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명한 방학나기를 위한 제언] 배낭여행, ‘나’를 위한 최고의 투자
[현명한 방학나기를 위한 제언] 배낭여행, ‘나’를 위한 최고의 투자
  • 이민영 / 화학 4
  • 승인 2000.06.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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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만원에서 100만원만 있으면 여름방학 두 달 내내 해외 여행을 신나게 할 수 있다. 그 정도 돈도 없다면 빚을 내어서라도 여행을 하고 나중에 갚아주라. 돈은 금방 갚을 수 있어도, 젊은 날의 여행에서 배울 수 있는 것들은 다시 오지 않는다.

미국 2개월, 인도 및 네팔 8개월, 호주 3개월, 멕시코 및 과테말라 2개월, 그 외 일본 3번, 태국, 홍콩 등등을 방학과 1년의 휴학 기간을 통해 돌아다녔다. 처음에 뉴욕에 내렸을 때는 나도 무서웠다. 하지만 각종 박물관과 브로드웨이 공연, 거리의 활기에 빠져 점점 자정에 넘기고 귀가하는 일이 잦아졌다. 그러고 나니 여행의 묘미를 알게 되어 1년간 휴학하고 여행을 다녔다. 인도에서는 정말 맘껏 살았다. 아침에 눈을 떠서 가고싶은 데가 생기면 10분만에 짐을 싸서 숙소를 떠났고, 전기도 수도도 없는 촌구석에서 바울이라는 전통악사들과 함께 매일 춤과 노래로 한 달을 보내기도 했다. 축제나 콘서트, 파티가 있다는 소문만 들으면 당장 달려갔다. 네팔에서는 4153m의 안타푸르나 히말라야 트레킹을 하면서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고, 일본에서는 세계 각지에서 사귄 친구들을 다시 만나 술 마시고 놀러 다녔다. 호주에는 해동검도 시드니 도장 사범으로 파견되어 한동안 영어로 호주인들에게 검도를 가르치다가, 마지막 한 달은 농장에서 일당 83달러를 받고 일했다. 그리고 멕시코. 사실 라틴 댄스를 배우러 갔기에, 바에서 다양한 남자들과 함께 춤을 추었다. 금새 스페인어를 배워버린 것도 당연한 일.

그리고 이 바닥에서 배운 모든 역량으로 LG 21세기 선발대에 뽑혔고, 이번 여름에 2주간 일본에 간다. ‘오타쿠-일본을 이끄는 힘’이란 주제로 소니, 게임장의 게임도사들, 애니메이션 동호회 등을 방문하고 매일 인터넷 중계를 한다. 물론 일본어로.

여행하는 동안 나는 완전히 혼자였다. 내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장소에서 원하는 일을 나만의 의지로 할 수 있었다. 늘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상황에 던져지면서 나는 내가 일하는 스타일, 생각하는 방법, 내가 원하는 것, 즉 ‘나’라는 사람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었다.

또한 다른 사람과의 관계, 사람을 다루는 방법에 대해서도 많이 연구할 수 있었다. 어떻게 하면 사기를 안 당할 것인지, 효과적으로 정보를 얻을 것인지, 저 매력적인 친구와 사귈 수 있을 것인지, 나의 장점을 부각시킬 것인지... 이 모든 상황들에서 살아남은 나는 그 뒤로 모든 면접과 사람 대하는 일에서 월등히 발전한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언어 감각. 생존을 위해 인도 웨스트 벵갈 지역의 언어 벵갈리와 중미의 스페인어를 금새 익힐 수 있었고, 재미있는 일본 친구들의 얘기를 듣고 싶어서 전혀 모르던 일본어도 익혔다. 언어, 사고 방식, 음식, 그 모든 것이 수시로 바뀌는 가운데 나의 적응력은 향상되어 국제인으로 거듭나고 있었던 것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했던 것은 사람들과의 관계. 지금도 하루에도 몇 통씩 전세계에서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에게서 이메일이 온다. ‘전생의 연인’이었다는 한 일본인 예술가에게 푹 빠진 적도 있고, 지구가 둥근지도 모르는 문맹의 인도 소년에게서 너무나 아름다운 마음을 발견하고 눈물 짓기도 했다. ‘한 가지에 몰입하는 것’을 몸소 보여주신 인도인 북 선생님, 매일밤 술잔 가득 따라놓고 수다를 떨던 이태리 친구, 같이 춤추러 다니던 일본 친구, 그리고 “Your fucking Guru(스승) is in your fucking mind!”라는 말 한 마디로 나를 깨우쳤던 그리스의 17세 소년... 그 모든 사람들이 나를 깨우치고 인생을 가르쳤다.

혼자 여행하기를 적극 추천한다. 겁나는 건 처음 3일 일뿐, 그 눈부신 자유와 수많은 기회들은 나만의 것이다. 일정, 식사 메뉴, 호텔비 등으로 싸울 필요도 없으며, 오히려 혼자 여행하는 다른 나라 친구들을 아주 쉽게 사귀게 되고, 언어도 빨리 늘고, 무엇보다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주위 사람들이 나를 걱정하기 때문에 여행갈 수 없다고 자신의 용기 없음을 변명하진 않는지. 무턱대고 걱정으로만 나의 발목을 잡는 부모님이, 고교 때의 선생님이, 내 인생에, 내 영혼에 무엇을 책임져 줄 수 있단 말인가.

4학년이 된 내가 가장 후회하는 것은 학교에서 보낸 1학년의 여름, 겨울방학이다. 그 때부터 정보를 모으고 용기를 내어 여행했어야 했다. 그랬더라면 지금쯤 몇 개의 언어를 더 구사하고 있을 텐데.
여행은 좋은 경치를 구경하러, 문화재를 감상하러 가는 것이 아니다. 아직 머리가 말랑말랑하고 흡수력 빠른 20대의 배낭여행은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타인을 발견하고, 세계와 인생에 대한 가치관을 세우기 위한 최고의 투자인 것이다. 지금 당장 비행기표를 예약하고, 여권을 신청하고, 배낭과 가이드북을 사고, 비자가 필요하면 신청하자. 그리고 용기를 내어 비행기를 타고 새로운 세계로 떠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