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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만평 | times | 2023-06-15 09:28

내 전공인 식민지 시대 소설은 밀도 높은 국문학 연구사가 축적돼 있다. 박사 논문을 쓰면서 연구사의 벽에 좌절도 했고, 논문 주제를 잡기 위해 집을 나오기도 했다. 눈에 밟히는 어린 딸을 돌보며 논문 쓰기가 쉽지 않아서, 육아를 하더라도 밤에는 논문을 쓸 개인 공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살고 있던 아파트 바로 앞에 독서실 같은 공부방을 얻었다. 생활과 공부의 분리라는 명목으로, 신림동의 15만 원짜리 월세방을 얻어 출퇴근했다. 이때 몇몇 학교에서 전공 강의를 할 기회가 생겼다. 당시 나에게 강의는 하루 종일 갇혀있던 작은 공부방을 탈출할 수 있는 합법적 외출로, 출력한 소논문의 박제된 지식을 누군가와 토론할 수 있는 소소한 즐거움의 장이었다.박사 논문을 쓰면서 가장 오래 한 수업은 ‘글쓰기’였다. ‘글쓰기’는 의사소통 과목으로 읽기와 쓰기, 토론이 필수적으로 병행된다. 5학기 정도 지나니, 어느 날 문득, 강의실에 앉아 있는 신입생들에게서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부단히 글을 썼던 식민지 작가, 유진오, 이효석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고뇌 어린 열정과 치기 어린 자부심, ‘문청(文淸)’의 성립, ‘지(知)’의 자율성과 같은 박사 논문의 주제가 떠올랐고 192

노벨동산 | 백지혜 / 인문 대우부교수 | 2023-05-19 10:21

조금은 무거운 주제로 이야기하는 것이 옳은 선택인지 모르겠지만, 이 감정을 느끼며 많은 성장을 했기에 관련된 글을 쓰기로 결심했다. 내가 20대가 되고, 대학교에 들어온 지도 어느덧 2년째가 됐다. 20대가 되기 전의 나는 내가 느끼는 세세한 감정을 살피기에 너무나도 바빠 흘려보내기에 급급했다. 하지만 어른이 된 후 나는 최대한 많은 감정을 마주하고 되새김질하기위해 노력하고 있다. 시간의 흐름에 발맞춰 내가 어른이 됐듯이, 주변인들도 각자의 세월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정신없이 흐르는 시간에 따라 살아오다 보니, 마음의 준비를 하지 못한 채 갑작스러운 일을 마주하기도 했다. 그중 가장 영향이 컸던 것이 작년과 올해 맞이한 소중한 사람들의 부고이다.작년에는 나의 영원한 단짝이었던 할머니가, 올해에는 아버지처럼 나를 챙겨 주시던 고등학교 스승님이 내 곁을 떠났다. 내 앞에 주어진 현실에 쫓겨 살다 보니 주변을 살필 여력이 없었고, 이렇게 예상치 못한 일을 맞닥뜨릴 때마다 무기력하기만 했다. 당시 바쁜 대학 생활을 보내던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은 외로이 기숙사에서 눈물을 절제하지 못한 채 흐느끼는 것이었다. 눈물의 이유는 복합적이었다. 가장 나를 슬프게 만든 것은

지곡골목소리 | 류나은 / 무은재 22 | 2023-05-19 10:20

제443호 포항공대신문에는 본인이 소속된 집단과 관련한 기사에서부터 반도체공학과와 같이 신설된 학부, 단체와 관련한 기사까지 여러 방면의 기사를 읽을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소속 집단에 대해 간접적으로 전해 들었던 소식을 정리한 기사들을 보면서 정보를 얻고 생각을 정돈하는 데에 많은 도움을 받았다.우선, 나의 시선을 가장 강렬하게 사로잡은 기사를 꼽자면 단연 ‘기숙사 제공’ 실태에 대한 기사라 할 수 있다. 반도체공학과가 신설되어 학부 신입생이 예년 대비 40명 증원되는 이례적인 현상에 생활관운영팀은 RC 필수 거주자 기준을 기존 2학년에서 1학년으로 변경했다. 이에 따라 아직 무은재학부생 신분임에도 2학년 1학기를 맞이한 22학번 또한 RC를 나와 학내 1동에서 20동(상남 포함)까지 구사 거주가 가능해졌다. 본인은 분반 내에 마음이 맞는 친구와 함께 구사 8동에 거주하게 되었고, 원하는 결과였기에 불만 사항은 없었다. 그러나 한 친구는 기숙사 신청을 실패한 이후 여러 차례 입사할 수 있는 방이 없다는 답변을 듣다 개강 이후 2~3주가량이 지나서야 입사할 수 있었다고 했다. 기숙사 시스템 개편으로 예상하지 못한 부작용에 피해를 보는 학부생은 그 기간

