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능초분자연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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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영호 / 지능초분자연구단 연구
  • 승인 2008.05.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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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능형 초분자에 기초한 나노 및 바이오 기술 개발
▲ <그림 4> 쿠커비투[7]릴과 페로센 유도체의 초분자 복합체의 X-선 결정 구조.
분자 사이의 상호작용을 통해 둘 또는 그 이상의 분자가 특정한 구조와 성질을 갖는 집합체를 형성할 때 이를 초분자(supramolecules)라고 한다. 초분자는 그 자체가 지능적인 경로를 통해 형성된 나노크기의 구조체가 될 수 있으며, 또한 이를 기반으로 새로운 지능형 나노 구조체를 고안하거나 나노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러한 이유로 최근 주목받고 있는 초분자화학(supramolecular chemistry)은 생체모사적 관점에서 바이오기술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에, 초분자화학에 기초하여 나노와 바이오 응용 기술을 개발하기 위한 노력이 세계적으로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초분자 관련 선도연구자들은 그들이 해왔던 기존의 연구를 심화·발전시켜 새로운 지능형 초분자를 개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화학과 김기문 교수가 이끌고 있는 지능초분자연구단은 쿠커비투릴(cucurbituril, <그림 1>)이라고 하는 인공수용체를 기초로 한 초분자화학의 한 분야를 선도해가고 있으며, 이를 기반으로 기능성을 갖는 새로운 지능형 초분자를 개발하고 있다.

쿠커비투릴은 1990년 중반부터 ‘분자목걸이’'분자스위치' 같은 나노미터 크기의 초분자체를 합성하는 단위체로서 그 명성을 얻기 시작했고, 2000년 쿠커비투릴 동족체 합성과 2003년 직접치환에 의한 유도체 합성법이 연구단에 의해 개발되면서 인공이온채널, 리포좀, 폴리머 나노캡슐의 제조와 이를 이용한 물질 분리, 센서, 표적지향형 약물전달법 등 나노와 바이오 기술 개발에 그 기능과 용도를 넓혀 왔다.

그럼, 지능초분자연구단이 쿠커비투릴에 기초한 초분자화학을 나노와 바이오 기술에 어떻게 적용하는지 구체적인 예를 통해 살펴보기로 하자. 초분자화학의 중심 개념은 분자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초분자를 형성하는 가역적인 과정인 ‘자기조립(self-assembly)’과, 분자들이 상보적인 상대방을 스스로 알아보고 짝을 짓는 ‘분자인지(molecular recognition)’로 요약될 수 있다. 이러한 자기조립과 분자인지가 가장 잘 적용된 대표적인 예로서 쿠커비투릴 유도체를 이용하여 고안된 표적지향성 약물전달 시스템을 들 수 있다.

최근에 합성된 양친성(amphiphilic) 쿠커비투릴 유도체는 수용액상에서의 ‘자기조립’을 통해 나노구조체인 리포좀(liposome)을 형성하는데, 흥미로운 것은 이렇게 형성된 리포좀의 표면이 쿠커비투릴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쿠커비투릴과 선택적으로 결합할 수 있는 분자를 이용하면 당류·단백질·유전자 등 다양한 표식물질을 쉽게 리포좀의 표면에 도입할 수 있고, 또한 리포좀의 표면에 다량의 리간드를 도입할 수 있기 때문에 다가효과(multivalent effect)를 나타낼 수 있다<그림 2>.

리포좀의 표면을 둘러싸고 있는 표식물질들은 세포 또는 암 표면에 나와있는 수용체들을 ‘분자인지’하여 세포나 암으로 침투해 들어갈 수 있게 된다. 예를 들면 리포좀의 표면에 비타민의 일종인 엽산을 도입하면 엽산을 인지하는 수용체가 많이 분포되어 있는 암세포에 선택적으로 침투하게 됨으로써 암세포만을 선택적으로 죽이는 표적지향형 약물전달에 응용할 수 있다. 따라서 연구단이 개발한 리포좀은 많은 리간드 스크리닝(screening)이 필요한 표적 지향성 약물/유전자 전달 물질개발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최근 지능초분자연구단은 고분자 나노캡슐을 손쉽게 만들 수 있는 획기적인 방법을 제시했다. 용액에 녹아있는 여러 개의 중합 가능한 작용기를 측면에 지닌 원판형의 단량체에 ‘자외선’을 쬐어주면 분자들이 2차원적인 면으로 연결되어 얇은 판상의 고분자 ‘조각’이 형성되고, 이 조각이 어느 크기 이상 되면 구(球) 형태를 이루려는 성질을 이용, ‘자발적으로’ 캡슐이 형성되도록 하는 방법이다<그림 3>.

