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이 꺼지지 않는 지식의 전당
불이 꺼지지 않는 지식의 전당
  • 김희진 기자
  • 승인 2018.02.09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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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연말, 우리대학에서 JTBC의 한 예능 프로그램인 ‘밤도깨비’ 촬영이 있었다. 그 후 방송 예고편에서는 우리대학을 ‘불이 꺼지지 않는 지식의 전당’이라는 자막과 함께 소개했다. 대다수 사람은 흔히 대학의 이미지를 떠올릴 때 지식의 전당이라는 수식어를 함께 끄집어낸다. 불이 꺼지지 않는 지식의 전당, 그리고 그 불을 밝히는 지식인들, 과연 현재의 대학교에 다니는 우리에게도 상응하는 수식어일까.
대학을 뜻하는 라틴어인 우니베르시타스(Universitas)는 ‘전체’, ‘모두’라는 뜻으로, 중세 대학은 지적인 욕망을 가진 학생과 교사가 자신들의 권리와 이익을 지키기 위해 만든 ‘교육 길드’로부터 기원 된다. 동양의 대학 개념은 소학과 대칭되는 것으로, 대인의 학문, 즉 덕을 갖춘 사람의 학문을 가리키는 말에서부터 유래됐다. 여기에서 학문은 학리적 탐구뿐만이 아닌 실천궁행(實踐躬行), 즉 실제로 몸소 이행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대학은 독립적인 사회로 인정받아왔다. 그 속에서 학생들은 사회의 구속에서 벗어나 다른 어떤 곳에서보다 자유롭게 진리를 탐구할 수 있었고, 권력 집단에 대해 비판할 수 있게 됐다. 대학의 이런 성격 덕분에 우리나라 1970~80년대 대학생들은 사회의 부조리한 권력들과 맞서 싸우며 민주화에 크게 기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 대학은 과거 대학이 띠고 있는 성격과는 조금 달라졌다고 생각한다. 어떤 대학은 학생들의 학문 탐구보다 취업에 더 관심을 두고, 기초학문보다는 기능적이고 기업에 적합한 전문적인 지식을 높게 평가한다. 이런 현상을 보며 일각에서는 대학을 더 나은 직장을 얻기 위한 ‘직업 훈련소’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물론 교육학자 에이브러헴 플렉스너의 말처럼 이제 더 이상 대학은 사회 외부에만 존재하지 않으며 사회가 요구하는 것을 따르는 시대가 온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국의 사회학자 프랭크 푸레디의 비판처럼, 오늘날의 대학이 지적 자극과 도전 없이 지식과 문화를 자본주의 사회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취급하기 때문에, 본래 대학이 지닌 사회 비판적 기능과 지식 사회의 성격이 사라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봐야 할 때라고 말하고 싶다.
2015 OECD 교육지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고교 졸업생의 대학진학률은 68%로, OECD 평균 41%보다 훨씬 높은 수치로 1위를 차지했다. 현재 우리나라 절반 이상의 학생들이 대학교육을 받고 있지만, 우리는 모든 대학생을 지식인이라고 부르진 않는다. 필자가 생각하는 지식인이란, 자신이 알고 있는 것과 살고 있는 사회에 끊임없는 의심을 하고 스스로 질문을 던지며 마침내 진리를 탐구하고 권력 세력에 비판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실천궁행하는 사람이다. 대학생들이 이런 지식인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대학이 진리 탐구의 장과 성찰을 통한 지식인 양성이라는 본연의 역할을 먼저 수행해야 한다. 대학을 다니는 학생들에게 지식인이라는 칭호가, 대학 앞에 붙는 지식의 전당이라는 수식어가 부끄럽지 않도록 대학 구성원 모두 대학의 본연에 대해 숙고해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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