독자리뷰 | 홍람기 / 무은재 22 | 2023-05-19 10:20

이제 대학은 본격적인 엔데믹 시대의 학기를 시작해 어느새 학기의 끝을 향해 가고 있다. 한동안 잃어버렸던 대학 생활의 일상도 차차 회복 중이다. 대학의 교육과 연구 기능 역시 예전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다. 지성의 전당인 대학의 모습을 찾아간다.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고, 치열한 논쟁이 있는 대학 모습을 되찾아간다.대학이 교육을 하는 곳인지 연구를 하는 곳인지 논쟁을 벌이곤 한다. 대학을 학교라고 생각하는 많은 국민들은 이런 논란이 의외일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기초연구가 대학에서 이루어지고, 대학원생 교육 및 양성 과정에서 연구 활동의 역할은 필수적이다. 특히 우리대학과 같은 연구중심대학은 이런 특징이 더욱 뚜렷하다. 한편 대학이 산학협력과 창업에 더욱 전념해야 한다고도 한다. 최근 대학이 더욱 기업가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강해졌고, 이에 맞서 그러면 집은 누가 지키냐는 비판을 하기도 한다. 이런 활동들 간의 차이가 마치 칼로 무를 자르듯이 뚜렷하게 구별되지는 않는다. 모든 대학이 연구기관이라거나 창업사관학교라는 시각으로 접근하는 것은 전체 사회를 하나의 규범으로 좌지우지하려는 시대와 다를 바 없다. 나아가 대학이 연구를 잘 하기 위해 연구환경을

사설 | times | 2023-05-19 10:18

만화/만평 | times | 2023-05-19 10:16

외국인들이 대한민국에 와서 가장 좋아하는 것이 있다. 바로 술이다. ‘왜 이렇게 좋아할까’, ‘외국에도 술이 있는데 한국은 대체 뭐가 다르기에 이토록 열광할까’ 머릿속에 생긴 질문들에 마땅한 해답이 떠오르지 않아 용기 내 외국인에게 물어봤다. 싼 가격으로 빨리 취할 수 있고 늦게까지 술을 마실 수 있는게 장점이라고 한다. 외국인이 바라보는 한국 술집의 장점이었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우리나라 사람들은 외국에 비해 술에 대해 수용적인 태도를 지니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술과 담배는 건강에 위험하지만 쉽게 접할 수 있는 물품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에 담배는 담뱃갑에 보기 흉측한 광고를 부착하고, 금연 메시지를 담은 공익광고로 금연을 장려한다. 반면 술은 유명 연예인들이 선전하는 주류광고가 길거리에서 흔하게 보이는 등 우리 사회는 술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다.사회적인 분위기와 문화도 음주에 많이 수용적이다. 드라마와 영화의 소재로 술이 빠지지 않는 것은 물론이며 실생활 속에서도 MT, 회식 등 단체 활동에서 필수 불가결한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책 ‘금주 다이어리’에는 이런 문장이 담겨있다. “다른 약물은 그걸 하는 사람이 이상하고, 끊는 사람을

78오름돌 | 조원준 기자 | 2023-04-17 19:34

길을 걷다 기억하기 쉬운 선율의 음악을 듣고 종종 그 노래를 흥얼거린 경험이 있는가? 이렇게 중독성 있는 멜로디를 비롯해 눈에 띄는 색상, 독특한 로고 등을 동반한 브랜딩은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의 일상에 녹아있다. 브랜딩은 연상 작용에 기반해 소비자가 마치 브랜드와 연결된 듯한 감정과 경험을 제공해 상품의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브랜드는 소비자의 구매에 큰 영향을 주며 20세기부터 시장 경쟁에서 마케팅의 중요 수단으로 사용됐다.아이돌 산업에서 브랜딩은 주로 각기 다른 콘셉트를 주축으로 둔 마케팅 방식으로 진행된다. 아이돌 산업은 그들을 지지하는 팬덤을 중심으로 소비·생산의 차원에서 구축된다. 이는 소비자로부터 단순히 물질적 소비뿐만 아니라 감정적 소비까지 발생시킨다는 특징이 있어 홍보 전략의 중요성이 크다. 아이돌은 그들만의 △로고 △공식 색상 △응원봉을 필두로 다양한 콘텐츠를 선보이며 브랜딩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지난 2020년 데뷔한 SM 소속 걸그룹 ‘aespa(이하 에스파)’의 브랜딩 전략은 단연 확고하다. 데뷔 이전부터 유튜브를 개설해 그룹 로고 영상을 공개했으며, 이는 이후 공개된 모든 영상의 후반부에 삽입되며 특유의 효과음과 로고를

