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정상회담의 의미와 그 후-남북정상회담의 배경과 의미]
[남북 정상회담의 의미와 그 후-남북정상회담의 배경과 의미]
  • 이대영 / 민주주의민족통일대구경북연합 정책국장
  • 승인 2000.06.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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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통일 앞당기는 디딤돌 되어야

7천만 민족의 열망과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남과 북의 평양 최고위급 회담이 하루 연기되어 13일부터 15일까지 진행된다. 정상회담의 합의 사실이 발표되는 순간부터 지금까지 칠천만 겨레는 물론이고 국제사회는 이번 회담에 더없이 높은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정상회담에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사실들이 많이 있다. 그 가운데 몇 가지를 통해 이번 회담의 배경과 의미 등을 살펴보자.

먼저 회담의 명칭이 남과 북에서 서로 다르다. 남쪽에서는 남북 정상회담으로 칭하는데 반해 북에서는 최고위급 회담이라고 부르고 있다. 일반적으로 ‘정상회담‘이라는 용어는 국가와 국가간의 최고 당국자 회담을 일컫는다. 남쪽은 아무런 생각없이(?) 정상회담이라 일컫지만 북에서는 남북 관계를 국가간의 관계가 아니라 통일해야 할 특수한 관계로 설정하고 있다. 따라서 국가간의 정상이 만나는 회담이 아니라 특수한 관계에 있는 남과 북의 최고 당국자가 만나는 회담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아울러 남과 북은 두 개의 국가가 아니라는 점을 확인하고 있는 것이다. 이 점에서 수긍하는 바가 크므로 이 글에서는 앞으로 평양회담이라 칭한다.

다음으로 평양회담과 관련하여 의제가 구체적이지 못하다는 지적이 있다. 지난 5월 평양회담을 위한 준비접촉에서 언론사의 생중계 등에 관한 기술적 문제로 준비회의 기간이 길어지고 늦어진 적이 있었다. 그러나, 준비회의의 일정에 차질이 생긴 진짜 이유는 청와대 측에서 평양회담의 의제를 결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청와대 측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이산가족 문제나 경제협력 등의 문제를 논의하겠다고 수차례 밝혔으나, 남북 적십자 회담 등을 통해 다룰 수 있는 이산가족 등의 문제를 역사적인 평양회담에서 다루는 것은 어느모로 보나 격에 맞지 않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북에서는 칠천만 민족의 열망에 맞게 평화적 통일을 향한 의미있는 회담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그 결과 5월 18일 준비회의에서는 ‘역사적인 7.4 남북공동성명에서 천명된 조국통일 3대 원칙을 재확인하고 민족의 화해와 단합, 교류와 협력, 평화와 통일을 실현하는 문제’로 포괄적인 의제의 설정에 합의하게 되었다. 평양 회담의 의제 설정과 관련하여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이라는 조국통일 3대 원칙을 재확인하고 그 위에서 평화통일의 문제를 논의한다고 밝힘으로써 그동안 한총련과 범민련 등 민간통일운동진영이 줄기차게 제기해 온 통일운동의 3원칙이 이제는 국가보안법으로 처벌받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진 것도 중요한 성과라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로 평양회담의 성사에 대해 청와대 측은 지난 2월부터 남북 사이에 수차례의 비밀접촉이 있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정부의 공식발표일 뿐이고 평양회담의 성사와 관련해 가장 주요하고도 폭넓은 활동을 한 것은 국가정보원이었다. 국가정보원은 특성상 미국의 CIA의 직접 지시가 없는 한 이처럼 주요한 정치공작을 독자적으로 전개하는 것이 구조적으로 불가능하게 되어 있다. 따라서 이번 평양회담을 성사시킨 주요한 힘은 남측의 의지가 아니라 CIA였다고 하는 것이 옳다. 평양회담은 남측의 의지가 아니라 동북아에서의 주도권을 잃어버리고 싶지 않은 ‘미국의 불가피한 선택’이었던 것이다.

끝으로 ‘미국의 불가피한 선택’을 이끌어낸 힘은 무엇일까? 지난 해 미 의회에 제출된 페리 보고서(미국의 대한반도 정책 전반에 대해 총화한 글로써 미국의 대한반도 정책 방향을 거의 결정짓고 있다)에는 ‘북에 대한 전복이나, 중장기적 계획속에서의 개혁을 통한 변화 유도’등 현재의 북을 인정하지 않는 어떤 정책도 성공할 가능성이 희박하며, 미국의 대북정책은 현재의 북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뿐만 아니라 94년의 제네바 합의에 따라 미국과 북은 2003년까지 관계를 정상화해야 한다. 북-미간의 관계가 정상화된다는 것은 미국이 한반도에 존재할 명분을 잃어버리는 것이며, 이후 한반도는 급속히 통일의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 것임은 누구나 쉽게 예측할 수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미국은 북을 인정하는 선에서 한반도에서 지금까지 자신들이 누렸던 지위를 유지할 필요성이 절박한 과제로 대두되었던 것이다. 이에 따라 미국은 한반도의 평화적 공존 정책을 추구하게 되었고, 평양회담은 이같은 미국의 필요에 의해 성사되게 되었다.

평양회담은 한반도의 평화공존체제를 추구하는 세력과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을 추구하는 세력간의 격렬한 투쟁의 장이다. 이 투쟁은 경제적 문제가 아니라 정치군사적 문제이다. 평양회담을 통해 남과 북의 이산가족이 만나고 자유롭게 왕래하는 것도 물론 의미있는 일이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정치군사적 측면에서 7천만 민족의 오랜 염원인 평화통일의 전기를 마련하는 것이다. 평양회담을 계기로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의 변화는 급류를 탈 가능성이 매우 높다. 급변하는 정세가 통일로 달려갈지 분단의 고착화로 이어질지는 전적으로 통일을 향한 우리 민족의 의지에 달려있다는 사실을 되새길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