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오로 증오를 몰아낼 수는 없다
증오로 증오를 몰아낼 수는 없다
  • 김건창 기자
  • 승인 2019.01.05 01: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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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 미국 흑인 인권 운동을 이끌며 인권 신장에 지대한 공로를 끼친 인물이다. 그가 본격적으로 흑인 인권 운동을 주도하게 된 것은 1955년부터였다. 로사 팍스라는 흑인 여성이 버스 안에서 백인에게 자리를 비켜주라는 버스 기사의 말을 무시했다는 이유로 경찰에 체포됐고, 전국의 흑인들이 분노했다. 마틴 루터 킹은 버스 보이콧 운동을 382일간이나 주도하며 흑인 인권 항쟁의 전면에 나섰다. 이 운동은 미국 연방 대법원의 인종 차별이 불법이라는 판결을 끌어냈다. 그러나 8년 후인 1963년에도 인종 차별은 그대로였다. 앨라배마주 버밍햄에서 일어난 식당에서의 흑백 좌석 차별 반대 시위를 경찰이 폭력적으로 진압하기도 했다. 마틴 루터 킹은 수도인 워싱턴 D.C.에서 대규모 평화 행진을 진행하기로 했다. 1963년 8월 28일, 25만 명의 미국인들이 워싱턴 기념탑 광장에 모여 행진을 시작했다. 놀랍게도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라며 역사에 길이 남을 감동적인 연설을 한 마틴 루터 킹에게 열렬한 환호를 보낸 것은 흑인뿐만이 아니었다. 많은 백인 역시도 그를 응원하고 있었다. 이듬해인 1964년, 린든 B 존슨 대통령이 공공장소에서의 인종 차별 혹은 고용에서의 차별을 불법으로 규정하는 민권법에 서명했고, 마틴 루터 킹은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 넬슨 만델라(Nelson Mandela). 남아프리카공화국의 350여 년에 걸친 인종 갈등을 종식한 대통령이다. 그는 흑인인 자신과 자신의 친구들에게 가해지는 차별에 부당함을 느끼고, 법학을 공부한 뒤 비폭력 투쟁을 시작했다. 당시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아파르트헤이트’라는 인종격리정책이 시행되고 있었다. 이는 공공장소, 대중교통, 교육 시설 등에서 흑인과 백인을 강제로 분리하는 정책이었다. 넬슨 만델라는 이에 반대하는 운동에 참여하는 등 활동을 이어나갔다. 그러나, 1960년 요하네스버그 남쪽의 샤프빌에서 열린 대규모 집회에서 경찰이 총기를 난사했고, 이 참혹한 학살에서 69명이 사망함과 동시에 수백 명이 다쳤다. 넬슨 만델라는 이를 계기로 비폭력 투쟁을 포기하고 무장 투쟁을 결심한다. 이후 체포돼 27년간 감옥에서 복역했으나, 남아프리카공화국을 넘어서서 전 세계적으로 인권 운동을 상징하는 존재가 됐다. 출소한 뒤,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이 된 그는 흑인과 백인의 화합을 위해 앞장섰다. 1995년 세계 럭비 선수권 대회에서 대부분이 백인으로 구성된 럭비팀을 수시로 방문하는 등 럭비로 화합의 장을 만들고자 했다. 그 대회의 결승전에서 대표팀은 우승을 차지했고,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흑인과 백인 할 것 없이 서로 함께하는 축제가 열렸다.

마틴 루터 킹은 비폭력, 사랑을 바탕으로 한 운동을 통해 미국 사회에서 흑인에 대한 백인들의 인식을 뒤바꿔 놓았다. 넬슨 만델라는 흑인과 백인의 화합을 위해 자신의 일생을 바쳤다. 무장 투쟁은 했지만, 비폭력 시위를 무력으로 진압하는 것에 대한 정당한 방위였다. 흑인 인권 신장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두 사람 모두 인권 운동에서의 비폭력이 얼마나 거대한 변화를 이끌었는지에 대한 좋은 예이다.

오늘날 일어나고 있는 일부 인권 운동은 어떠한가. 혐오적인 표현과 폭력이 점철된 인권 운동을 과연 인권 운동이라고 할 수 있을까. 마틴 루터 킹은 자신의 연설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어둠으로 어둠을 몰아낼 수는 없습니다. 오직 빛으로만 할 수 있습니다. 증오로 증오를 몰아낼 수는 없습니다. 오직 사랑만이 그것을 할 수 있습니다” 마틴 루터 킹의 조언이 절실해 보이는 오늘날의 세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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