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른 효소의 반전, TLS
게으른 효소의 반전, TLS
  • 부가연 / 물리 통합
  • 승인 2019.01.05 0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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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TLS의 한 모델. pol δ와 η의 교체에 p15 구조가 없는 단백질(intrinsically disordered protein)과 ubiquitin이 관여하는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김대형(물리 통합) 씨 그림
▲그림 1. TLS의 한 모델. pol δ와 η의 교체에 p15 구조가 없는 단백질(intrinsically disordered protein)과 ubiquitin이 관여하는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김대형(물리 통합) 씨 그림
▲그림 2. DNA flow stretching 실험의 개요. 유체가 흐르는 채널 속에서 DNA에 달린 구슬의 위치를 촬영해 개개의 DNA에서 단백질로 인해 일어나는 반응을 관찰할 수 있다. 이량근(물리 통합) 씨 그림
▲그림 2. DNA flow stretching 실험의 개요. 유체가 흐르는 채널 속에서 DNA에 달린 구슬의 위치를 촬영해 개개의 DNA에서 단백질로 인해 일어나는 반응을 관찰할 수 있다. 이량근(물리 통합) 씨 그림

“인간은 이기적 유전자의 복제 욕구를 수행하는 생존 기계다”
출판 이후 40년이 지난 지금도 널리 읽히는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에서 작가는 태초 생명체의 탄생으로부터 전해져 온 유전자, DNA의 복제 욕구로 생명체의 다양한 모습을 설명한다. 유전자는 자신을 지속시키기 위해 복잡한 생존 전략을 택했고, 이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DNA의 효율적인 복제’일 것이다.
DNA의 효율적인 복제라는 지상 최대의 과제를 위해 세포는 다양한 단백질을 이용해 DNA를 아주 빠르고 정확하게 복제한다(8시간에 30억 base pairs). DNA 복제에서 합성을 담당하는 DNA polymerase(이하 DNA pol)의 구조는 흔히 오른손으로 비유되곤 한다. 손가락으로 합성할 원본 데이터인 DNA의 주형을 붙잡고, 반응이 일어나는 구역인 손바닥에서 주형에 대응되는 DNA 구성 조각인 뉴클레오타이드(nucleotide)를 차례차례 삽입한다. DNA의 두 가닥 중 불연속적으로 합성되는 지연가닥(lagging strand)의 복제를 담당하는 DNA polymerase δ(이하 pol δ)의 구조를 예로 들면, DNA를 감싼 δ의 손바닥 구조는 빈틈없이 야무져서 DNA를 정확하고 빠르게 복제할 수 있다. 그러나 복제 속도가 너무 빠르면 잃는 것도 있는 법이다.

빠르고 정확한 DNA 복제로 인해 세포가 처하는 위험 상황
DNA는 자외선, 담배 연기 등 일상적인 요인에 의해 쉽게 손상된다. 다행히도 DNA의 손상을 수리할 수 있는 다양한 메커니즘이 존재한다. 특히, 두 상보적인 DNA 가닥의 짝이 맞지 않는 오류가 발생했을 때 이를 수리하는 DNA mismatch repair 과정에서 각 역할을 담당하는 단백질이 어떻게 신호를 전달하는지를 우리대학 이종봉(물리) 교수 연구팀에서 밝혀낸 바 있다. 이외에도 다양한 DNA repair 메커니즘 덕분에 잦은 손상에도 불구하고 DNA의 에러율은 백억 분의 일 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DNA를 수리할 여유가 없을 정도로 많은 양의 DNA 복제가 신속하게 이뤄져야 하는 때가 있다. 세포의 분열 시기이다. 세포가 지닌 모든 DNA를 복사해야 하는 이 시기에 복제가 막혀 버리면 세포는 심한 손상을 입는다. 자동차 공장에서 작은 부품 하나라도 문제가 생기면 자동차를 완성할 수 없고, 그렇게 생산 지연이 계속되면 회사는 결국 망할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DNA 복제가 지연되면 세포는 자살(apoptosis)하고 만다.
Pol δ는 DNA에 밀착하는 구조적 특성 덕분에 빠르고 정확한 합성이 가능하지만, 손상을 입어 뒤틀리고 구부러진 DNA 주형은 pol δ의 좁은 반응 구역에 접근할 수 없어 합성할 수 없다. 복제 지연으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한 세포의 전략은 역설적이게도 덜 정확한 DNA pol을 갖추는 것이다. 주로 Y-family라는 polymerase 분류에 속하는 이 ‘게으른’ DNA pol들은 야구 글러브처럼 커다란 오른손 구조로 돼 있다. 둔한 글러브로 젓가락질하기 어렵듯이, 이 pol들은 느리고 부정확하게 DNA를 합성한다. 대신 반응 구역인 손바닥 부분이 비교적 열려 있기 때문에 손상으로 변형된 DNA도 쉽게 접근해 합성될 수 있다. 한 예로, 자외선을 받아 인접한 티민(Thymine) 뉴클레오타이드들이 서로 달라붙어 이합체를 이룬 손상에서 pol δ는 합성을 지속하지 못하고 멈추지만, Y-family에 속하는 polymerase η(이하 pol η)는 손상 부위를 합성할 수 있음을 실험으로 확인했다. 즉, 세포의 성공적인 분열을 위해서는 평소 pol δ가 DNA 합성을 수행하고, 손상으로 인해 δ가 막혔을 때 pol η가 손상 부위만 합성해 주는 탄력적인 전략이 필요하다. 이를 손상을 뛰어넘는 합성이라 해 translesion DNA synthesis(TLS)라 하며, DNA 선도가닥(leading strand)의 합성을 담당하는 polymerase ε에 대해서도 같은 메커니즘을 가진다.
TLS pol이 존재해서 다행인 한편, TLS로 인해 부정확한 DNA의 복제가 누적되면 돌연변이 질병이 발생하지는 않을까 걱정된다. 실제로 pol η의 에러율은 십 분의 일 정도로 위험성이 상당히 높다. 가장 좋은 방식은 평소 TLS pol들이 DNA에 접근하는 것을 엄격히 막고, DNA 손상으로 인한 복제 지연이 발생했을 때만 접근 및 교체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뇌도 없는 세포가 무슨 수로 이런 복잡한 과정을 조절한단 말인가?
애석하게도 이 물음에 대한 명확한 답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질병에 연관된 만큼 많은 사람이 이를 밝혀내려 노력하고 있고, 필자 역시 물리학도로서 답을 찾고자 하는 중이다. 잠깐, 갑자기 물리학이라고?