78내림돌 | 강민영 기자 | 2023-04-17 19:33

만화/만평 | times | 2023-04-17 19:32

기존의 체계를 새로이 전복적으로 재편성하는 이른바 ‘와해적 기술’로서 블록체인은 단순한 기술을 넘어 탈근대시대의 철학 및 정신을 함축하고 있다. 신뢰 가능한 매개자 없이 P2P 네트워크 방식에 기초하는 블록체인 기술의 가장 핵심적인 속성은 바로 탈중앙화라고 할 수 있다. 블록체인은 ‘신뢰의 새로운 아키텍처’로 기능함으로써 기존의 중앙화된 체계에 대한 혁신적 균열을 가속화하고 있다. 지능정보사회에서 더 심화하는 데이터의 중앙화에 대한 시민사회에서의 우려는 탈중심적이고 분배적인 네트워크로의 전환 필요성을 제기했다고 볼 수 있다. 의사결정의 권한과 책임, 통제권을 분산시키는 데이터 거버넌스에 대한 시민사회의 요청이 강화돼 온 것 역시 이런 맥락에서 이해해볼 수 있다.이는 기술적 자유주의에서 가장 핵심적인 프라이버시 및 표현의 자유에 대한 강력한 권리 주장과도 연결된다고 할 수 있다. 프라이버시 보호의 대중화와 자유주의적 권리 주장은 인터넷 기술을 배경으로 하는 사이버펑크 운동으로 전개 및 발전되기도 했다. 사이버펑크는 개인의 사적 자유를 확보하고 정부 권력을 약화시키며 그 운영과정의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한 메커니즘을 구축하는 데 있어, P2P 기술과 암호화를 유용

노벨동산 | 정채연 / 인문 대우부교수 | 2023-03-01 21:21

프랑스 작가인 아니 에르노(Annie Thérèse Blanche Ernaux)의 소설 ‘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는 한 사람의 인생을 고스란히 엿볼 수 있는 책이다. 누구나 굴곡진 인생을 살아가기에, 각자의 방식으로 어려움을 헤쳐 나가는 과정은 한편의 긴 서사 영화 같다. 나는 가끔 누군가의 인생을 담백하게 담아낸 책이 있다면 꼭 읽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런 측면에서 누군가의 인생이 고스란히 담긴 책을 접하는 것만큼 숭고한 경험은 없을 것이다.이 책은 자전적 성격을 띤다. 누구나 겪을 법한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작가는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돌보는 과정을 일기의 형식으로 써 내려간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어머니의 언행은 달라져 가고, 작가는 어머니를 볼 때마다 느끼는 죄의식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마치 우리가 똑같은 일을 겪은 것처럼, 작가의 인생에 초대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흔히 아름답고 환상적인 것을 볼 때 우리는 이를 ‘낭만적’이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낭만은 도달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동경에서 비롯된다. 그런 측면에서 이 책은 그 누구보다 사랑하는 어머니를 치매와 죽음으로부터 지켜내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작가의 낭만

