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을 탐험하는 과학은 어디서 배우나요?
자연을 탐험하는 과학은 어디서 배우나요?
  • 곽민준 / 생명 15
  • 승인 2019.01.05 0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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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학기 서울대학교 교류 학생으로 지내면서 우리대학과의 많은 차이점을 발견했다. 두 학교 모두 각각의 강점이 뚜렷해 딱히 우월감이나 열등감을 느낀 적은 없지만, 딱 한 가지 너무나도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 바로 기초 과학 분야를 배울 기회가 부족하다는 점이었다. 

서울대에서 수강한 진화생물학 과목의 담당 교수님께서는 관악산 곳곳을 다니며 동물을 관찰하고 연구하는 분이셨다. 놀랍게도 우리대학 생명과학과에는 이분처럼 실험실 밖의 자연 현장을 연구하는 교수님이 아무도 안 계신다. 생명과학자라는 말을 들으면 흔히들 떠올리는 자연을 누비고 동식물을 연구하는 학자는 우리대학에 없다. 수업 과목도 마찬가지다. 실험실 밖의 자연을 배울 수 있는 과목은 딱 하나 ‘생태학’이 있는데, 담당 교수님 두 분의 전공은 생태학이 아니다. 심지어 우리대학 생명과학과 학생들은 모든 생명현상의 기본 개념인 진화를 깊이 있게 배울 기회를 거의 받지 못한다. 그저 실험실 안에서의 생물학만 배울 뿐이다.

이것이 생명과학과만의 문제는 아니다. 다른 학과의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다. 내가 졸업한 과학고등학교 천문대의 주 망원경은 32인치 리치 크레티앙식 망원경으로, 학교에 설치될 당시 우리나라에서 손에 꼽힐 정도로 큰 광학 망원경이었다. 천문학에 관심이 많은 학생은 그 망원경을 조작해 천체를 관측하며 많은 것을 배우고 성장했다. 우주에 관심이 없는 학생도 망원경을 통해 자연과학을 배웠다. 그러나 우리대학은 어떠한가. 공학 3동 옥상의 효곡천문대는 학교와 학생들에게 외면받고 있다. 물리학과에는 천체물리학을 연구하는 교수님도 없고, 관련 과목도 개설되지 않는다. 케플러도 갈릴레오도 밤하늘을 보며 물리학을 공부했는데, 우리는 그럴 수 없다. 천문학이 다른 분야보다 중요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세상의 모든 물질과 그들 간의 상호작용을 연구할 미래의 물리학도들이 너무나도 넓은 저 밤하늘을 바라볼 기회조차 못 가지는 것이 정상적인 일은 아닌 듯하다. 적어도 연구중심대학, 과학특성화대학임을 자처하는 우리대학에서는 말이다. 

이곳은 대학이다. 가치창출도 연구중심도 좋지만, 그 이전에 대학은 교육기관이다. 따라서 학생들에게 해당 전공이 어떤 분야인지, 그 전공을 공부하는 자들은 무슨 재미로 그 일을 하고 있는지 정도는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위의 분야들이 무시되는 건 참 안타까운 일이다. 천문학이나 지구과학, 생태학 등의 분야는 순수한 자연에 가까운 대상을 연구한다는 점에서 가장 근본적인 과학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과학을 접하는 이들이 과학이란 학문이 무엇인지 배우고, 자연에 대한 흥미와 관심을 느끼기에 제일 적합한 분야다. 연구 참여를 통해 현재 과학 동향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런 분야들을 공부하며 과학의 역사와 흥미를 배우는 일 역시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이유다. 과거 생물학자들은 동식물과 함께 들판을 뛰놀면서 과학을 접했다. 물리학자들은 밤하늘을 보며 세상의 진리를 깨우쳤다. 생태학, 천문학이 경제적 활용도가 낮아 현대 과학에서 무시되고 있더라도 우리가 자연 현장에서의 생생한 과학을 배울 이유는 여전히 존재한다.

입학 이후에 학과를 선택하는 새로운 시스템의 영향으로 모든 학과가 졸업 후의 안정적이고 좋은 진로를 강조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과학은 원래 세상에서 가장 순수하면서도 무식한 행위가 아니었던가. 그저 궁금해서 알고자 하는 것이 과학의 목적이다. 그게 다다. 먹고 살기 힘들어져 모두가 안정적인 직업을 원하는 게 나쁜 건 절대 아니지만, 이를 핑계로 학생들에게서조차 과학의 순수한 재미를 느낄 기회를 박탈하는 것은 너무한 처사다. 이제는 우리에게 자연을 느끼고 과학의 재미를 접할 기회를 주었으면 한다. 적어도 학부 때라도 경제적 가치는 적지만 재밌는 과학을 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돈을 못 버는 연구를 하는 분을 데려오라니, 무리한 부탁인 걸 안다. 그래도 우리대학은 가치창출대학 아니던가? 과학의 진정한 가치인 새로운 지식을 발견하는 재미를 알아줬으면 한다. 그래도 우리대학이니, 조금은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