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올림픽과 정치] 현대 외교의 중심 분야로 자리잡은 스포츠 외교
[시론-올림픽과 정치] 현대 외교의 중심 분야로 자리잡은 스포츠 외교
  • 최연구 / 인문사회학부 대우강사
  • 승인 2000.10.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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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15일부터 17일간 떠들석하게 치루어졌던 새천년 첫올림픽 대회가 막을 내렸다. 우리나라가 저조한 성적을 낸데는 다소 아쉬움이 남지만, 어쨌든 시드니 올림픽에는 200개 국가(199개의 IOC 회원국가 전체와 동티모르)가 참여해 역대 올림픽사상 참가국 최다기록을 세웠다. 또한 이번에 남북선수단이 한반도 깃발을 앞세우고 동시 입장했기에 우리로서도 의미있는 올림픽으로 기록될 만하다.

흔히 스포츠는 정신과 육체의 조화를 추구하는 건전한 경쟁이라고 한다. 정정당당히 겨루고, 지더라도 깨끗이 승복하는 스포츠맨십을 통해 세계 모든 국가간의 친선과 평화를 도모하고자 만들어진 것이 바로 근대올림픽이다.

주지하다시피 올림픽의 기원은 고대 그리스 제전 경기의 하나인 올림피아제이다. 희랍체육에 매료되었던 프랑스의 쿠베르탱 남작의 제창으로 그리스의 아테네에서 제1회 올림픽 대회가 개최되었던 것이 1896년이니, 근대올림픽도 이제 1세기 이상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쿠베르탱은 1894년 IOC를 창설했고, 전세계 청년의 평화의 전당으로서 올림픽을 4년마다 정기적으로 열도록 했다. IOC는 모든 나라에 올림픽 참가를 권유하고, 또 종교겴适푳정치에 의한 차별대우를 금지했다.

“인생에 있어 성공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 아니라 단지 최선을 다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과 같이, 올림픽 경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참가하는 것이다. 즉 이기고 지는 것을 떠나 잘 싸우면 되는 것이다.” 올림픽 개막식때 전광판에 나타나는 올림픽 강령의 한 귀절이다. 올림픽의 이상은 스포츠에 의한 인간의 완성과 경기를 통한 국제평화의 증진이라고 말한다. 때문에 올림픽의 표어도 “보다 빠르게(Citius), 보다 높게(Altius), 보다 강하게(Fortius)”라고 되어 있다. 순수한 체육행사이니만큼 올림픽 경기는 순수한 이념과 목적을 추구해야 하고 정치성을 탈피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정치논리에 좌우되는 스포츠 정신

하지만 스포츠가 비정치적인 행위라는 것은 현실과 다소 동떨어진 이야기다. 역대 올림픽역사를 살펴보면 대부분의 올림픽이 사실은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선전도구로 악용되어 왔거나 아니면 적어도 정치논리로부터도 자유롭지는 못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제1, 2차 세계대전으로 올림픽대회는 3번이나 중단되었고, 최근에는 올림픽이 국가 간의 국력 과시의 전시장으로 변하면서 프로선수까지 동원되어 과열경쟁으로 치닫고 있다. 제4회 런던대회(1908년)는 보어 전쟁에서 패배한 영국이 국가권위의 회복과 외교적 고립의 탈피를 노리면서 의도적으로 유치한 것이며, 제11회 베를린대회(1936년)의 경우는 나치즘 선전의 이데올로기적 도구로 이용되었다. 2차대전 종전후 첫개최된 1948년의 제14회 런던대회에서는 IOC가 전범국가 독일·일본에 대한 정치적 제재를 가해 이들 국가의 참가를 불허했다. 이것만 보더라도 올림픽개최가 국제정치라는 틀의 바깥에 놓여있지는 않음을 알 수 있다.

