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리의 위기]
얼마 전 4월 7일자 중대신문(중앙대)에 눈길을 끄는 만화가 있었다. 동아리의 몰락이라는 주제를 유머스럽게 풀어낸 것인데, 신입생 회원이 잘 들어오지 않은 작금의 세태를 반영했다. 대학생에게 동아리의 비중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은 더 이상 어제의 일이 아니다. 계속된 경기 침체와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기보다 어렵다는 취업전쟁으로 인해 이른바 ‘88만원 세대’에게는 동아리보다 당장의 토익점수나 인턴 경험, 공모전 경험이 중요한 것이다.
연세대 동아리연합회 김윤중(신학 04) 회장은 “과거 캠퍼스의 낭만보다는 성공적인 취업을 위한 스펙을 쌓는 게 요즘의 추세”라며 “예전에 비해 동아리 활동 대신 토익, 취업 준비 스터디 등을 하는 모습을 더욱 자주 보게 된다”고 했다. 다른 수도권 대학의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다음은 작년 9월 24일자 중대신문에 실린 기사.
“금융·취업 동아리는 처음 창설된 작년엔 50명 안팎이었던 회원 수가 올해 초 신입회원을 모집하면서 80명으로 급격히 늘었다. …(중략)… 지원인원이 모집인원에 비해 현저히 많기 때문에, 취업 동아리 회원들은 자기소개서나 학점이나 토익 등으로 1차 선발하고 면접을 치른다. 학내 중앙동아리 중에는 지원자가 많아 누굴 뽑아야하나 행복한 고민을 하는 동아리는 손에 꼽힌다.”
이들 취업·금융 동아리들에 대해서는 학교 차원의 지원도 있다고 한다. 반면에 활동량이 많은 사회참여 동아리나 인문세미나 동아리 등의 학술동아리들은 쇠퇴하고 있다고.
취업 준비 말고도 개인적인 취미를 목적으로 하는 동아리의 상황도 비교적 좋은 편이다. 서울대 동아리연합회 관계자는 “대중적인 취미를 다루는 동아리의 신규가입이 늘고 있다”며 “취미생활을 즐기고 배울 수 있는 공연·운동 동아리 등으로 학생들이 몰리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대학 동아리들의 상황은 어떨까?
[포스텍 동아리들]
현재 동아리연합회에 등록되어 있는 동아리는 총 55개. 1987년 17개에서 200% 이상 늘어난 셈이다. 50개 정도의 동아리 수는 10여 년간 꾸준히 유지되어 왔다. 매년 한두 개의 동아리가 제명되고, 한두 개의 동아리가 신규 등록하는 상황이다. 개교 후 1988년까지 결성된 동아리는 총 25개. 대다수가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으며 이들은 우리대학의 터줏대감 동아리로 꼽을 수 있다.
개교 이래 등록된 동아리수와 인원수를 조사해 보았다<표 참고>. 동아리 활동이 가장 활발했던 때는 1988년으로 가입률이 133%에 달했다. 최근의 추이를 보면 해마다 지속적으로 가입률이 조금씩 떨어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는 개인 스펙 쌓기에 주력하는 시대의 흐름과 이공계 장학금 커트라인의 꾸준한 상승으로 상징되는 학업 부담의 증가가 맞물려 작용했기 때문이라 추측된다. “무슨 동아리는 몇 학점”이란 우스개 소리는 동아리와 학업을 병행해야 하는 학우들의 부담을 반영한다.
2006년 자료에 의하면 우리대학의 동아리 가입률은 70%이며, 전체 학부생 중 968명이 하나 이상의 동아리에 가입해 활동하고 있어, 그래도 다른 대학에 비해서 활발한 편이다. 개교 초기 100%를 넘었다는 기록에 비추어보면 많이 낮아진 수치이긴 하지만, 동아리 가입률(단과대 동아리 제외)이 20~40% 정도인 서울권 소재 대학보다는 아직 활동이 활발한 편이다. 또한 전교생 1,300명 규모에 55개의 동아리는 전국적으로 높은 수준에 속한다.
이렇게 우리대학의 학생들이 동아리 활동에 열정을 쏟게 하는 외적 요인은 무엇일까? 일단 졸업 후의 진로가 취업보다는 대학원 진학으로 쏠린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졸업생 10명 중 6명이 대학원으로 진학하는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취업전쟁이 다른 대학 학생들처럼 바로 와 닿거나 절박하지 않다는 점이 하나의 요인일 것이다. 단적인 예로 다른 대학에서 많이 보이는 취업준비 동아리가 우리대학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른 이유로는 ‘포항공과대학교 20년사’의 내용처럼 포항이 수도권 대학에 비해 문화적으로 낙후된 환경이여서, 동아리 외에는 딱히 문화생활을 즐길 거리가 없다는 요인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동아리 활동을 통해 사람들을 만나고, 취미를 즐기고 계발하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 생각된다.
[시대와 동아리]
동아리는 또 시대상을 반영해 생기기도, 사라지기도 한다. 우리대학도 예외가 아니다. 개교 초기의 볼링 동아리 ‘Apple’과 90년대 후반 결성된 볼링 동아리 ‘Rolling stones’는 현재 동아리 명단에서 찾아볼 수 없다. 영어동아리 ‘EDS’, 시문학 동아리 ‘시내’, ‘음식문화연구회’도 과거에는 존재했지만 지금은 더 이상 찾을 수 없는 동아리.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이들에 대한 자료는 동아리 회원 명단을 제외한 곳에서는 찾을 수 없게 되었다.
영화 ‘콘택트’에 나와 많은 관심을 끌었던 아마추어 무선통신(HAM)을 하는 동아리 ‘HERMES’는 1987년에 결성되었으나, 2000년부터 동아리 명단에서 찾아볼 수 없게 된다. 지금도 학생회관 옥상에 설치되어 있는 거대 안테나는 바로 HERMES가 사용하던 것.
지난 3월 동아리연합회에서는 동아리 대표자 투표를 통해 ‘한아패(한반도의 아픔을 노래하던 노래패)’의 제명과 R&B발라드 동아리 ‘VOCES’의 신규등록을 의결했다. 한아패는 1988년 당시 사회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이 커지면서 결성된 동아리로, 특히 90년대 중후반에는 많은 학생들이 가입해 전성기를 맞았다.
90년대 한아패에서 활동했던 오재호(전자 90) 동문은 “90년대 중후반만 해도 한 학번에 20~30명이 들어와서 ‘사람이 많으니 이번 공연은 쉬어라’는 말이 있었을 정도였다”고 당시를 회상한다. 이처럼 번창했던 한아패였지만 최근 몇 년을 기점으로 그 존재가 학우들에게 희미해지는 정도에 이르렀다. 한아패의 해체와 VOCES의 등장은 ‘사회’로 대변되는 80, 90년대를 지나 ‘개인’이 중요시되는 최근의 시대관와 가치관을 반영한다.
우리의 동아리는 우리의 시대만큼이나 유동적이고 역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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