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39호 ‘일은 삶의 일부분일 뿐, 조용한 사직’을 읽고
제439호 ‘일은 삶의 일부분일 뿐, 조용한 사직’을 읽고
  • 한경찬 / 수학 21
  • 승인 2023.01.07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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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주로부터 제공되는 임금 등의 보상을 넘어선 노동을 거부하는 것을 의미하는 ‘조용한 사직’ 문화가 우리 사회에 점차 뿌리내리고 있다. 여기서 사직이란 다니고 있는 직장을 그만둔다는 표면적 의미가 아닌, 본인에게 주어지거나 요구된 업무 이상의 일을 거부하는 것을 뜻한다. 문화적 측면에서 우리나라보다 자유로운 미국에서부터 이런 트렌드가 출발해 우리나라에까지 확산하고 있다. 조용한 사직은 우리나라 MZ세대의 성향과 매우 잘 부합하는 만큼 이들을 중심으로 급속히 확산하는 모양새다. 일에 대한 우선순위가 이전 세대에 비해 낮은 데다, 과거와는 달리 열심히 노동하는 것이 항상 더 나은 삶이나 성공한 삶을 결코 보장해 주지 못한다는 생각이 만연하기에 그렇다. 이들에게 조용한 사직은 상식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MZ세대에 속한 나도 조용한 사직 현상이 본질적으로 추구하는 바에 동의한다.

물론 일을 하는 것 자체로 개인의 성취를 이룰 수 있고, 회사가 지향하는 목적과 개인의 목표가 일치하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는 계약서에 적힌 업무 이상으로 열심히 일에 몰두할 수도, 온 열정을 다해 회사를 위해 헌신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핵심은 노동자의 이런 충성심을 고용주인 회사가 강요할 수 없다는 점이다. 개인에게 맡겨진 업무를 최선을 다해 완수했다면, 이미 고용주와 노동자 사이 계약은 이행된 것이므로 그 이상의 영역은 오로지 개인의 자유에 해당한다. 계약서의 범주를 넘어서는 것을 이행하지 않았다고 고용주가 노동자에게 불이익을 주는 일체의 행위는 잘못된 것이다. 그래서 조용한 사직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설명하기 위해 ‘사직’이라는 단어가 사용된 것부터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한다. 회사와 개인 사이 약속된 계약을 충실하게 이행하는 사람을 보고 ‘사직’했다고 표현하는 사람은 그 누구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용한 사직 트렌드가 가진 단점 또한 분명하다. 앞서 언급했듯, 필요 이상의 열정을 쏟지 않는 문화를 확산시켜 회사의 조직 문화를 해치고 개인의 업무 능률을 저하할 가능성이 있다. 또 기성세대와의 세대 갈등이 심화될 여지가 분명하다. 기성세대의 경우 이런 트렌드와는 정반대로 회사에 대한 공동체 의식을 가지며 헌신적으로 일하는 경향이 뚜렷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회사의 생산성이 저하될 것이며, 결국 우리나라 산업 전반의 발전이 침체할 가능성이 있다. 이에 조용한 사직 트렌드에 대해 사람들 사이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점은 노동자가 조용한 사직 트렌드를 악용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업무에 있어 필요 이상의 헌신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곧 본인에게 맡겨진 업무와 책임을 유기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회사에서 기본적인 책임을 다하지 않는 노동자는 대학교 조별 활동에서 연락이 전혀 되지 않고, 어떤 역할도 분담받지 않으면서 결과물은 똑같이 받아 무임승차하는 조원에 비유할 수 있겠다. 이 같은 일은 다른 이의 수고와 노력을 훔치는 일이기 때문에 학교 차원에서도 엄격히 근절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처럼 ‘조용한 사직’ 또한 당사자들이 ‘무임승차’ 혹은 ‘임금 도둑’에 비유되지 않도록 그 경계를 잘 유지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