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로 돌아가자
기초로 돌아가자
  • 승인 2000.12.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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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천년의 시작에 즈음하여 미국은 대통령 과학기술자문회의의 과학기술보고서에서 “우리 역사에서 그 어느 때보다 오늘날 경제의 경쟁력, 가족의 건강, 삶의 질이 과학기술에 달려 있다”고 강조하며 과학기술 연구개발에 집중투자하고 있다. 미국의 연구개발 투자비는 이미 전세계 연구개발투자비의 50%에 이르고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비도 지난 5년 사이에 80%이상 성장하였다. 미국은 올해에도 과학분야에서 미국의 주도적 역할을 확대하기 위해서 약 70억 달러의 예산 투입이 수반되는 과학기술법안을 통과시켰다. 이 예산은 주 수혜 기관인 국립과학재단 등을 통해 오랜 기간의 연구가 요구되는 기초과학기술연구를 집중적으로 지원하여 단기 수익에 치중하는 민간 부문의 연구를 보완할 계획이다. 특히 미국의 최대자산은 머리에 있으며 세계특허의 반 이상이 미국에 의하여 주도되고 지적소유권 산업이 미국 최대의 수출분야로 대두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1997년 경제공황에도 불구하고 “과학기술혁신 5개년 계획” 을 세우고 오는 2002년까지 정부 예산 가운데 과학기술 연구개발 예산을 5%로 확대하는 등 과학기술 투자를 지속적으로 늘려가고 있다. 이 계획은 총 22조원의 예산을 들여 중점국가연구개발, 기초연구진흥, 인력양성 등 10대 부문으로 나누어 추진되고 있으며 2002년까지 국가 종합과학기술력을 세계 7위권으로 도약시키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또 이 계획에 따르면 연구인력은 19만2천명으로 늘어나고 교수인력이 충원돼 2005년까지 교수1인당 학생비율이 1대 20으로 크게 낮아지게 되어 있다. 한편 기초연구의 비중을 전체 연구개발의 20%로 끌어올려 선진국이 이전을 꺼리는 원천기술을 확보해 나가기로 했다.

그러나 이러한 과학기술 육성 계획은 아직 장밋빛 꿈에 지나지 않고 있다. 과학기술분야의 SCI 국제학술지에 게재된 논문 지표는 아직 세계 16위권에 머무르고 있으며 특히 교수인력 증원 등 인력분야의 계획은 그 달성이 요원한 실정이다. 또한 최근의 서울대 자연대 대학원 미달사태는 일반 대학이 이미 체감하고 있는 뿌리깊은 기초과학의 위기를 세인들이 인식하게 되는 한 계기가 되었다.

최근 교육부의 두뇌한국 21, 과기부의 창의과제 등 경쟁과 집중이라는 대 원칙 하에 국제 경쟁력을 갖추었다고 판단되는 소수의 연구자 또는 대학들에게 연구비가 집중 지원되며 연구비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의 심화를 낳고 있다. 특히 이러한 지원방식은 새로 한국에 뿌리내린 지방의 많은 젊은 연구자들을 소외시키고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이는 작금의 고학력 인플레와 박사실업자 증대, IMF한파 이후 학생들의 기초과학 기피와 벤처진출 현상과 맞물려 과학기술 기초인력 하부구조의 붕괴를 조장하고 있다.

기초 과학기술의 하부구조는 그 속성상 한번 붕괴되면 다시 쉽게 재건할 수 없다. 오직 정부, 기업, 대학 및 연구소의 꾸준하고 일관된 투자와 지원만이 과학기술의 수준 향상을 할 수 있다. 기초 과학기술의 특성은 그 연구가 나중에 어떤 파급효과를 가져올지 예상할 수 없고, 창의적, 돌연변이적 연구결과를 통해서 과학기술의 새로운 돌파구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아직 정부, 기업 등 연구지원기관들이 점점 더 당장 써먹을 수 있는 연구의 지원에만 치중하고 대학 및 연구소도 이에 부응할 수 밖에 없는 작금의 현실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기초과학은 느림의 미학에 더 어울리는 학문이다. 급변하는 시대적 흐름 속에서 눈 앞의 작은 이익을 위해 기초과학을 희생하는 우를 범하면 다시 회생시키기가 매우 어렵다. 넓게는 과학문화 창달을 통해 기초과학기술의 중요성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혁신적인 과학기술 지원계획이 수립, 구현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나가야 할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과학기술의 핵심 기초인력을 양성하는 것으로 이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반드시 지속적으로 해나가야 할 과제이다. 미국에서 학위를 한 한국인 과학기술자의 경우 귀국하는 비율이 가장 높다고 하며 이는 다른 나라에서 학위를 한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또한 최근 국내에서도 과학기술 분야의 박사학위자들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이전국의 대학 및 연구기관에 산재해 있거나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는 이러한 젊은 과학기술 연구인력을 발굴하고 이들을 폭넓게 지원하여 과학기술 기초 학문의 핵심인력으로 대거 양성하는 것은 중요한 과제이다.

최근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 이후 다음 한국인의 노벨상 수상은 어느 분야에서 나올 것인가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고 있다. 과학분야의 노벨상 수상자가 포항공대의 빈 좌대를 채우게 되려면 올림픽 메달따기식의 소수에 대한 집중지원을 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앞으로 다가올 국가간 무한 경쟁을 대비하기 위하여 임진란을 예비한 율곡 이이의 “10만 양병론”을 교훈으로 기초학문의 차세대를 담당할 과학기술 핵심인력 10만을 양성하여야 한다. 이제 바빠진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기초로 돌아가자. 그리고 지금부터 멀리 내다보고 과학기술의 인력 하부구조를 탄탄하게 쌓아나갈 방안을 마련하는 데 최선을 다하자. 이 것이 멀어보이지만 21세기 과학기술입국의 첩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