 수 없게 됐다.
‘학교의 세대가 완전히 교체됐구나’ 어딜 가든, 나와 같은 경험을 공유했던 사람이 거의 없다는 사실은 나를 외롭게 했다. 셧다운제니 뭐니, 기숙사비가 올라가니 마니, 학교를 뜨겁게 달궜던 주제들. 누가 누구를 좋아하는 것 같지 않니, 걔는 정말 왜 그러나 몰라. 내가 남에게 잘못한 일들, 누가 내게 실수한 일들, 누가 나를 욕하지 않을까 잠 못 이루던 밤들도 이제는 다 잊혀지고, 새로운 이야기와 고민이 학교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학교를 가득 채운 새내기들을 보며,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를 떠올렸다. 파릇파릇한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의 첫 수업 시간, 키팅 선생은 학생들에게 100학번쯤 위 선배들의 흑백사진을 보여준다. 한때는 젊었지만, 이제는 모두 죽어버린, 세상을 그들 손에 넣어 위대한 일을 할 거라 믿고, 두 눈 가득 희망이 차 있던 선배들의 사진. 하지만 그들은 모두 죽어 땅에 묻힌 지 오래였다. 100년 전에도 있었을 그 뜨거운 젊음과 사랑, 질투와 복수심, 모욕감, 부끄러움은 모두 공기 중으로 흩어져버리고, 결국 남아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모든 것은 끝나고, ‘도대체 무엇이 의미 있는 것이냐’라는 친구의 질문에 나는 말문이 막혔다.
재미있는 사실은 같은 고민을 5,000년 전의 사람들도 했었고, 그 나름의 대답이 서사시로 아직까지 전해 내려온다는 것이다. 인류 최초의 영웅 서사시라는 ‘길가메시 서사시’에서, 주인공 길가메시는 친한 친구의 죽음을 계기로 불사의 삶을 찾아 여행을 떠난다. 길가메시는 여러 괴물과 신, 사람을 만나 대화를 나누는데, 그중 술의 여인 ‘시두리’에게 받은 충고가 흥미롭다.
“인간은 원래 죽습니다. 그러니 좋은 음식으로 배를 채우십시오. 낮으로 밤으로, 밤으로 낮으로 춤추며 즐기십시오. 당신의 손을 잡아줄 어린 자식을 낳고, 아내를 당신 품 안에 꼭 품어 주십시오. 왜냐하면 이것 또한 인간의 운명이니까요.”
그래, 옛날 사람들이 찾은 답도 참 별거 없구나! 맛있는 음식을 먹고, 하루하루 즐겁게 사는 것. 내 주변을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로 채우고, 아낌없이 사랑을 나눠 주는 것. 그것이 인생의 전부였구나. 이 어렵지 않은 목표를 이루기 위해 어려운 길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었나 생각해본다.
사람에게는 사람이 필요하다. 나도 그렇고, 누구나 그렇다. 인간의 삶이 길다 한들, 우주의 시간에 비하면 찰나일 뿐이다. 100년조차 찰나에 불과하다면 서너 살 차이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많은 고학번 복학생 친구들이 홀로 밥을 먹고 수업 듣는 것을 봤다. ‘화석’ 취급을 받는 그들은 사실 당신과 똑같이 여리고 외로운 미물일 뿐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