포스테키안의픽 | 이재현 기자 | 2023-03-01 21:20

우리는 참 많은 목표를 세우며 살아간다. 과학도로서의 목표나 자녀로서의 목표 같은 장기적이고 거창한 목표부터 이번 시험의 목표, 오늘 저녁 식사의 목표 같은 소소한 목표들까지. 살다 보면 서로 다른 목표가 충돌해 새로운 목표를 세우기도, 이유 없이 목표가 바뀌기도 한다. 목표를 이뤄내지 못해 자책하기도 하며, 또 새로운 목표를 세워 그것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다.한때 이 ‘목표’ 때문에 고민이 많던 시기가 있었다. 눈앞의 소소한 목표들을 이루기 급급한 채 그래서 무엇이 되고 싶냐, 어떤 사람이 되고 싶냐는 질문을 받으면 “그냥 되는대로 살아가야지”라고 얼버무리던 내 모습이 초라해 보였달까. 그러던 중 친구의 소개로 여러 대학에서 다양한 전공을 공부하는 학생들의 모임에 들어가게 됐다. 두 달 동안 매주 주어지는 질문들에 답하며 각자 인생의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을 이뤄나갈 방법을 설계해 공유하는 자리였다. 참여한 학생들은 저마다 정말 멋있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인류를 구원할 기술을 개발하겠다거나 자신이 다루는 악기의 연주자로서 최고가 되겠다는 목표처럼 확고하고 원대한 꿈을 가진 학생들을 보니 내가 더 우습게 느껴졌다. 열심히 고민해 적어간 내

지곡골목소리 | 이태훈 / 신소재 19 | 2023-03-01 21:19

코로나19 사태 이후 사람들이 부쩍 건강에 많은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며 자신의 몸 상태를 살피게 되고, 여유가 있을 때 건강을 미리 챙겨야겠다는 마음을 갖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코로나19 사태 이전과 이후의 삶은 매우 달라졌고 이는 우리들의 식생활에도 변화를 가져왔다.코로나19 사태 전, 사람들은 맛있는 음식을 배부르게 먹는 것을 좋아했다. 이에 무한 리필 고깃집 등의 가게가 급증했고 이를 찾는 손님도 많았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 이후, 건강에 관한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음식을 많이 먹기보다 자신에게 필요한 적당량을 먹어 과하지 않게 식사하는 추세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식당도 이런 수요에 맞춰 음식을 적당량 제공하고, 필요에 따라 음식을 추가할 수 있도록 변하고 있다.코로나19 사태뿐만 아니라 하루하루가 바쁜 현대인의 삶도 식습관 변화에 영향을 줬다. 사람들이 식사 시간보다 여가 활동이나 업무를 위한 시간을 더 가지려다 보니 소식을 하는 경향이 생겼다. 학교 동기들을 봐도 바쁘게 과제를 하거나 수업을 다니다 보면 어쩔 수 없다는 듯 간단하게 끼니를 챙기는 경우를 쉽게 볼 수 있다. 젊은 현대인들은 밥을 푸짐하게 한 상 차

독자리뷰 | 안요섭 / 무은재 22 | 2023-03-01 21:19

지난달 6일 튀르키예 동남부와 시리아 서북부 부근에서 2차례의 강진 이후 6,000회가 넘는 여진이 잇따라 발생했다. 피해 지역에서는 4만 6천여 명이 사망하고 120만여 명이 대피했으며, 10만 5천여 개의 건물이 손상될 정도로 막심한 피해가 발생했다. 계속되는 구조대의 수색 작업과 건물 복구 작업으로 피해 현장을 수습하고 있지만, 지진으로 삶의 터전을 잃고 위험에 노출된 피해·피난민들이 많아 타국의 도움과 일손이 필요한 실정이다.그동안 ‘형제의 나라’라고 불리며 튀르키예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온 우리나라도 많은 구호 물품을 전달했으며, 직접 도움을 주려는 국내 자원봉사자들의 발길도 끊이지 않고 있다. 튀르키예는 1950년 6·25전쟁 당시 우리나라를 돕기 위해 상당한 병력을 파병했으며, 이후에도 지속적인 협력을 이어온 국가다. 우리가 지난날 튀르키예로부터 받은 많은 도움과 응원을 이제는 그들에게 주고자 하는 움직임이 일어난 것이다.참사가 일어난 직후 대한민국 해외긴급구호대(이하 KRDT)는 튀르키예로 파견돼 수색·구조 활동을 벌였으며, 각종 △지자체 △기업체 △공공기관 △은행 등에서 자체적으로 구호 물품과 성금을 전달하는 기부 행렬이 이어지기도 했다. 진

