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TO 뉴라운드와 농업의 회생대책
WTO 뉴라운드와 농업의 회생대책
  • 장상환 / 경상대 경제학과 교수, 민주노동당 정책위원
  • 승인 2001.12.05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두터운 농업보호정책과 농협 민주화만이 농업 살리는 길
지난 11월 9일부터 13일까지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WTO 제 4차 각료회의에서 뉴라운드가 출범하였다. 각료 선언문 가운데 농업부문은 ‘시장접근의 실질적 개선(Substantial improvements in market access), 수출보조금의 점진적 폐지를 목표로 한 감축(Reductions of, with a view to phasing out, all forms of export subsidies), 무역 왜곡적 국내 보조의 실질적 감축(Substantial reductions in trade distorting domestic support)’ 등이 주된 내용이다.

이에 따라 농산물 수입개방 확대, 국내 보조금의 축소가 불가피해졌다. 정부는 농업분야에서 2004년 쌀 시장 개방협상 이전인 2003년 3월 31일까지 보조금과 관세감축 등에 대한 세부원칙을 결정해야 한다. 참깨, 콩, 고추 등 현재의 고율 관세 품목의 관세를 인하하는 문제와 국내 보조의 90%를 차지하고 있는 쌀 등의 보조금 감축에 관해 논란이 클 것으로 보인다. 한국 농업을 위하여 뉴라운드 농업분야 선언문에서 활용할 수 있는 부분은 세 가지 정도이다. 첫째, 선언문은 무역왜곡적인 국내 보조금만 실질적으로 감축하도록 하고 있다. 따라서 무역을 왜곡하지 않는, 즉 세계농산물시장의 과잉을 유발하는 것이 아니면 감축하지 않아도 되고 새로 도입해도 된다. 허용대상보조금(Green box)인 여러 형태의 직접 지불제가 여기에 해당한다. 둘째, 선언문은 ‘개발도상국에 대한 특별하고 차등적인 대우가 협상의 모든 요소에 대한 본질적인 부분이 되고 개발도상국이 식량안보와 농촌개발을 포함한 자국의 필요성을 효과적으로 달성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데 동의’하고 있다. 과거 우루과이 라운드에서 개도국 우대가 보조금의 감축기간과 감축 정도에서 50% 우대(advantage)에 그친 것에 대한 개도국들의 불만을 수용한 것이다. 셋째, 선언문은 ‘비교역적 관심사항에 주목하고, 농업협정에 규정된 대로 비교역적 관심사항이 고려되어야 함을 확인’하고 있다. 수출국들은 비교역적 고려사항이더라도 ‘교역을 왜곡하지 않는 것에 한정’ 등의 조건을 부과하려 했으나 한국 등 수입국이 조건없이 명시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하여 관철된 것이다.

WTO 뉴라운드 농업 협상은 이제 시작

한국은 개발도상국이면서 식량순수입국이라는 이중적으로 불리한 특수성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향후 뉴라운드 협상과정에서 이 두 번째와 세 번째 문구를 잘 활용해야 할 것이다. 다른 개발도상국과 연대하여 식량안보와 농가소득 증대를 위해 국내 보조금 감축을 유예하고 오히려 증가시킬 수 있도록 협상에 임해야 한다. 그리고 다른 식량순수입국들과 연대하여, 대량 식량수입국의 약점을 강조하여, 예컨대 ‘식량자급률을 현재의 30%에서 40%로 올릴 때까지 주요 곡물, 즉 쌀의 수입개방을 유예’하도록 하는 등의 적극적 대응이 필요하다. WTO 뉴라운드 농업협상은 이제 시작인 것이다.

김영삼정부는 UR협상 이후 농업정책 방향을 잘못 잡은 결과 농업을 파탄으로 빠뜨렸다. 농어촌구조개선자금(1992-98) 42조원과 농어촌발전특별세(1995-2004) 15조원, 합계 57조원이라는 거액을 투입했음에도 불구하고 ‘시장지향적인 개방농정’으로 식량자급률은 30% 이하로 하락하였으며 농산물가격 하락, 농가부채 증가 등으로 농촌경제의 몰락을 가져왔다. 농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의 뒷받침이 없는 기계화, 시설투자 등 구조개선사업은 농민들의 농가부채만 늘렸다. 이번 뉴라운드에 대한 대응정책수립에 있어서 이러한 잘못을 반복해서는 안될 것이다.