다른 첨가제를 사용하거나 주형을 사용할 필요가 없는 나노캡슐 제조의 새로운 개념으로서 용매를 바꾸어주는 것만으로도 나노캡슐의 크기를 50~600nm까지 조절할 수 있다. 특히 특정 분자와 강하게 결합하는 물질을 캡슐의 재료로 사용하면 나노캡슐이 특정한 세포나 장기를 인지할 수 있도록 쉽게 변형할 수 있고, 캡슐내부에 약물뿐만 아니라 다양한 물질을 저장할 수 있기 때문에 약물전달뿐 아니라 진단에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연구단은 포피린(porphyrin)과 같이 광학적이고 전기적인 활성을 지닌 판상구조의 단분자를 이용하여 고분자 나노캡슐을 개발하고 있는데, 이러한 나노캡슐은 광역학 치료법이나 암세포 이미징, 태양전지, 유기발광소자, 유기박막 트랜지스터, 전계효과 트랜지스터 등에 광범위하게 응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쿠커비투릴 동족체는 비어있는 내부공간의 크기에 따라 다른 종류의 손님 분자를 선호하는 분자인지 능력을 보여준다. 이렇게 형성된 다양한 초분자 복합체들은 약물전달 물질 개발과 같은 바이오 관련 분야뿐 아니라 분자스위치, 분자기계의 개발과 같은 나노 기초기술에도 중요한 원리를 제공해 주었다.

최근에는 쿠커비투릴 동족체 중에서 쿠커비투[7]릴을 이용하여 지금까지 발견된 인공수용체와 리간드 복합체 중 가장 결합력이 큰 초분자 복합체를 개발하였다<그림 4>. 쿠커비투[7]릴과 페로센(ferrocene) 유도체를 결합시킨 이 초분자 복합체의 강력한 결합력(3×1015M-1)은 자연물질 중에서 가장 강한 상호작용을 일으킨다고 알려져 있는 아비딘(Avidin)-비오틴(Biotin) 복합체와 비슷한 수준이다. 바이오칩이나 바이오센서를 제작하기 위해서 지금까지 주로 아비딘-비오틴 복합체를 ‘접착제’로 사용해왔지만 이 두 물질은 단백질 같은 생분자에서 추출해야 하기 때문에 많은 비용과 시간이 든다.

쿠커비투[7]릴-페로센 복합체는 합성과 화학적 변형이 쉬워 바이오 진단 칩은 물론 바이오센서, 면역분석이나 항원 정제 등 다양한 분야에 응용될 수 있다. 응용연구의 한 예로서 연구단은 쿠커비투릴이 장착된 표면에 페로센 유도체가 도입된 글루코즈 옥시다제(glucose oxidase)를 고정하고 이 표면이 글루코즈 센서로 사용 가능함을 보고하였다.

쿠커비투릴의 동족체와 유도체의 개발과 이에 바탕을 둔 초분자화학 한 분야를 정립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지능초분자연구단은 지능형 초분자 개발을 통해 나노와 바이오기술을 창출하고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러한 연구단의 연구결과들은 초분자화학의 원리가 원하는 구조·성질 및 기능을 갖는 지능형 나노구조체를 고안·합성하는데 핵심적이고 실질적인 방법으로 사용될 수 있음을 잘 보여준다. 또한 새로운 기술의 창출을 위해 기초학문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세계적으로 나노 바이오 기술을 개발하려고 노력하는 시점에서 독보적인 기반기술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새로운 나노와 바이오 기술의 창출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원천기술을 확보한 상황에서 R&D 개발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가 이루어진다면 사업화에 의한 막대한 부가가치 창출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