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법 시행 이후, 지금 우리 사회는?
중대재해법 시행 이후, 지금 우리 사회는?
  • 소예린, 이재현 기자
  • 승인 2022.05.02 22: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중대재해법 세부 쟁점과 각계 입장(출처: 한겨레)
▲중대재해법 세부 쟁점과 각계 입장(출처: 한겨레)

“중대 재해 감소를 위해 필요하다”, “국내 산업이 위축될 것이다” 중대 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중대재해법)을 둘러싼 노동계와 산업계 사이의 찬반 담론이 뜨겁다.

중대재해법은 안전관리가 미흡한 기업에서 일어난 산업 재해에 대해 형사책임을 물어 안전조치 의무 위반으로 발생하는 인명피해를 예방하고자 제정된 법률이다. 이는 이름과 같이 중대 재해에 대해 적용되며, 이때 중대 재해는 중대 산업 재해와 중대 시민 재해로 나뉜다. 중대 산업 재해는 업무에 관계된 △건설물 △설비 △가스 등이나 작업으로 인해 일정 기준 이상의 사망자와 부상자를 낸 재해로, 기존 ‘김용균법’이라 불리는 산업안전보건법의 산업 재해와 비슷하다. 중대 시민 재해는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많은 시민이 질병에 걸리거나 사망한 사건과 같은 시민 재해의 해결을 위해 도입한 개념이다.

중대재해법 수립 배경

중대재해법 이전에는 시민 재해에 관한 조항이 없었으며, 산업 재해에 대한 처벌을 일명 ‘김용균법’이라 불리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에서 다뤘다. 지난 2019년 12월부터 적용 시작된 김용균법은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컨베이어벨트에 껴 사망한 김용균 씨의 이름에서 명칭을 따왔다. 업체가 여러 협력사에 외주를 맡겨 현장과의 소통이 단절됐고, 위급 상황에 대처하기 힘들어진 것이 사고의 원인이다. 해당 사고를 계기로 기업의 중대한 과실로 인한 산업 재해를 처벌하고자 김용균법이 발효됐다.

그러나 김용균법은 발의된 계기였던 위험의 외주화를 방지하는 데 실효성이 없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에 더해, 지난 2020년 4월 발생한 이천 물류센터 공사장 화재 이후 중대 재해에 대한 법률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공사 현장에는 공기 단축을 위해 예정보다 두 배 많은 인력이 투입됐고, 용접 불티로 인해 순식간에 현장이 불탔다. 이때 유해·위험방지계획서상의 대피로가 존재하지 않아 많은 노동자가 대피하지 못하고 사망에 이르렀다. 해당 사고는 시민들의 분노를 사며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이에 따라 중대재해법은 지난해 1월 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고, 지난 1월 27일 시행됐다.

중대재해법 첫 입건

중대재해법 시행 이틀 뒤인 지난 1월 29일, 경기 양주시 삼표산업 채석장에서 매몰 사고가 일어났다. 고용노동부는 삼표산업 채석장 붕괴 사건을 중대재해법 첫 위반 사건으로 지정했다. 고용노동부는 “전반적인 안전 관리 부실로 추가적인 사고 발생 가능성이 상당히 큰 것으로 보인다”라며 전국 삼표산업 사업장에 대한 특별 감독을 실시했다. 그러나 삼표산업 채석장 매몰사고 발생 후 3개월이 지났지만 수사가 결론 나지 않았다. 검찰과 노동부는 “중대재해법 첫 시행인 만큼 민감한 사항이므로 신중한 수사가 이뤄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노동부는 지난 3월 31일 기준 “중대재해법 적용 사고 30여 건에 대한 수사에 착수한 상태다”라며 판례가 나오려면 시간이 더 필요할 것이라고 알렸다.

중대재해법이 시행된 지 약 3개월이 지났지만 규정이 모호하다는 지적이 계속된다. 중대재해법은 사업주나 경영책임자가 안전보건 조치 의무를 위반하고, 이에 따른 현장에서의 중대 재해가 발생해야 경영책임자를 처벌할 수 있는 다중 구조이다. 대검찰청은 경영책임자의 안전보건 조치 의무 위반과 현장에서의 중대 재해 발생 사이의 인과관계를 밝히기 어려운 탓에 중대재해법 위반을 입증하기 힘들 것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수사 기관들이 인과관계를 입증하기 위한 압수수색, 디지털 포렌식 등을 예고하고 있지만 여전히 쉽지 않다.

중대재해법 둘러싼 논란

중대재해법 시행에도 이를 위반한 사고는 끊이지 않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공개한 ‘2022년 사망사고 발생 현황’에 따르면 지난 1월 1일부터 2월 26일까지 산업 재해로 인한 사망자 수는 94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2명 감소하는 데 그쳤다. 또한, 부산지방고용노동청에 따르면 1분기 △부산 △울산 △경남 지역에서 발생한 산재 사망사고는 26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건 감소했다. 정부는 중대재해법의 목적이 중대 재해 예방임을 강조했다. 하지만 사고 예방을 위한 적절한 안전보건 조치 의무가 모호한 탓에 중대 재해 예방보다 사업주의 책임 회피로 법률 상담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는 아직 중대재해법이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노동계에서는 중대재해법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이유가 중대재해법의 인과관계 입증의 어려움과 바뀌지 않는 산업계에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중대재해법은 산업안전보건법과 함께 이중 처벌될 작용할 우려가 제기된 바 있다. 이에 따라 중대재해법은 처벌 요건이 모호해졌고, 인과관계의 입증이 어려운 다중 구조로 설계됐다. 산업계에서는 중대재해법이 산업을 위축시켜 중대 재해의 감소가 일시적인 현상일 것이라는 의견을 내놨다. 따라서 노동·산업계에서는 중대재해법을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윤석열 당선인은 중대재해법에 대해 “법을 폐지하지 않고 유지한다는 쪽에서 적용을 합리적으로 가져가야 한다”라고 생각을 전했다. 또한, “굳이 폐기하거나 바꾸지 않더라도 기업인이 가진 의구심을 떨칠 수 있다”라며 중대재해법을 폐지해야한다는 기존의 강경한 입장에서 물러났다. 노동계에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중대재해법의 개정을, 산업계에서는 기업 부담을 가중하는 중대재해법의 개정을 외친다. 중대재해법을 합리적으로 개정 및 적용해 노동자들의 생명을 보호하고 안전을 도모하는 데 힘쓰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