78오름돌 | 강민영 기자 | 2023-03-01 21:18

새 학년이 시작될 때면 또 한 뼘 자라있을 내 사촌 동생이 생각난다. 매년 초 할머니 댁을 찾는 사촌 동생은 수줍어하면서도 자꾸만 제 사촌 누나와 친척들 안부를 묻는 정 많은 아이다. 식사 준비로 분주해질 때마다 제가 하겠다며 조금은 산만하게 부엌을 돌아다니는 모습이 꽤나 갸륵해 어른들의 예쁨을 사곤 한다.하지만 그 착한 아이는 학교에서 ‘문제아’다. 처음 문제아가 된 것은 초등학교 5학년, 제 엄마가 돌아가신 지 2년째 되던 해였다. 그날 삼촌은 아이가 친구를 때렸다는 담임 선생님의 연락을 받았다. 학급 친구 하나가 돌아가신 엄마를 들먹여 동생의 심기를 제대로 건드린 모양이었다. 그 후로도 아이의 싸움이 반복됐고, 잦아지는 사고에 동생은 선생님의 미움을 받기 시작했다.이제 중학생이 된 동생은 학교라는 공간에서 완전히 배제됐다. 하루는 내가 공부를 돕겠다고 수학 문제를 풀게 했더니 “다들 안 될 거라는데, 지금 내가 공부해도 어차피 못 하겠지”라며 힘 빠지는 소리를 해댔다. 그러면서도 칭찬 한 번에 목소리가 들뜨고, 괜히 시키지도 않은 문제를 하나 더 풀어보는 모습에 나는 속이 아려 한층 더 밝게 질문을 던졌다. “어느 과목이 가장 좋아?” 그러자 동생은 “

78내림돌 | 안윤겸 기자 | 2023-03-01 21:18

파리 6구에 위치한 생제르맹데프레 교회에는 프랑스의 철학자, 수학자이자 과학자였던 르네 데카르트가 잠들어있다. 파리에 머물다 그 주변을 지날 때면, 나는 빠짐없이 생제르맹데프레에 들러 부속 예배실 한편에 놓인 그 무덤 앞에 서곤 한다. 근대학문 전반에 그가 끼친 영향은 가늠할 길 없이 크지만, 그의 고전적인 합리주의는 어떤 면에서 지금 21세기 현실과 더 치열하게 맞닿아 있는 것만 같다. 데카르트는 그의 책 방법서설에서 정신과 물질을 구분하는 실체이원론을 논하는 가운데, ‘인간’과 ‘기계’를 가르는 구분법을 제시했다. 그중 첫번째가 바로 ‘언어를 주어진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사용하는 능력’이다. 데카르트가 스웨덴에서 폐렴으로 생을 마감하고 삼백 년 뒤, 영국의 수학자이자 컴퓨터공학의 개척자였던 앨런 튜링이 인공지능의 충분조건으로 언어 모방게임을 제안했을 때, 그는 분명 데카르트의 글을 참고했을 것이다. 이제 놀랍도록 그럴듯한 글을 써내는 인공지능 챗봇이 연일 화제가 되는 이 시점에, 여러분은 이 데카르트의 주장이 마침내 기각됐고 따라서 인간과 기계 사이의 존재론적인 경계가 흐려지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아무것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로 그럴듯한 글을

사설 | times | 2023-03-01 21:17

만화/만평 | times | 2023-03-01 21:17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로맨스 드라마인 도깨비와 태양의 후예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두 작품은 탄탄한 이야기, 시청자를 끌어들이는 연출, 오글거리면서도 감각적인 대사와 이를 완벽히 소화하는 배우들의 연기력이 합을 맞춰 완성된 드라마다. 해당 작품들의 각본을 쓴 김은숙 작가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장르의 복수극 ‘더 글로리’로 복귀해 이번에도 어김없이 성공했다.‘더 글로리’는 학창 시절 학교폭력으로 삶이 망가진 한 여자의 치밀한 복수를 다룬다. 주인공 동은은 가해자 5인방에게 고데기로 화상을 입는 등 잔인하고 모진 학교폭력을 당했다. 그러나 선생님은 이를 외면하고 동은의 어머니는 딸에게 무관심한 태도로 상처를 주는 등, 동은에게 손을 내밀어주는 사람은 그 누구도 없었다. 이후 그녀는 오랜 시간에 걸쳐 복수를 준비하고, 계획을 서서히 진행한다. 가해자 5인방의 독특한 설정은 드라마에 재미 요소를 가미한다. 이들 간에는 서열이 존재하며 △악 그 자체인 연진 △연진과 바람피우는 재준 △마약에 의존해 예술 활동을 하는 사라 △5인방 내에서 무시당하면서도 어울려 다니는 혜정과 명오로 구성된다. 이들은 다른 드라마와 달리 서사를 부여받아 악행을 합리화하지 않는다.

포스테키안의픽 | 조원준 기자 | 2023-02-17 22:31