물리학자가 생물학을 하는 법
어느 닭장의 닭이 자꾸 죽어 나가자, 주인이 물리학자에게 해결책을 물었다. 물리학자는 이렇게 답했다. “닭장이 진공이고, 닭이 완벽한 구형이라고 가정하자…” 시트콤 빅뱅 이론에도 등장하는 물리학자들에 대한 유명한 우스갯소리이다. 이 경우의 가정은 다소 터무니없는 것 같긴 하지만, 어쨌든 물리학자들이 문제를 단순화하는 것은 사실이다. 어떤 현상을 탐구할 때 가장 완벽한 방법은 그 온전한 대상에 대해 살펴보는 것이겠으나, 대부분 현상은 어마어마하게 많은 구성요소와 복잡한 구조를 갖춘 덕분에 그렇게 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물리학자들은 간단한 구성요소로 실제 현상을 모방해 탐구하는 방법을 택한다.
생명체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기본 단위인 세포조차 다양하고 작은 분자들이 가득 찬 복잡한 구조를 갖추고 있다. 그 복잡성과 관찰의 어려움 때문에 TLS와 같은 생명현상을 있는 그대로 탐구하기보다는 여러 물리학적인 접근 방법을 이용하게 된다. 필자는 손상된 DNA와 TLS에 관여한다고 알려진 정제된 단백질들을 이용해 TLS를 모사하고 이를 전반사 현미경(TIRF), 단분자 FRET, DNA flow stretching 등의 단분자 제어 및 이미징 방법으로 연구하고 있다.
일례로 그림 2와 같이 DNA flow stretching은 일정한 속도로 유체가 흐르는 채널의 바닥에 DNA의 끝을 붙이고, 반대쪽 끝에 달린 구슬(bead)의 위치를 촬영하는 방법이다(DNA는 너무 작아서 보이지 않는다). 유체의 속도를 조절하면 구슬이 받는 pN(10-12N) 단위의 힘이 변하고 이를 통해 DNA가 얼마나 펼쳐지는지 결정된다. 복제되지 않은 DNA는 한 가닥, 복제된 DNA는 두 가닥으로 이뤄져 있으므로, 두꺼운 밧줄이 더 팽팽한 것처럼 동일한 힘에서도 합성 여부에 따라 DNA의 펼침 정도가 다르다. 시간에 따른 구슬의 위치를 통해 DNA의 길이 변화를 알 수 있고, 이로부터 해당 DNA에서 합성 속도를 측정해 pol의 종류를 추정한다. 이렇게 개별 분자를 촬영하는 단분자 촬영 기술의 경우 전통적인 생물학 실험 기법으로 구한 앙상블 평균으로는 알 수 없었던 개별 분자의 정보를 각기 얻음으로써 새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는 큰 이점이 있다.

마치며
리처드 도킨스의 주장처럼 인간과 사회를 DNA의 복제 욕구로 설명할 수 있다면, DNA 복제 과정에 대한 연구로 삶의 태도를 살펴보는 것도 의미 있을 것이다. TLS가 일러주듯 때로는 치열하고, 때로는 여유로운 2019년을 보내시길 기원한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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