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텍 포지셔닝 - 연구
포스텍 포지셔닝 -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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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5.10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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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철학자 빌렘 플루서는 디지털 시대에 텍스트의 신성함을 고집하는 인문학 연구자들의 집단은 중세의 수도원과 비슷해질 것이라 말했다. 세속에 물들지 않고 인문학적 성찰을 계속해 나아가며 텍스트를 기반으로 하는 지식 학문공동체는 필요하다. 하지만 이러한 ‘영광’을 누리는 연구집단의 사회적 수요는 점점 작아질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자연과학 및 공학에서도 예외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포스텍의 연구 방향의 포지셔닝에 대해서는 교내 구성원들의 의견이 엇갈린다. 그 스펙트럼을 살펴보자면 순수학문 연구 위주로 소규모 집중해야 한다는 포지셔닝에서부터 다양한 학문 및 산업화 모델로의 내실과 크기를 모두 늘려나가야 한다는 포지셔닝으로 나눠진다. 소규모 순수학문으로 포지셔닝 해야 한다는 의견의 대표적인 예가 수학을 비롯한 몇몇 연구 분야를 집중 육성해서 필즈상 혹은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해 포스텍이 성공사례가 되도록 하자는 것이다. 다른 방향으로의 포지셔닝은 학교의 크기를 늘리는 의견을 흔히 동반하게 되는데 의과대학을 포함한 의공학 분야 진출 혹은 더 나아가 경제, 경영 분야로의 확장을 포함하기도 한다. 창업 및 산업화 모델로의 촉진은 반드시 확장적인 포지셔닝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순수학문의 소수 육성과는 일부 배치되는 면이 있다.

이제까지의 포스텍 연구의 포지셔닝에 대하여 살펴보자면 결과적으로 순수학문 쪽에 조금 더 가까웠다고 본다. 이러한 포지셔닝은 많은 성공적인 면이 있었으나, 타 대학 대비 순수학문에서의 비교우위를 넘어선 포지셔닝이 가능할 정도의 차별성을 유지하는 데 요구되는 비용과 지속 가능성에 대한 고민이 끊이지 않고 있다. 포스텍의 연구는 단연 국내 최고의 수준이지만 세계 최고와는 아직 거리가 있다. 그 거리가 멀지는 않지만 단기간에 좁히거나 따라잡기에 쉽지 않은 거리이기도 하다. 현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파격적인 연구지원과 더불어 해외 최고 수준의 연구기관처럼 우수한 박사후연구원들을 쉽게 유치하여 캠퍼스에 넘쳐날 수 있는 환경이 돼야 한다. 이러한 환경조성을 위해서는 긴 기다림과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상대적으로 창업 및 산업화 모델과 결합한 확장형 모델은 지속 가능성에 대한 대안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모델을 현실화하기에는 무척 많은 난관이 있다. 개인적으로 보기에 가장 큰 문제는 창업가 정신의 부재이다. 학생들에게 말로써만 창업가 정신을 그리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모험정신을 불어 넣을 수 없다. 학생들이 가지고 있는 불안감은 생존본능에 가까우며, 사회가 오랜 시간을 통해 부모세대와 학생세대를 동시에 교육한 결과이다. 학생들에게 창업가 정신을 불어 넣으려면 그에 걸맞은 체계적인 시스템과 전폭적인 재정적 지원이 필요할 것이다. 최근에 도입된 ‘하계 사회경험 프로그램 (Summer Experience in Society)’을 더욱 발전적으로 시행하여 프로젝트형 학제들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프로그램을 하계뿐만 아니라 특수학기제 운용으로의 확장해 글로벌 산학연계 및 창업 프로그램으로 넓혀나가야 할 것이다.

학교에서 개발한 기술을 기반으로 창업한 많은 기업이 성공적인 면모를 과시하고 있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기술사업화를 위해 포항의 지역적 한계를 뛰어넘어 ‘강남 포스텍창업보육센터’와 ‘판교 포스텍 R&BD 사무소’를 포함한 일련의 확장 또한 매우 긍정적인 신호이다. 하지만, 일부 교수 창업의 경우 창업가 정신이 부족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갖게 된다. 이러한 교수 창업 기업에 대해서는 학교 및 재단으로부터의 파격적인 지원이 필요한 동시에, 테뉴어 제도처럼 단계별 평가를 받을 필요가 있다고 본다. 많은 기업이 생기기만 하고 상당수 흐지부지되기보다는 실패한 기업들은 제때 정리하면서 그 교훈을 체계적으로 남겨둘 필요가 있다. 창업이라는 것이, 끓는 물에서 끊임없이 생겨나는 기포들처럼 아이디어에서 출발해 생성되고 시장과 시대와 부딪쳐 상당수 소멸을 반복하고 또한, 그 일부는 큰 성공으로 자라나는 건강한 생태계가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순수학문으로의 포지셔닝, 확장형 모델, 그리고 창업 및 산업화 모델들이 유일한 연구의 포지셔닝은 아닐 것이다. 또한, 그중 하나만을 선택해야 하는 흑백논리 또한 아닐 것이며 하나의 포지셔닝이 다른 포지셔닝을 촉발할 수도 있다. 포스텍의 연구는 다른 대학과 비교해 무엇이 다른가? 무엇이 달라야 하는가? 즉, 포스텍 연구의 포지셔닝은 무엇인가? 가치창출대학의 기치에 맞춰 포스텍 연구의 포지셔닝을 위한 교내 구성원들의 지혜가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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