1956년 제16회 멜버른 대회때는 서유럽국가들이 소련의 헝가리 침공에 대한 항의로 보이콧을 시도했고, 제19회 멕시코 올림픽때에는 아프리카 국가들이 아파르트헤이트라는 인종차별정책을 행해온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참가한다는 이유로 올림픽대회를 방해한 바 있다. 제21회 몬트리올대회때는 주최국 캐나다의 친중국정책때문에 자유중국의 국호 ROC(Re public of China)와 국기의 사용을 금지시키는 바람에 자유중국이 결국 불참한 사태가 벌어졌고, 또한 34개국가가 남아프리카공화국에 럭비팀을 파견한 뉴질랜드를 IOC에서 축출하라고 요구했다가 IOC의 거부로 좌절되자 참가를 보이콧하였다. 제22회 모스크바대회는 처음으로 공산권에서 열린 올림픽대회였지만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문제삼아 미국을 비롯한 서방 65개국가가 불참함으로써 결국 반쪽만의 올림픽이 되었다. 올림픽에서의 냉전은 4년후에 다시 한번 반복되었다. 제23회 로스앤젤레스 대회때는 22회 대회에 대한 반발로 소련, 북한을 비롯한 동구권 14개국이 보이콧하였다.

국제적 냉전이 종식된 후 치러진 제25회 바르셀로나대회에 이르러서야 사상 처음으로 보이콧 없는 올림픽대회가 열렸다. 이렇게 역대올림픽의 역사는 올림픽이 사실은 정치논리에 의해 지배되어왔음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스포츠가 비정치적인 순수한 경쟁이라는 생각은 현대 국제정치 무대에서는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 스포츠를 통한 외교, 스포츠를 통한 화해 등의 방식으로 스포츠는 오히려 정치의 첨병역할을 해왔다. 올림픽을 유치한 횟수는 이미 국력을 반영하고 있다. 미국은 20세기에 4번이나 대회를 유치해 20세기 최강대국임을 입증했고, 프랑스, 영국, 독일 등 전통적인 유럽강대국은 각각 두 번씩 개최를 했다. 이번 시드니 올림픽 개최 결정때에도 사실은 국제정치무대의 역관계가 크게 작용했었다. 새천년 첫 올림픽 개최지 후보로 가장 유력했던 도시는 북경이었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국가들이 광범하게 북경을 밀었지만 영국이 영연방국가들을 대거 동원해 영연방식구인 호주의 시드니를 지지함으로써 힘의 균형이 깨졌었던 것이다. 개최국선정에서부터 스포츠 정신은 국제정치역학관계의 노예가 되고 있는 것이다.


남북한 동시입장 통일 향한 큰 걸음 기대

현대 외교의 형태를 크게 둘로 나누어보면 정적인 외교와 동적인 외교로 나눌수 있다. 정적인 외교란 고전적인 외교로서 협상 또는 교섭의 수단, 기술 등을 말하는 것이고, 동적인 외교란 교섭이나 협상을 뛰어넘는 좀더 고도의 정치적 의미를 띤 행위를 가리킨다. 북방외교, 등거리외교, 실리외교 등이 모두 동적인 외교인데 스포츠 외교 또한 현대외교의 주요한 수단이다. 데땅트 시대를 열었던 미중관계정상화의 시작이 핑퐁외교였음은 스포츠가 외교의 기술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번 시드니 올림픽에서 남북선수단의 동시입장이 단순한 스포츠정신이 아니라 민족화해라는 상징적 의미를 가진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한때 독재정권의 3S정책(Sports, Sex, Screen)은 스포츠를 통해 대중의 정치적 무관심을 조장했지만, 사실 현대외교분야에서 스포츠외교만한 효자도 드물다. 스포츠가 극단적으로 정치의 노예가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겠지만 스포츠가 정치발전과 평화에 기여하는 것을 막을 이유는 굳이 없을 것이다. 스포츠외교를 대외관계개선의 수단으로 백분 활용한다면, 그리고 우리의 경우 남북체육교류를 민족화해의 발단으로 삼는다면, 스포츠는 나름대로의 정치적 역할을 할수 있다. 스포츠가 정치논리의 지배를 받더라도 궁극적으로 평화를 지향한다면 쿠베르탱의 올림픽정신에 대한 명예훼손은 결코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