뉴라운드가 전개되는 속에서 우리 농업을 지키려면 대외적으로는 이와 같은 공세적인 협상을 추진해나가면서, 안으로는 우리 국민들이 농업의 가치를 잘 인식하여 농업보호를 위한 정책에 동의하도록 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농업은 국민들의 식량안보를 책임지는 중요 산업이라는 점이 분명히 인식되어야 한다. 세계 식량수급의 장기적 전망은 부족의 쪽이다. 13억 인구를 안고 있는 중국의 공업화가 진전되면 한국의 경험에서 보듯이 소득 향상으로 축산물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 대량의 식량을 수입하게 될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만약 세계적인 흉작이 온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더욱이 현재 세계곡물 수출량의 약 50%를 미국이 차지하고 있으며, 세계 곡물시장의 약 80%를 소수의 카길, 몬산토 등 곡물 다국적기업이 지배하고 있다. 또한 최근 들어 광우병과 구제역, 다이옥신 돼지고기, GMO(유전자조작 농산물) 등 식품의 안전성 문제 또한 식량안보의 새로운 쟁점이 되고 있다.

농업의 환경보전기능도 엄청나다. 현재 115만ha에 달하는 논 면적은 댐 6개 이상의 홍수조절기능을 가지고 있으며 지하수 담수기능, 공화정화기능, 수질정화기능, 폐기물처리기능, 토양유실경감기능 등 연간 약 10조원에 가까운 비경제적 가치를 생산한다. 그밖에 농업은 지역사회의 유지, 자연경관의 제공 등 다원적 기능을 통해 사회에 기여한다.


그릇된 정책이 농업을 파탄으로 몰고간다
이러한 농업의 중요성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 제고를 전제로 농업을 회생시키는 데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 하나는 정부의 두터운 농업보호정책이고, 또 하나는 진정한 농협 민주화 등으로 농민의 집단적 단결을 높이는 것이다.

첫째, 정부는 농업의 유지, 재생산을 위해 논농업 직접지불제의 확대와 다양한 융자제도의 도입 등 농가소득보장정책을 시행해야 한다. 이번에 양곡유통위원회가 다른 대비책도 제시하지 않은 채 쌀수매가 인하를 정부에 건의한 것은 위험하다. 인하하더라도 다양한 직접지불제로 실제 농가소득은 저하하지 않도록 보장해줘야 한다. 그리고 식품안전법의 제정과 학교급식법의 개정 등을 통해 쌀을 비롯한 국내 농산물 소비의 양적겵珦 확대를 꾀해야 하며, 미국의 푸드스탬프 제도와 같은 정책의 도입으로 빈민구호와 식량소비를 동시에 촉진하는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농민들도 친환경농업 확대 등 농산물의 품질을 높임으로써 국내 농업이 국민들의 사랑을 받도록 노력해야 한다.

둘째, 현재 농림부 관료와 농협 임직원들의 수중에 장악되어 있는 농협을 주인인 농민에게 돌려주어 농민의 요구와 의사에 따라 민주적으로 운영되도록 해야 한다. 네델란드와 덴마크 등 유럽 국가의 농업이 강한 것은 농민들이 협동조합을 통해 강력하게 단결해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1999년에 협동조합 개혁이 추진되었지만 농겷璿 중앙회의 단순통합으로 허구적으로 끝나버렸다. 1999년말 농산물가격 안정법 개정으로 생산자조직 주도로 생산조절, 출하 조절을 통하여 농산물가격을 안정하고 보장할 수 있는 제도인 ‘유통명령제’가 도입되었다. 그러나 농협이 농민들의 신뢰를 얻지 못하고 유통에서 상인에 대항하는 힘을 가지지 못하니까 시행되지 못한 채 사장되어 있는 실정이다. 한국 농업 발전의 장애물은 수입개방을 강요하는 외국 농산물 수출국만이 아니다. 진정한 농협 개혁을 거부하고 있는 관료들과 농협직원이라는 기득권 세력도 농업발전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뉴라운드 출범으로 닥친 위기를 배경으로 진정한 협동조합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을 분리시키고, 농협이 유통분야에서 농산물가격 안정과 보장역할을 제대로 하도록 해야 한다. 진정한 협동조합개혁은 당면한 농정의 최대과제이다.
물론 이러한 정부의 농업보호의 확대와 협동조합 개혁은 정치적 힘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WTO 성립후 1995년부터 유럽 각국에서 좌파정당이 집권한 것이 이번 회의에서 미국의 전횡을 견제할 수 있는 힘이 되었다. 민주적 농민운동을 전개해 온 농민들은 외환위기 후 빈익빈 부익부 현상 등을 배경으로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는 노동자 중심의 진보정당과 민주적 시민사회단체들이 농민들의 투쟁에 적극 연대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